아이가 새 이름 받는데 6년 걸렸네요

김소라 2024. 8. 15.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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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 삼무곡청소년마을의 특별한 성인식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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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라 기자]

▲ 삼척에 있는 대안학교 '삼무곡 청소년 마을'  삼척에 있는 대안학교 '삼무곡 청소년 마을' 은 소유와 계획과 판단 너머의 삶을 배우는 곳이다
ⓒ 김소라
툭 하면 반 아이들과 싸움을 하고, 제 분에 못이겨 분노를 표출했다. 스스로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모든 것을 거부하고 반항했던 아이의 유년기는 옆에서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을 조마조마하게 했다. 모르는 전화가 걸려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학업은 둘째였고, 교과목을 배우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몰라 방법을 찾아 헤매면서 상담도 받고 여행도 다녔다. 우여곡절 끝에 찾게 된 학교가 바로 '삼무곡청소년마을'이라는 곳이다.

아이는 십대 시절을 꼬박 강원도 삼척에 있는 '삼무곡 청소년 마을'에서 시간을 보냈다. 교과목도 없고, 학년 구분도 없으며, 졸업장도 없고, 기술을 배우거나 대학을 가는 것도 의미가 없는 학교다. 그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고, 주어진 삶의 현장 속에서 배울 거리를 스스로 찾아나가는 방식을 터득하는 곳이다.

다행히 삼무곡에서의 생활을 정말 좋아했고, 6년 동안 행복한 십대 시절을 보내었다.

성인식이라고 부르는 졸업식
▲ 돌에 삼계를 새기고 자신의 평생 계율같은 말씀 '삼계'
ⓒ 김소라
삼무(三無)는 세 가지가 없다는 뜻이다. '소유'와 '계획'과 '판단'이 그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하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무엇도 소유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소유를 위한 소유'를 위해 살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계획 밖의 계획이 있다는 의미로 큰 시각에서 삶을 바라보라는 뜻이다. 판단하지 않는다는 건 자신의 기준에서 옳고 그름을 구분짓지 말라는 내용이다.

이렇게 삼무(三無)의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아마 세상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으며, 자기답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모든 것을 호기심 있는 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삼무곡 청소년 마을에는 독특한 졸업식 과정이 있다. '성인식'이라고 졸업식을 일컫는데, 획일적으로 어느 때와 시기가 되어 졸업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별로 모두 다른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삼계(三契)'라고 하여 자신이 평생 살아갈 때 지침이 될 만한 세 가지 계율을 찾아서 선언하는 과정이 있다. 여행을 통해서 혹은 삶을 통해서 모두 내면의 스승이라고 불리우는 어떤 존재로부터 앞으로 가야 할 삶의 길의 메시지를 듣는다. 번뜩이는 순간의 깨달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2019년 4월부터 삼무곡에서 살기 시작한 아이는 2024년 6월 29일이 되어 성인식을 치르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다양한 삶의 경험을 하면서 좌충우돌 배움의 여정을 이어 나갔다. 이곳은 선생과 학생의 구분이 무의미하며 모두가 함께 배우는 '학생'의 입장으로 살아간다. 서로에게 배움을 찾는다.

내면의 깨달음을 얻은 아이

스무 살이 된 아이는 다양하게 벌어진 인생의 사건을 통해서 세 가지의 삼계를 찾게 되었고, 그것을 돌판에 기록하여 깊은 숲 속의 나무 아래 '삼계석'을 세워놓는 수계식을 진행한다.
▲ 삼계를 돌에 적다 1. 우연이 아니다 2. 목적 너머의 목적이 있다 3. 상처받음을 두려워 말라
ⓒ 김소라
종교 의식처럼 경건한 수계식을 했던 장소는 '숨쉬는 부지'라는 비밀스러운 장소였는데, 평소 아이들이 백패킹을 하거나 문명없이 살기를 연습하는 곳이다. 교육의 모든 과정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것은 '세상 모든 곳이 배우는 장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가 내면의 목소리를 통해서 얻은 삼계는 다음의 세 가지였다.

1. 우연이 아니다
2. 목적 너머의 목적이 있다
3. 상처받음을 두려워 말라
▲ 삼무곡의 존재의 선언식  숨쉬는 부지에서 열렸던 삼무곡의 성인식 중 '수계식' 에 참여한 이재혁
ⓒ 김소라
평범하고 일반적인 말이지만 고통과 좌절과 실패의 순간 찾아온 자기만의 '깨달음'이기에 값어치가 남다르다. 성인식을 치르는 날은 가족, 친지, 동기, 선배, 교사 등이 모여서 함께 축하의 자리를 갖고 그동안 자신이 배운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시간을 가졌다.

한 사람을 온전히 축하하고 사랑을 나누는 삶의 장이 펼쳐진다. 감동과 사랑을 느끼는 특별한 성인식은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형식이었다. 스스로 정한 선언문에 따라 '존재의 선언식'을 하고, '삼계'를 공표하고, 스승으로부터 새 이름을 받게 된다.

아이는 '동우(童牛)'라는 이름을 받았다. 어린 소, 송아지라는 뜻이다. 새끼소는 어미소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자연스레 어미소가 된다. 스승 곁에 있으면 어느 날 스승이 되어 있을 거라는 의미다. 앞으로 동우(童牛)라는 이름대로 살게 될 것이다.
▲ 존재의 선언식 새로운 이름을 받는 자리.
ⓒ 김소라
"겁먹은 토끼처럼 잔뜩 움츠러든 나에게 선생님은 상처와 마주할 용기를 주셨고, 내가 선택한 일에 망설이거나 두리번거리지 않을 확신을 주셨다. 삼무곡을 졸업한다고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물론 평소 안 하던 짓을 하는 멋진 사람이 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삼무곡은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었다. 나는 오늘 나를 선언한다. 나는 어떤 일이든 정면으로 마주하는 존재다. 나는 나의 선택을 믿고 확신하는 존재다."

아이는 이렇게 스스로의 확신과 믿음을 말과 글로 정리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그동안 내놓은 성과물 같은 창작품을 보여주었고, 앞으로 살아갈 비전을 나누었다.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모두의 지지와 응원의 박수도 받았다.

가족이나 친구, 선배 등은 의미있는 선물을 나누거나 편지글을 낭독하고, 후배들이 창작곡으로 축하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 모든 과정은 신선하고 새로웠다.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명장면으로 남게 될 일이었다.
▲ 직접 만든 가구 삼무곡 졸업식 과정 중 만든 자신의 창작물 작품
ⓒ 김소라
▲ 목공작품 스스로 창조적인 실험을 게속해나가는 중
ⓒ 김소라
나는 부모로서 두 가지 선물을 전달했다. 한 가지는 시계인데, 태엽을 감아야 계속 움직이는 특별한 시계를 골랐다. 시계는 항상 현재를 보여준다. 지금 이 순간을 잊지 않게 하는 도구이다. 시계를 보면서 조급함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일을 까먹지 않도록 항상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라는 뜻을 담았다. 두 번째는 '가방'인데 언제나 여행자의 마음으로 떠남을 두려워하지 말고, 길 위에서 인생을 배우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가족들이 한 마디씩 축하 메시지를 말하고, 사랑의 마음으로 서로를 포옹하였다. 행복한 온기가 세상 전체로 퍼져나가는 듯했다.

선택한 그 길을 응원하며

대학을 가지 않고 자신이 걸어갈 길을 선택한 아이는 추후 삼척으로 귀촌할 마음을 먹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청년의 삶을 그려가보겠다고 말했다. 목공이든 집 짓는 일이든 몸으로 부딪히면서 자신의 인생을 찾겠다고 한다.

남들과 똑같은 길이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겠다는 건 쉽지 않을 수 있다. 앞날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삶이다. 어찌됐든 부모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지하며 온전히 믿어주는 것 밖에 없다. 그동안 아이를 통해 배운 것은 바로 사랑하는 방식이다. 나의 언어만을 고집하며 사랑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방식의 언어로 사랑하는 것이다. 조금 더 기다려주고, 허용적인 마음을 갖고,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이다.

졸업은 그 자체로 끝이지만,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성인식을 치르기 위해 홀로 사막에서 긴긴밤을 보내어야 하며, 낮과 밤이 오가는 시간을 견디면서 신비로운 일을 만나기도 한다. 절대적인 고독과 외로움을 마주하면서 오롯이 자기 안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이기도 하다.

성경에 등장한 야곱은 형에게서 장자의 축복권을 가로챈 다음 집안에서 쫓겨나 광야에서 천사와 씨름하는 꿈을 꾸고, 죽도록 힘든 여정 끝에 새로운 삶을 얻었다. 석가모니 역시 6년간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 수행명상 도끼질로 수행명상을 하기도
ⓒ 김소라
나름의 성인식 과정을 치르기 위해 일주일간의 지리산 산행 및 대책없는 여행을 했던 아이는 자신에게 다가온 모든 사람들을 신이 보낸 '천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든 배울 것을 찾아보려는 마음을 가졌다고 말한다.
버스 시간을 잘못 알아 하루에 한 번 밖에 가지 않는 버스를 놓치기도 하고, 잘 곳이 없어 방황하기도 했다. 무거운 배낭을 맨 채 지리산을 몇 날 며칠 헤매면서 발바닥의 통증과 물집도 만났다. 수학문제를 풀고, 영어단어를 외우는 공부가 아니라 진정 길 위에서 헤매이는 과정을 통해서 터득하고 얻은 삶은 값졌다.
▲ 학생들이 함께 지은 돌집  집짓기 프로젝트로 함께 창조물을 만들기도 했던 시간
ⓒ 김소라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의 진정한 변화를 통해서 얻게 되는 새로운 삶은 어떤 측면에서 '죽음'과도 같다. 과거의 습성이 아닌 새로운 선택을 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6년간의 여정을 일단락짓고 자기만의 인생을 창조해나가고자 선택한 그 길을 응원한다.

알 수 없는 혼란 속에서 여전히 헤맬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스스로 찾은 '삼계'라는 인생의 마스터키로 충분히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목적 너머 목적을 찾고,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힘껏 받아들이며, 목적 너머의 목적을 찾고, 우연 속에서 필연을 만들어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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