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 11개 닿는 '큰 손' 韓피아니스트…25살의 참을 수 없는 섬세함
“큰 손과 덩치요? 부모님께 제일 감사드리는 부분이에요.”
키 187㎝인 피아니스트 박재홍(25)이 13일 기자간담회에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큰 체구의 박재홍은 손의 크기를 묻는 질문에 “도에서 (그 다음 옥타브의) 미까지는 편하게 닿고, 파 정도까지 닿는다”고 했다. 건반 11개를 커버하는 ‘11도 손’이다. 전설적으로 큰 손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13도 손’에 가깝다.
전에 없던 체급의 피아니스트 박재홍이 본격적인 데뷔 앨범을 내고 도약을 시작한다. 그는 러시아 작곡가인 스크리아빈과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으로 음반을 냈다. 스크리아빈의 전주곡 24곡, 라흐마니노프의 소나타 1번이다.
“두 곡이 각 작곡가의 주요곡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색채를 분명히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 선곡했다. 특히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1번은 어려서부터 꼭 연주하고 싶었던 곡이었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두 작곡가는 한 살 차이(스크리아빈 1872년, 라흐마니노프 1873년생)로 모스크바 음악원의 팽팽한 경쟁자이자 동료였다. 박재홍은 “두 작곡가를 너무나 사랑하는데 유명한 곡만 사랑받고 있어 서운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을 갈고 닦는 것도 나의 의무라 생각한다”고 했다.
시원스러운 스케일의 피아니스트에게 러시아 음악은 좋은 조합이다. 박재홍은 2021년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할 때도 마지막 무대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 큰 덩치로 피아노를 내려찍는 연주는 아니었다. 오히려 섬세했고 음악의 디테일을 모두 살려내는 편이었다. 무엇보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부분을 자연스럽고 손쉽게 처리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이 대회에서 우승은 물론 4개의 특별상도 차지했다.
박재홍은 “이번 음반은 내가 좋아하는 러시아 음악에 잠깐의 안녕을 고하는 의미”라고 했다. 그는 지금껏 한국에서만 공부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김대진 현 총장을 사사했다. 10월 독일 베를린으로 거처를 옮긴다.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이 베를린에 세운 ‘바렌보임 사이드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기 위해서다. 새로운 선생님은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 2년 전 내한 공연에서 박재홍이 쉬프의 통역을 맡았던 인연이 있다. 박재홍은 “통역 이후 쉬프 앞에서 슈만의 소나타 1번과 프랑크의 작품을 연주했다. 바로 베를린에서 만나자 해서 올해 학교에 들어가게 됐다”며 “쉬프와는 독일 음악을 열심히 해보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박재홍은 한국 피아니스트 중에서도 독특한 존재다. 큰 키와 체구는 물론 세련된 영어를 구사하며 주목 받았다. 문학ㆍ미술ㆍ영화 등 예술 전반에 대한 관심사도 넓고 깊다. 무엇보다 안드라스 쉬프는 물론 크리스티안 짐머만, 미하일 플레트네프 등 전설적 피아니스트가 박재홍의 연주를 듣고 찬사를 보냈다. 그는 이번 음반 발매에 앞서 런던ㆍ빈 등에서 연주하며 세계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음반으로 녹음한 작품으로 한국에서 독주회 투어를 연다. 이달 25일 통영에서 시작해 다음 달 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6일 울산 울주문화회관, 21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26일 경남 진주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끝나는 일정이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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