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새 통일론 ‘8·15 통일 독트린’ 제시…남북 대화협의체도 제안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열린 제79회 광복절 경축식에서 확고한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새 통일 담론인 ‘8·15 통일 독트린’을 제시했다. 대통령실은 “1994년 광복절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발표한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을 보완·강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1945년 일제의 패망으로 해방이 되었지만 분단 체제가 지속되는 한 우리의 광복은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며 “자유가 박탈된 동토의 왕국, 빈곤과 기아로 고통받는 북녘땅으로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확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한반도 전체에 국민이 주인인 자유 민주 통일 국가가 만들어지는 그날, 비로소 완전한 광복이 실현되는 것”이라며 “헌법이 대통령에게 명령한 자유민주주의 평화통일의 책무에 의거해서 우리의 통일 비전과 통일 추진 전략을 우리 국민과 북한 주민, 그리고 국제사회에 선언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자유 통일을 위한 도전과 응전’이란 제목으로 3대 통일 비전-3대 통일 추진 전략-7대 통일 추진 방안(action plan)으로 구성되는 8·15 통일 독트린의 골자를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3대 전략으로 ▶국내: 자유 통일을 추진할 자유의 가치관과 역량을 배양 ▶북한: 북한 주민들의 자유 통일에 대한 열망을 촉진 ▶국제 사회와의 연대: 자유 통일 대한민국에 대한 국제적 지지를 확보하는 내용을 밝혔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사후 브리핑에서 “북한과 공조하거나 결탁해서 대한민국 헌법의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하고자 하는 세력과 결연히 맞서 싸우면서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을 굳건히 해야만 우리의 자유의 기운을 북한과 국제사회에 확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자유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가짜 뉴스에 기반한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는 자유 사회를 교란시키는 무서운 흉기”라며 “(사이비 지식인과 선동가들은) 우리의 앞날을 가로막는 반자유 세력, 반통일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가짜 뉴스로)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교란시키려 하는 세력이 헌법과 자유에 반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자유를 기본으로 해야 하는 통일에도 반하는 세력”이라고 부연했다.
7대 추진 방안에는 연례 북한 인권 보고서의 충실한 발간, 북한 인권 국제회의 추진, 북한 자유 인권펀드 조성과 북한 주민의 정보 접근권 확대 등 북한 정권과 주민을 직접 겨냥한 내용도 포함됐다. 윤 대통령은 “북한 주민들이 자유의 가치에 눈을 뜨도록 만드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북한 자유 인권펀드는 북한인권재단 설립을 막아온 민주당의 방해 때문에 정부 공식 예산을 거치지 않고라도 자금을 마련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하고 제안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남북협력기금법에 ‘민간 기부금 계정’이 생겼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이란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시절 ‘통일항아리’도 국회에서 법을 통과시켜주지 않자 비영리 사단법인이 개인 단체의 기부금을 받아 관리해 왔다”며 “통일항아리 기금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제시한 8·15 통일 독트린은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 이후 30년 만에 대통령이 제시한 통일 담론이다. 기존 통일 방안의 근간을 유지하면서도 내용을 구체화하고 보완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은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 수립’의 3단계 통일 방안이 담겼다. 김태효 차장은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엔) 궁극적으로 도달할 통일의 모습, 이를 달성하기 위한 추진 전략이 없다”며 “지난 30년 동안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의 첫 단추인 화해·협력도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러곤 “이제는 북한 정권의 선의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제적으로 실천하고 이끌어 나갈 행동 계획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남북 당국 간 실무차원의 ‘대화협의체’ 설치도 제안했다. 윤 대통령은 “긴장 완화를 포함해 경제 협력, 인적 왕래, 문화 교류, 재난과 기후변화 대응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문제라도 다룰 것”이라며 “재작년 광복절의 ‘담대한 구상’에서 이미 밝힌 대로 북한이 비핵화의 첫걸음만 내딛더라도 정치적·경제적 협력을 즉각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화와 협력을 통해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북한 당국의 호응을 촉구한다”고 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실무 대화협의체는 깜짝 이벤트식, 내용이 뭔지 모르고 갑자기 남북 정상이 만나서 악수하는 그런 장면은 남북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북한이 원하면 어떤 레벨에서든, 하드한 이슈든 소프트한 이슈든 모든 대화를 거침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열린 제안”이라고 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남북 관계에서 단기적 성과에 매몰되면 문재인 정부 때처럼 판문점 쇼는 만들 수 있지만 결국은 수백억짜리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되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고 했다.
지난 2년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했던 윤 대통령은 이번엔 대일 관계를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작년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은 처음으로 일본을 넘어섰다”라거나 “올해 상반기 한국과 일본의 수출 격차는 역대 최저인 35억 달러를 기록했다”고 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한·일 관계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사에 대해서 아직도 문제시되는 곳이 있다면 당당하게 지적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면서도 “당당하게 겨루고, 이기고 더 커가는 모습 속에서 일본의 협력을 견인해 나갈 때 그것이 진정한 극일(克日)”이라고 했다.
허진·박태인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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