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두쪽 난 광복절…"친일 선동" "역사 역행" 네 탓만 남았다
#. 정부 주최 제79회 광복절 경축식이 열린 15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 정부·여당 인사, 독립유공자 유족 등 2000여명이 모였다. 하지만 개혁신당을 제외한 야6당 지도부와 우원식 국회의장의 모습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출신 우 의장은 이곳 대신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했다. 2021년 박병석 의장이 해외순방 탓에 불참한 선례를 빼면 국회의장의 경축식 불참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친일 몰이 공세를 펴는 야권을 향한 말일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 이 시각 민주당·조국혁신당 등 야6당 지도부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을 향했다.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반발한 이종찬 광복회장이 주최한 별도의 기념식장이다. 이 회장은 기념사에서 “역사를 봐오면서 터득한 진리는 ‘역사는 권력의 편이 아니라 정의의 편’이라는 것”이라며 현 정부를 겨냥했다. 기념식에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라” “타도 윤석열” “탄핵 화이팅” 등 거친 말들이 나왔다.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을 기념하는 79번째 광복절에 정치권은 두 쪽으로 확연하게 갈라졌다. 1949년 광복절이 국경일로 지정된 이후, 정부와 독립운동단체가 기념행사를 따로 연 것도, 특정 정당이 정부 주최 경축식에 불참한 것도 모두 처음 있는 일이다.
상대 진영을 겨냥한 메시지들이 하루종일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사이비 지식인과 선동가들은 선동과 날조로 국민을 편 갈라 그 틈에서 이익을 누리는 데만 집착할 따름”이라며 “검은 선동 세력에 맞서 자유의 가치체계를 지켜내려면 우리 국민이 진실의 힘으로 무장해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다. 경축사엔 ‘선동’(8회), ‘사이비’(4회), ‘가짜 뉴스’(3회)란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한동훈 대표는 경축식 후 기자들과 만나 “광복절은 우리 국민 모두가 축하할만한 정치행사인데 우원식 의장이 불참한 건 대단히 유감”이라며 “이견이 있으면 여기 와서 말씀해도 되는데 불참해 마치 나라가 갈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너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한 대표는 이종찬 회장에게도 지난 13일 직접 전화를 걸어 “이견이 있다면 경축식에 오셔서 말씀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결국 불발됐다.
반면 야권은 별도의 광복회 주최 기념식에서 윤 대통령을 성토하는 데 집중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기념식 20분 전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권의 ‘역사 쿠데타’로 독립 투쟁의 역사가 부정되고 있다. 이런 정권이 대한민국을 대표할 자격이 있겠는가”라며 “제2의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시도한다”고 비판했다. 내선일체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내세운 표어로, ‘일본과 조선이 한 몸’이라는 뜻이다. 박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경축사에 대해선 “잘못된 이념에 국한해 국민을 철저하게 편 가르기를 한다”며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전 대표는 전당대회 일정 탓에 기념식에는 불참했지만 대신 페이스북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는 부끄러운 광복절”이라며 “윤석열 정권은 역사의 전진을 역행한다”고 썼다.
당초 민주당이 정부 주최 경축식에 불참한 표면적 이유는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에 대한 임명에 반발하는 차원이었다. “1948년 8월 15일 정부를 세우게 되는 것부터 대한민국이 시작된다”, “친일인명사전 내용에 오류가 있다”는 김 관장의 발언에 강력하게 반발한 광복회 측 주장에 올라탄 모양새였다. 민주당은 “김 관장 임명을 철회하지 않으면 경축식에 불참하겠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광복절을 기점으로 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주요 타깃으로 설정하고 있다.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경축사에서 드러난 건 윤 대통령의 섬뜩한 독기다. 오만과 불통은 목불인견”이라며 특히 “‘일제’ 또는 ‘일본’이라는 표현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최악의 경축사”라고 ‘친일 공세’를 장전했다.
이같은 민주당의 파상 공세에 대해 국민의힘은 “광복절마저 선동의 도구로 삼고 있다”고 반격했다. 한지아 수석대변인은 “나라의 빛을 되찾은 기쁜 날인 오늘까지도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적 선동에 여념이 없다”며 “소모적 정쟁을 내려놓으라”고 목청을 높였다. 민주당의 공세가 지난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나 2018년 일본 수출규제 당시 보수 정당을 친일로 몰아붙였던 전략의 연장선 상에 있다는 게 여권의 해석이다. ‘친일’ 이슈의 재점화를 통해 정국의 주도권을 쥐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번 광복절 행사를 통해 드러난 점은 정치권에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협치의 작은 여지조차 산산조각났다는 점”이라며 “권력 투쟁을 위해 정치적 선을 넘는 모습이 점차 심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효성·김정재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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