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역사 교사가 못한 일, 대통령이 단숨에 해냈지만
[서부원 기자]
▲ 2023년 2월 27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외벽에 컬러로 복원된 김구 선생의 사진이 송출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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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사로서 반성부터 할 일이라, 말 꺼내기 민망할뿐더러 누굴 탓하자니 뒤통수가 따갑다. 최근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소재로 한 영화도 제작되고, 정부가 느닷없이 이념 갈등을 부추기면서 부쩍 현대사에 관심이 커졌지만, 독립운동가를 기억하는 것과는 별개인 셈이다.
안다 해도 이름 석 자를 간신히 읊는 게 고작이다. 사건을 인과관계에 따라 시대 순으로 배열하는 건 언감생심이고, 관련 인물을 연결 짓는 것도 어려워한다. 언제 국권이 피탈됐고 어느 해에 해방됐는지 연도를 정확히 말하는 아이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누구든 안중근과 유관순, 김좌진, 홍범도, 윤봉길, 이승만, 김구, 이렇게 일곱 분을 댔다. 이 일곱 분이 아이들이 기억하는 독립운동가 이름의 전부이기도 하다. 나머지 세 분을 추가하기 위해 아이들은 머리를 쥐어뜯는다. 정확하게는 안중근 의사는 빠져야 한다. 국권 피탈 전에 순국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홍범도 장군은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과 국방부가 공산주의자로 낙인찍어 육군사관학교에서 흉상을 철거하는 소동이 벌어지면서 아이들에게 그 이름이 각인된 측면이 크다. 때마침 영화까지 개봉되면서, 지금은 동시대 인물인 김좌진 장군보다 더 유명한 독립운동가가 됐다. 수천 역사 교사가 그 오랜 시간 해내지 못한 일을 대통령이 단숨에 해냈다.
그나마 이름과 업적을 혼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를테면, 안중근 의사가 도시락 폭탄을 던졌다거나, 윤봉길 의사가 약지를 잘라 독립을 향한 의지를 내보였다는 식으로 잘못 알고 있는 아이도 있다. 또, 이승만이 신탁통치 반대를 주장하고, 김구가 찬성하면서 둘이 갈라서게 됐다고 알은척하기도 한다.
▲ 2018년 6월 8일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과 항일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 등의 흉상에 신흥무관학교 107주년을 맞아 꽃목걸이가 걸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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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애꿎은 아이들만 탓할 순 없다. 고백하자면, 역사 교사인 나 역시 타성과 관행에 젖어 아이들이 익히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들의 언저리만 맴돌 뿐이다. 시험에 출제되지 않는 이름들은 진도 나가는 데 급급해 굳이 가르치지 않을뿐더러 따로 공부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기실 이 글은 역사 교사의 직무 유기에 대한 반성문이다.
광복 79주년에 즈음하여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자문해 봤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인으로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을 몇 분이나 알고 있는지를.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헌법 전문의 첫 구절에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토 박은, 명실공히 대한민국의 시작이자 정통성의 근간 아닌가.
김구, 이승만, 이동휘, 안창호, 박용만, 최재형, 신채호, 신규식, 문창범, 박은식, 이상룡, 이동녕, 엄항섭, 조성환, 차리석, 김동삼, 그리고 지청천. 노트북 앞에 앉아 스스로 즉문즉답해 보니 이렇게 열일곱 분 말고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그마저 그분들의 직함 외엔 정확한 이력을 말할 깜냥도 못 된다. 문창범의 경우, 오래전 동료 교사들과 함께 연해주를 답사할 때 이동휘와 최재형에 관하여 공부하며 덤으로 알게 된 독립운동가다. 또, 이동녕과 조성환, 차리석은 효창공원의 삼의사 묘역을 참배하면서 바로 아래에 함께 모셔져 있어 그때야 알게 된 경우다.
사족 같지만, 효창공원엔 이봉창과 윤봉길, 백정기 등 삼의사와 그들을 이곳에 모신 김구, 그리고 앞서 언급한 세 분의 임시정부 요인들이 모셔져 있다. 삼의사의 이름을 낯설어하는 국민은 없을 테지만, 세 분 모두 임시정부 요인으로 분류하진 않는다. 이봉창과 윤봉길은 김구가 조직한 한인애국단의 단원이고, 백정기는 일제강점기 3대 의거로 평가되는 육삼정 의거를 기도한 아나키스트다.
신규식은 한쪽 눈을 잃은 채 일제를 노려본다는 뜻의 예관이라는 호 덕분에 기억하고, 박용만은 미국에서 이승만과 갈등을 벌이다 밀려난 뒤 변절자로 내몰려 다른 독립운동가에 의해 암살 당한 비극적인 삶 때문에 이름이 잊히지 않는다. 또, 김동삼은 저 유명한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주역으로, 그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사하자 그를 존경하던 한용운이 장례를 치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또렷이 기억된다.
▲ 일강 김철 기념관 초입에 세워진 동상. 동상 뒤로 상해 임시정부의 모형관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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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해 임시정부 모형관 내부에 걸린 임정 요인들의 사진. 초대 대통령 이승만, 2대 대통령 박은식, 초대 국무령 이상룡 등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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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강 김철 기념관의 상해 임시정부 모형관 내부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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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강 김철과 부인 두 명을 모신 합장묘. 왼쪽으로 첫째 부인이 자결한 아름드리 소나무가 보인다. 이름 하여 단심송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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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사도 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해 일제에 의해 강제 노역을 당했다는 역사적 사실조차 관철하지 못하고, 뉴라이트 세력이 한국학중앙연구원과 독립기념관 등 국책기관장 자리를 꿰차는 어이없는 시절이지만, 이런 때일수록 대한민국 헌법에 명토 박아둔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에 더욱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물론, 그 시작은 조국의 독립에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면면을 기억하는 일이다. 15일은 79주년 광복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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