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청라 전기차 화재를 기회로 삼아야
전기차 회의적 시각 크게 늘어
한국 차량·배터리 경쟁력 높아
중국 아성에 맞설 유일한 나라
실효성 없는 규제 만들기보다
대안 제시해 시장 선도해야
청라 전기차 화재 사건 이후 전기차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의 논쟁이 이어지면서 전기차 보급 확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배터리 원료 채굴과 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환경 훼손과 노동력 착취를 지적하며 전기차가 친환경적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또한 중국이 배터리 공급망을 장악한 상황에서 전기차 시장의 확대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만 높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최근 일고 있는 전기차에 대한 지나친 회의론은 경계해야 한다. 이번 화재가 배터리 결함이나 차주의 과충전으로 인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사고 당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아 피해 규모가 커진 사실만 확인됐을 뿐 명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전기차 배터리 충전 잔량이 90%를 넘는 경우 공공주택 지하주차장 진입을 제한하겠다는 과충전 방지 대책을 서둘러 내놓았다.
국내 전기차의 미국 시장점유율은 올 전반기에 11.2%를 기록하며 테슬라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국내 배터리 3사의 지난해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23.1%로 중국에 이어 2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배터리와 전기차 제조 등 전기차 생태계 전반에 걸쳐 중국에 대한 경쟁력을 갖춘 유일한 국가다. 실효성도 없는 규제를 만들어 시장의 불안감을 높이고 전기차 시장을 위축시키기보다 사고의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고 전기차 시장의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시장 선도를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
국토교통부가 전기차 배터리의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해 내년 2월부터 도입하는 ‘전기차 배터리 안전성 인증제’에 전기차 제조사의 배터리 정보 공개 의무화를 포함시켜 전기차 구매 시 배터리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전기차 구매를 위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터리가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잡도록 해야 한다. 유럽과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2026년부터 전기차 제조사의 배터리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고 있다. 배터리 정보 공개는 국내 배터리 업체에 또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중국 업체에 비해 국내 업체의 가격경쟁력은 뒤지지만 품질경쟁력은 앞서기 때문이다.
이번 화재를 계기로 세계 최고 명품 자동차 중 하나인 벤츠가 지속적으로 품질 문제가 제기된 세계 10위권 업체인 중국 파라시스의 배터리를 왜 사용했을까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벤츠의 1, 2대 주주인 중국 기업들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진위를 떠나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의 지배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부분 자동차 제조사들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중심축을 급작스럽게 이동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전기차 시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 공급망을 지배하고 있는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각국이 추진하는 배터리 정보 공개 의무화는 품질경쟁력을 가진 국내 배터리 3사에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배터리산업의 특성을 살펴보면 적극적인 투자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배터리산업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장치산업임에도 불구하고 원가의 70%에 달하는 높은 원재료비 때문에 마진율이 낮고 규모의 경제 효과도 누리기 힘들다. 또한 점유율 10% 이하 기업들이 난립할 만큼 진입장벽도 높지 않아 최근에는 전기차 제조사들까지 시장에 진입하고 있어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리콜 리스크도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거대한 전기차 내수시장과 배터리 소재 시장의 독점을 기반으로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향후 본격적으로 성장할 전기차 시장에서 국내 관련 업체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보조금을 통한 내수시장 확대도 중요하지만 배터리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배터리 소재 및 조립 기술 확보를 위한 지원이 더욱 중요하다. 동시에 전기차에 대한 지나친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주차 및 충전 시설에 대한 소방법과 시설을 재점검해야 한다. 자동차 화재 발생 건수를 조사한 국내외 자료를 살펴보면 등록차량 수 대비 화재 발생 건수뿐만 아니라 주행거리 대비 화재 발생 건수도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차가 적지만 화재 발생 시 리튬이온 배터리 특성상 열폭주가 발생해 화재 진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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