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약자, 노인

2024. 8. 15. 00:3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약자 집단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는 이 질문에 대해 힌트를 주었지만 아무도 그 힌트를 적극적으로 파고들려고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들이야말로 가장 약자들이라는 심증을 다시 한번 굳히게 해준다. 다름 아닌 노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고통을 겪었지만, 요양원에 갇힌 노인들의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젊은이들의 공간인 학교와 직장과 대중교통의 위생과 소독에 온 사회가 신경을 곤두세웠던 것에 비하면 병든 노인들만의 공간인 요양원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었는지 파악조차 할 수 없다. 유리창 너머 격리된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때 가족들조차 그들의 사인이 정확히 무엇인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코로나19라는 게 밝혀지면 절차가 복잡해질 뿐이다. 생사 여부가 크게 중요하지 않고 죽은 후에 사인조차 굳이 알 필요 없다면, 그들이야말로 가장 약자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 코로나19 기간 중 가장 고통 받아
앱 이용 몰라 택시 잡기도 힘들어
고령 운전 백안시로 이동권 위협
노인의 권리 위한 제도화가 필요

요즘 세상에 노인이 택시를 탄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몇 년 전 지방 도시로 출장을 갔을 때의 일이다. 종합운동장 옆 택시 정류장은 택시를 잡는 곳이 아니라 앱으로 불러놓은 택시를 기다리는 곳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요즘 택시들은 목적지를 모르는 손님을 길에서 태우지 않는다. 거기에 당황한 표정으로 서 계신 할머니는 빈 택시들이 왜 자신을 태워주지 않는지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할머니께 앱으로 택시를 불러야 한다는 걸 설명해드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신 불러드리고 싶었지만, 그러면 그분이 목적지에 내리기 전까지 내 택시를 부르지 못한다. 나도 함께 당황해 하는 사이 내가 불렀던 택시는 야속하게 도착해버리고, 하던 말을 끝맺지도 못한 채 얼떨결에 택시에 탄다. 낯설게 변해버린 택시 정류장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말이 통했던 중년 아저씨를 떠나보내던 할머니의 낭패스러운 차창 너머 표정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가 노인의 이동권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노인이 운전하는 자동차가 교통사고라도 일으키면 언론은 운전자가 노인이라는 사실을 부각하기에 바쁘다. 무슨 중대범죄도 아니고 교통사고에 대해 운전자의 연령을 집중 부각하는 것은 따져볼 것도 없이 노인이라서 사고를 일으켰다는 예단일 것이다. 비록 돌발상황 대처 능력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애초에 젊은 사람보다 훨씬 천천히 안전하게 운전한다는 점, 사고지점의 지형이나 상황상 누구라도 사고를 일으켰을 위험이 높을 수도 있다는 점, 고령화로 노인 운전자는 많아질 수밖에 없는데 막상 자동차에 고령자에 필요한 안전장치를 의무화하는 정책은 없다시피 하다는 점 등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사고를 일으킨 여성 운전자에 대해 감히 “여성이라서 사고를 일으켰다”는 투의 보도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노인은 막 대해도 항의받을 걱정이 없는 집단이 되어있다.

이런 인식은 고령 운전자들에게 면허를 자진반납 하라는 유·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한다. 대안이 있다면 반납할 수도 있겠지만, 노인이 택시도 못 타는 나라에서 면허 반납하면 어쩌라는 말인가. 우리보다 20~25년 앞서서 초고령사회를 경험하고 있는 일본에는 오죽하면 ‘구매 난민’이란 단어가 생겨났다. 골목길 초입을 지키던 구멍가게도 모두 사라진 요즘, 멀리 떨어진 마트까지 갈 수가 없어서 돈이 있어도 밥을 굶는 노인들이다. 정확한 수를 알 수는 없지만 언론은 대략 600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요즘 부모 중에 나중에 자식과 함께 살 것이라고 말하는 간 큰 사람은 없다. 필자는 가끔 수업 시간에 관련된 주제를 다룰 때면 학생들의 생각을 묻곤 한다. 20여 명 수강생 중 나중에 부모님의 노후를 돌보겠다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다. 고민 끝에 못하겠다가 아니라 애초에 고민거리가 아니다. 결혼할 생각이 있는 학생도 많지 않지만, 혹시 결혼하게 된다면 부부 단둘만 가족일 뿐 부모는 더 이상 가족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경우도 많다. 배우자의 부모는 일찌감치 고려대상도 아니다. 요즘 부모들도 설마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2019년 서울대 국가정책포럼의 요청으로 필자가 수행했던 데이터 분석 결과가 있다. 세계 가치관 조사에 참여하는 50여 개 국가의 30년 치 자료를 분석한 결과, 고령화율이 20% 높아지는 동안 부모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무려 30%나 떨어졌다. 지금 단계에서 노인의 권리를 명확히 하고 제도화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세계 최고 속도의 초고령화 한국에서 노인은 부담스러운 짐짝 취급을 받게 될 것이란 경고다. 온 나라가 금쪽같은 MZ세대에만 매달리는 것이 옳은지 돌아볼 일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