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의 컬처 아이] 파리올림픽에서 문화계가 배울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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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올림픽이 얼마 전 폐막했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선수촌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기로 한 파리올림픽조직위원회의 결정에 각국이 불만을 쏟아냈지만 조직위원회의 대답은 단호했다.
기후위기 시대, 파리올림픽이 준 가장 큰 교훈은 좋은 전시, 좋은 공연을 위해 반드시 새 건물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 아닐까.
그 건물 안에서 어떤 공연, 어떤 전시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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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올림픽이 얼마 전 폐막했다. ‘총·칼·활’을 필두로 세대교체를 한 ‘팀 코리아’가 밤마다 써 내려간 메달 기적의 드라마는 감동 그 자체였다. 금빛 에펠탑을 배경으로 희게 빛나던 오륜기를 더는 볼 수 없게 됐다는 게 아쉽다. 흰색 오륜기는 경계를 허문 파리올림픽 정신의 상징 같았다.
철학이 느껴지는 올림픽은 처음이었다. 탄소중립, 성평등, 다양성 등 진보적 가치를 주장만 한 게 아니라 개막식과 경기 운영을 통해 관철했다. 그 뚝심과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스포츠 관람에 관심 없는 나를 이번 올림픽 기간 내내 TV 앞으로 불러낸 건 ‘에어컨 소동’이었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선수촌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기로 한 파리올림픽조직위원회의 결정에 각국이 불만을 쏟아냈지만 조직위원회의 대답은 단호했다. “탄소발자국을 줄여야 하는 세상에서 실내 온도를 18도로 유지하며 여름을 날 필요는 없다.”
철학과 실행력을 동시에 가진 파리의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탄소중립은 파리올림픽 정신의 뼈대처럼 보였다. 수질 시비 속에서도 강행한 센강에서의 철인 3종 수영은 파리 뚝심의 하이라이트였다.
파리는 올림픽용 건물을 짓지 않고 기존 건물과 장소를 활용했다. 에펠탑 앞에서 비치발리볼, 앵발리드 군사박물관에서 양궁,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 때 건설된 그랑팔레에서 펜싱과 태권도 등의 경기가 열렸다. 건축 쓰레기 문제는 심각하다. 한국만 봐도 2019년 기준 전체 폐기물 가운데 건설 폐기물의 비중이 44.5%로 가장 높다. 때문에 건축 쓰레기를 줄이는 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동시에 파리의 명소를 새롭게 보게 했다. 올림픽을 시청하면서 파리를 다시 가고 싶다는 주변 사람이 많다.
토마스 졸리가 예술감독을 맡은 개막식은 ‘문화예술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거 같다. ‘완전히 개방된 올림픽(Games Wide Open)’ 슬로건은 공허하지 않았다. 사상 처음 경기장 밖에서 개막식이 열린 점이 신선했다. 난민 팀을 포함한 205개국 선수단은 센강 위를 떠가는 배를 타고 입장했다. 바지선 위에서 춤추는 댄서들은 인종의 용광로였다. 경계의 해체는 그렇게 구석구석 고려됐다. 개막식 장소가 통제가 쉬운 경기장 안이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실수는 오히려 파리의 대범함을 빛내는 요소처럼 보였다.
올림픽 성화를 든 괴도 뤼팽은 루브르박물관, 노트르담대성당을 휘젓고 다녔다. 파리가 자랑하는 관광 명소를 전 세계에 새로운 방식으로 노출하는 효과를 냈다. 이보다 전략적인 관광 마케팅이 나올 수 있을까. 프랑스의 자랑인 루브르의 모나리자 도난 사건까지 패러디했다.
뤼팽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연습장을 찾아감으로써 전통까지 자랑했다. 1789년 바스티유감옥을 습격하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당시 장면처럼 생생하게 연출됐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투옥됐던 파리 최초의 형무소도 개막식 장소로 쓰였는데, 충격적이게도 자신의 목을 쥔 붉은 드레스를 입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창에 전시됐다. 그렇게 ‘왕비를 처형했던 나라’ ‘혁명의 나라’ 프랑스를 진부하지 않게 세계인에게 각인시켰다.
개막식이 닫힌 공간에서 진행됐다면 이런 연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전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형식은 매번 새로워야 한다. 진부한 주제를 진부하지 않게 연출해내는 것은 사람이다.
기후위기 시대, 파리올림픽이 준 가장 큰 교훈은 좋은 전시, 좋은 공연을 위해 반드시 새 건물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 아닐까. 한국은 어떤가. 지방자치단체마다 단체장의 선거용 치적 쌓기처럼 건물부터 짓고 본다. 그 건물 안에서 어떤 공연, 어떤 전시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없다. 사람에 대한 투자를 배웠으면 한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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