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독일·소련 믿다 ‘원폭’ “자국 사상자 과소평가”
일본이 태평양전쟁 당시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도 자국 사상자 규모를 과소평가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소련에 의존해 전쟁을 끝내려던 일본은 출구를 찾는 데 실패하고 끝내 원폭을 당했다고 일본 국방 전문가가 평가했다.
일본 방위성 산하 국립방위연구소 세니와 야스야키(46) 선임연구원은 최근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은 자국에서 사상자가 늘어나는 것을 과소평가했고 많은 사람이 비참하게 죽었다”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소련은 마치 돌진하듯 전쟁에 참전했다”고 말했다.
일본이 이런 결말을 맞은 이유에 대해 세니와 연구원은 “출구 전략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일본은 연합국이 항복을 요구한 포츠담 선언을 무시하고 여전히 소련에 중재를 부탁해 전쟁을 끝내려는 작업을 계속했다”며 “왜 우리는 더 일찍 항복하지 못했을까”라고 아쉬워했다.
세니와 연구원은 동일본 대지진 직후인 2011년 4월 방위연구소에서 내각관방(내각 사무처)으로 파견돼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설립에 관여하기도 한 국제정치와 국방 분야 전문가다.
요미우리는 ‘종전: 전후 79년’이라는 제목으로 기획한 연속보도 첫 회에서 세니와 연구원과 함께 ‘전쟁을 어떻게 끝낼 것인가’를 논의했다. 신문은 “한 번 시작된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며 “제2차 세계대전은 철저한 파괴와 600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끝에야 비로소 멈췄다”고 일깨웠다.
세니와 연구원은 “일본은 (독일만 믿은 채 스스로는) 전쟁을 끝내기 위한 구체적인 출구 전략 없이 미국과 전쟁을 벌이면서 파국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일본군은 그해 12월 하와이 오아후섬 진주만(펄 하버) 공격으로 미군에 큰 타격을 입혔지만 이듬해 6월 미드웨이 해전에서 4척의 항공모함을 잃으며 패전을 길을 걷는다.
일본은 43년 9월 전쟁을 이어가기 위한 필수 방어선으로 쿠릴 열도부터 버마(미얀마)에 이르는 ‘절대 방어 구역’을 설정했다. 하지만 이듬해 태평양의 한 축인 사이판섬이 무너지면서 방어선도 붕괴됐다. 이때 일본 내에서는 ‘미군에 한 차례 큰 타격을 입힌 뒤 평화협상을 진행하자’는 제안이 나왔다고 한다.
미국에 큰 타격을 입히기 위한 승부수 중 하나가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 공격이었다. 공격이 계속됐지만 미군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고 오키나와 상륙으로까지 이어진다.
45년 5월 일본 총리와 외무대신, 육해대신으로 구성된 전쟁지도최고회의가 지금의 중국 동북부인 만주와 남사할린, 일본에 속해 있던 쿠릴 열도 북반부에 건설된 철도망을 소련에 중재의 대가로 넘겨주기로 결정했다.
세니와 연구원은 “전쟁에서 제삼자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소련에 매달리는 방안의 비현실성을 직시했어야 한다”고 질책했다.
당시 소련은 일본에 46년까지 상호불가침을 규정한 소련-일본 중립 조약이 연장되지 않을 것이라고 통보했다. 소련은 45년 2월 자국 흑해 연안 얄타에서 이뤄진 미국·영국 수뇌부와의 회담(얄타회담)에서 미국의 벌이고 있는 대일 전쟁에 합세하기로도 약속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본은 자국에 항복을 권고하는 포츠담 선언을 무시하고 소련을 통한 종전 중재를 계속 시도했다. 포츠담 선언은 초안에 일본의 입헌군주제를 보장한다고 명시했다가 이 내용을 삭제했다. 미국 내에는 천황제가 일본 군국주의의 원인이라는 강한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외할아버지가 총에 맞은 다리를 늘 절뚝거리며 걸었고, 증조부가 살아서 돌아온 이오지마에서는 2만3000명의 수비군 중 90%가 전사한 사실을 언급했다. “많은 일본군이 바다 한가운데 외딴 섬에서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죽었다”며 일본 정부가 일으킨 전쟁이 무수한 일본인에게도 비극을 가져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세니와 연구원은 “제2차 세계대전 패권국이었던 미국은 나치 독일과 일본 군국주의의 위험성에 주목하고, 자국 군인들의 희생을 외면하더라도 무조건적 항복 또는 그에 가까운 것으로 전쟁을 끝냈다”며 “연합국이 철저히 나치 독일을 응징한 것은 제1차 대전 후 약 20년 만에 다시 독일과의 세계대전이 발생했다는 반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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