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토 기습에 놀란 푸틴, 심복 경호원까지 전쟁터 보냈다
러시아 본토 쿠르스크 주(州)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계속된 공세에 러시아가 다급해졌다. 우크라이나 전장에 보냈던 병력 일부를 철수시키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을 투입하는 등 서두르는 모양새다.
뉴욕타임스(NYT)는 14일(현지시간) 미국과 우크라이나 당국자를 인용해 “쿠르스크를 급습한 우크라이나의 공세를 물리치기 위해 러시아가 자포리자와 드니프로 등 우크라이나 남부에 배치했던 병력 일부를 빼내기 시작했다”며 “우크라이나의 움직임은 러시아의 전투 계획을 바꾸고 러시아가 우위를 점해왔던 전장에 새로운 전선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다만 러시아는 격전지인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일대 부대는 빼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갑대대 등 다른 전투 부대의 이동도 관측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세르히 쿠잔 우크라이나 안보협력센터 의장은 NYT에 “러시아의 전략은 도네츠크 방면의 부대 동원을 최대한 피하는 것”이라며 “러시아는 올 여름 공세 작전의 모든 성과를 위태롭게 하는 것을 꺼릴 것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푸틴, 체첸 아흐마트 여단도 투입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심복도 전장에 투입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푸틴 대통령의 ‘눈과 귀’로 불리며 개인 경호를 맡았던 알렉세이 듀민 국무원 서기가 우크라이나군의 쿠르스크 진격에 대응하기 위한 작전에 투입됐다고 보도했다. 니콜라이 이바노프 쿠르스크 하원의원은 러시아 매체 RTVI에 듀민 서기가 현지 작전 책임을 맡았다고 전했다.
잔혹한 전투 방식으로 악명 높은 특수부대 체첸군 ‘아흐마트 여단’도 투입됐다. 키이우포스트는 “쿠르스크 지역에서 우크라군이 잡은 포로 중 체첸 출신들이 확인됐다”며 “러시아 매체에서도 아흐마트 여단이 투입됐다는 소식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아흐마트 여단은 푸틴의 최측근 람잔 카디로프 체첸 자치공화국 수장이 직접 지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젤렌스키 “쿠르스크 다방면서 1∼2㎞ 더 진격”
9일째 쿠르스크를 공격하고 있는 우크라이나군은 전과를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군이 여러 방면에서 1∼2㎞를 더 진격했고, 100명 넘는 러시아 군인을 생포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의 화상보고 영상과 함께 이 같은 내용을 텔레그램에 게시했다.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6일 쿠르스크를 진입한 뒤 계속 기세를 올리면서 전진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점령한 땅에 ‘완충지대’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쿠르스크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방향으로 민간인이 대피할 수 있는 통로를 조성하겠다는 취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저녁 연설에서 “오늘 쿠르스크 지역에서 진격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우리는 전략적 목표에 다가서고 있다”며 “규칙을 준수해 싸우는 게 중요하며, 이 지역의 인도주의적 필요가 충족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리나 베레시추크 우크라이나 부총리도 텔레그램을 통해 “우리 군은 민간인 대피를 위한 인도적 통로를 열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르클리멘코 내무장관은 “쿠르스크에 완충지대를 설치하는 일은 매일 벌어지는 적의 공격에서 우리 국경지역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덧붙였다. 완충지대는 러시아가 자국 민간인 보호를 명분으로 하르키우 등 국경 근처 우크라이나 영토를 공격할 때 줄곧 써온 용어다.
러 “우크라군 격퇴…조만간 광범위한 공세”
반면 러시아는 자국 영토에 들어온 우크라이나군을 성공적으로 격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12일까지 러시아 영토에서 1000㎢, 이튿날 하루 동안 3㎞를 더 진격해 40㎢를 추가로 장악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군이 40㎞ 전선에 걸쳐 영토 안 12㎞까지 진입한 정도라고 반박했다. 우크라이나가 주장하는 면적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이와 관련해 AFP통신은 전날 미국 전쟁연구소(ISW) 자료를 분석한 결과 양측이 주장하는 넓이의 중간 정도인 약 800㎢를 우크라이나가 장악했다고 보도했다. ISW는 러시아 소식통을 인용해 두 나라 군대가 국경에서 17∼30㎞ 떨어진 지역에서 교전 중이라고 전했다.
쿠르스크의 요충지인 수드자 마을에 대한 통제권에 대해서도 양측은 상반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영TV는 이날 수드자 마을 관공서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국기를 내리는 장면을 방송하며 자국군이 이 마을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압티 알라우디노프 러시아 체첸공화국 아흐마트 특수부대 사령관은 양측이 매일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는 것은 맞지만, 우크라이나군이 수드자를 통제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군이 현재 남은 우크라이나군을 완전히 파괴하기 위해 조만간 광범위한 공세를 개시할 것이라고도 예고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경에서 10㎞ 안팎 떨어진 수드자에는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수송하는 가스관 시설이 있다.
사복 입히고 미국에도 함구…러시아군은 방심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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