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수당 주자 주말 근무가 사라졌다 [경영전략노트]
미국 해리 트루먼 대통령 시절, 백악관 참모진들은 매일 격무에 시달렸다. 밤샘 회의는 다반사였다. 하지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백악관은 그야말로 활기가 넘쳤다. 대통령은 주말까지 열심히 일하는 참모에게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이후 더 이상 토요일 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하버드대 교수를 지낸 경제학자 새뮤얼 보울스가 쓴 ‘도덕경제학(The moral economy)’에 나온 에피소드다.
새뮤얼 보울스 교수에 따르면, 인센티브가 없었을 때는 힘들어도 웃으면서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돈으로 보상을 주니 의욕이 떨어지고 동기 부여가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자긍심이 돈으로 환산되는 순간, 돈 몇 푼에 더 이상 주말을 반납하고 싶어 하지 않게 됐다는 설명이다. 보울스 교수는 “인센티브라는 틀이 생기면 자신을 인센티브에 의해 움직이는 수동적 존재로 규정하고, 더 이상 자발적인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고 분석했다.
“자존심 구겨져” 되레 야근 중단
인센티브는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이기적 인간’을 전제로 삼는다. 기업 역시 ‘성과에 따른 보상’은 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여긴다. 인센티브는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노력 효과’, 우수 인재를 유지·확보하는 효과, 비능률적인 인력을 도태시키는 ‘도태 효과’ 등이 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뜻밖에도(?) 보상이 성과를 떨어뜨린다는 연구가 적지 않다. 이른바 ‘인센티브의 역설’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엔카르타(Encarta)라는 백과사전 프로젝트를 1993년 완성했다. 세계적인 석학에게 상당한 보수를 제공하며 방대한 내용을 심도 있게 다룬 백과사전을 만들었다. 엔카르타는 MS윈도에 무료로 제공돼 디지털 백과 시장을 장악했다. 하지만 엔카르타는 2001년 위키피디아(Wikipidia)의 등장과 함께 순식간에 퇴출됐다. 위키피디아는 일반인의 자발적 참여로 만들어진다. 참여자에게는 단 한 푼의 보상도 없다. 주체도 조직도 보상도 없는 이 프로젝트의 성공을 낙관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엔카르타는 2009년 문을 닫았다. 위키피디아는 지금까지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물질적인 인센티브를 전혀 받지 않는 일반인이, 큰돈을 받는 전문가집단을 이긴 셈이다.
돈만 생각하니 일의 재미 떨어져
못 받은 다수는 최소한의 일만 처리
인간이 보상에만 반응하지 않는다는 점을 설명하는 이론이 ‘과잉 정당화 효과(overjustification effect)’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보상이 주어지면 보상 때문에 그 일을 하고 있다고 추론한다. 즐거웠던 작업이 갑자기 먹고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일로 ‘정당화’돼버린다는 게 골자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업(業)이 된 이후는 더 이상 즐겁지 않게 됐다는 이가 적지 않다. 영화가 너무 좋아 영화 담당 기자가 됐지만, “매일 3편 이상의 영화를 보고 그 무슨 평가라도 짜내야 하다 보니, 영화가 더 이상 기쁨을 주지 않았다”는 식이다.
빌 러셀은 미국 프로농구(NBA)에서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진 유명 선수다. 1956년부터 1969년까지 13년 동안 보스턴 셀틱스에서 11번 우승했다. 13년 중 단 2번만 우승을 놓쳤다. 그는 은퇴 뒤 이런 말을 했다.
“농구장에 들어설 때마다 돈과 명성에 관한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농구 게임은 비즈니스였다. 농구가 내게 주던 마법 같은 즐거움은 사라졌다.”
위대한 선수였던 빌 러셀의 입에서 농구를 즐기지 못했다는 말이 나오자 많은 사람은 충격을 받았다. ‘농구가 곧 돈’이 되는 순간, 농구가 재미없고 싫어졌던 것이다.
‘보상에 의한 처벌(Punished by Rewards)’의 저자인 미국 심리학자 알피 콘 역시 보상이 오히려 동기 부여를 훼손한다고 했다. 애완동물과는 달리 우수한 인재를 움직이는 힘은 ‘당근과 채찍(보상 시스템)’이 아니라 스스로 일 자체를 즐기고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에드워드 데시 로체스터대 심리학과 교수는 1999년 보상의 효과에 관한 128개 논문을 분석한 뒤 “실체가 있는 보상은 어떤 형태이든 내적 동기를 낮춘다”고 결론 내렸다. 내적 동기를 낮춘다는 의미는 보상이 주어지는 일을 결국은 싫어하게 된다는 뜻이다. 단기적으로는 성과를 높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평생 자기가 하는 일을 흥미롭지 않게 생각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인센티브가 보상받지 못한 이들의 업무 동기를 낮춘다는 점 역시 간과하기 어렵다. 보상은 특성상 대체로 보상받지 못하는 사람이 받는 사람보다 많다.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다음에는 꼭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더 일하게 될까. 김영훈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본인 성과와 보상을 받은 직원 성과를 비교해보고 다음에도 받기 힘들다고 체념해버리기 때문이다. 반복적으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조직원은 업무에서 최소한의 일만 한다. 최근 이슈가 된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현상이다. 퇴사는 하지 않는데 업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최소한의 업무만 처리하기 때문에 기업으로서는 성과를 낮추는 요인이 된다. 보상의 목표는 전 직원 동기를 높이는 것이지만 다수 직원 사이와 생산성을 낮추는 역설적인 현상이 벌어진다.
원래 싫은 일이라면 보상 효과적
돈만으론 부족…소명의식 줘야
대표적인 인센티브 제도인 스톡옵션에서도 한계가 나타난다. ‘스톡옵션의 아버지’로 불리던 마이클 젠슨 하버드대 교수는 주인(주주)을 위해 고용된 CEO(대리인)는 주주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데, 정작 자신의 안위를 중심으로 경영하는 폐해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는 ‘기업 이론: 경영자 행동, 대리인 비용 그리고 소유 구조’라는 논문을 내고, 스톡옵션 제도를 알렸다. 하지만 마이클 젠슨 교수도 인정했을 만큼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단기적으로 가시적인 성과만을 추구해 장기적인 성장에 역효과를 가져오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결국 주가 하락으로 임직원 노력에 대한 보상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주가 등락에 따라 구성원 간에 희비가 엇갈리며 갈등 요소로 떠오르고는 했다.
그렇다고 성과 보상 제도가 아예 무용지물이라고 단정 지어선 곤란하다. 몇 가지 조건이 충족한다면 강력한 업무 동기를 끌어낼 수 있는 촉진제인 것도 분명하다.
첫째, 애초부터 일에 대한 내적 동기가 없을 때 인센티브가 효과를 발휘한다. 애초부터 즐거운 일을 하려 했던 게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면 돈이라는 보상이 가장 유용하다. 직원이 어차피 하기 싫은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보상이 적절한 유인책일 수 있다. 둘째, 프로젝트를 급하게 마쳐야 하는 경우라면 보상이 효과적이다. 김영훈 교수는 “업무에 대한 동기가 작동할 때까지 기다리기 힘들다면 인센티브를 통해 직무 열의를 끌어낼 수 있다”고 했다.
셋째, 평가 지표가 측정 가능하고 공정해야 한다. 공정한 평가 제도라는 믿음이 깔린 조직이라면 조직원이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노력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마지막으로 기업 입장에서는 조직원의 일에 가치를 부여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을 방문했을 때다. 로비를 지나다 열심히 바닥을 닦는 청소부를 봤다. 힘든 일이지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신나게 일했다. 대통령이 다가가 “무엇이 그렇게 즐거움을 주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나는 일개 청소부가 아니라 인간을 달에 보내는 일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일에 대한 소명의식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준다. 기업은 비즈니스 모델이나 직원 직무가 어떻게 세상을 이롭게 하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하는 이유다. 소명의식에 보상까지 부여하면 직원은 더 큰 업무 동기를 발휘하게 된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2호 (2024.08.14~2024.08.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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