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올림픽 경기를 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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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15년 전 KBS 주말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에 나왔던 대사다.
회사원으로 보이는 박성광이 경찰 조사를 기다리는 듯 술에 취해 자고 있다가 다른 출연자들의 대사 중간에 끼어들어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냐.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외쳤던, 한동안 전국을 뒤덮은 유행어였다.
사격의 김예지 선수는 결선 진출에 실패한 뒤 "(올림픽 메달이)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인생은 계속되고, 이건 하나의 대회일 뿐이다"라는 소감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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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15년 전 KBS 주말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에 나왔던 대사다. 회사원으로 보이는 박성광이 경찰 조사를 기다리는 듯 술에 취해 자고 있다가 다른 출연자들의 대사 중간에 끼어들어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냐.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외쳤던, 한동안 전국을 뒤덮은 유행어였다. 그 무렵 1등 제일주의, 무한경쟁의 병폐를 지적하는 글들이 꽤 나왔다. 그래도 사회는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는 ‘최고’에 집중해 왔다.
다른 분야도 다르지 않지만 스포츠 분야는 1등만 기억한다. 은메달, 동메달은 메달이 아니었다. 선수들도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따면 인터뷰 내내 민망할 정도로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했다. 예선 탈락이라도 하면 죄인이었다. 국가대표 선수단 운영 비용에 세금이 들어갔다 해도 사과할 일은 아니지 않나.
이번 2024 파리올림픽은 달랐다. 선수들은 메달 색깔과 관계없이 도전하고 경쟁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뒀다. 열심히 노력해 얻은 결과라면 그 자체로 의미 있다고 여겼다. 사격의 김예지 선수는 결선 진출에 실패한 뒤 “(올림픽 메달이)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인생은 계속되고, 이건 하나의 대회일 뿐이다”라는 소감을 말했다. “제가 메달 유력 후보가 아니라고 해도 신경 안 썼다. 그냥 순간을 즐겼다.”(사격 오예진) “일단 이번 대회에 큰 아쉬움은 없는 거 같다. 누구보다 간절했고 간절함이 잘 통했던 것 같아서.”(수영 김우민) 등의 말에서 선수들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느꼈다.
식상한 ‘Z세대의 공정’을 얘기 안 할 수 없다. 김용섭 트렌드 분석가는 저서 ‘결국 Z세대가 세상을 지배한다’에서 지금의 20·30대에게 공정이란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내 노력과 실력에 합당한 평가와 대접을 받고 싶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지금 시대의 ‘공정’은 정의가 아닌 생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기가 노력하고 공정하게, 정당하게 한 것은 다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며 “이러한 Z세대의 태도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난 올림픽 때와 달리 인기 있는 구기 종목이 대거 탈락하고 인기가 적은 종목에 출전한 것도 오히려 좋았다. 1976 몬트리올올림픽 50명 이후 가장 적은 21개 종목 144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그래서인지 예전이면 중계도 하지 않을 종목을 끊김 없이, 인기 종목으로 화면을 전환 당하지 않고, 예선부터 볼 수 있었다. KBS 1TV는 다른 나라의, 색다른 종목의 경기도 중계했다. 인기 종목이 아니더라도, 우리 대표팀 경기가 아니더라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가 조금 충족됐다.
2026 밀라노 동계올림픽 이후 2028 LA올림픽, 2032 브리즈번올림픽 중계권은 지상파 방송 공동협의체가 아닌 개별 방송사가 갖고 있다. 유료방송 미가입자는 올림픽 중계를 볼 수 없을 수 있다는 걱정도 있지만 협의하기에 따라 전혀 다른 중계 방식을 접하게 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보편적 관심사인 종목은 예전대로 중계하고, 무료이면 더 좋겠지만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전 종목 전 경기를 중계하는 방식이다.
사람들이 운동경기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선수들의 땀과 열정, 한계를 넘어서는 노력으로 얻어지는 결과 때문 아닌가. 1등이 아니더라도 나름의 가치를 인정받고 느끼는 행복에 공감하는 대리만족은 크다.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은 “올림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회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음 올림픽부터 승부만이 아닌 전 세계 모든 종목 선수들의 땀과 열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jw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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