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기의 시시각각] 이래서 G8, G9이 되겠는가

김현기 2024. 8. 15.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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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개월마다 바뀌는 국가안보실장
본인도 상대 파트너도 헷갈릴 것
이런 발상으론 외교강국 어림없어

김현기 논설위원

"바이든이 시진핑보다 우월했던 게 아니다. 설리번이 양제츠·왕이보다 우월했던 것이다."
50년 넘게 미국·중국의 외교 현장을 워치해 온 일본의 한 국제관계 원로는 지난 4년의 미·중 외교를 이렇게 표현했다. 설리번은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우리로 따지면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인 국가안보실장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2020년 대통령선거에서 당선하자마자 실시한 첫인사가 설리번이었다. 당시 만 44세.

46세에 닉슨 행정부 국가안보보좌관이 된 키신저보다 더 젊은 나이였다. 예일대를 3등으로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그런 '스펙'보다 그가 더 자랑스러워하는 상장은 '세계 대학생 토론대회' 준우승. 그래서인지 그의 토론력과 논리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듣는 방법, 사람들을 모으는 방법, 목표를 향해 전략화하는 방법을 정확히 이해하는 인물"(힐러리), "영리하면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겸손하다"(클로부셔 미네소타주 상원의원)는 찬사를 지난 4년 내내 들었다.

'세기의 격돌'로 불린 2021년 알래스카에서의 미·중 외교수뇌부 회담. 중국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미국 생각이 곧 국제 여론일 것 같으냐. 절대 아니다. 자국 일이나 잘해라"고 도발했다. 이에 설리번이 이렇게 뼈 있게 받아쳤다. "자신 있는 국가는 모름지기 자신의 단점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그것을 개선하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법. 그게 바로 미국의 비밀 소스(경쟁력 비결)이기도 하다." 국제 외교가에 회자하는 명언이 됐다.

2021년 3월 미국 앵커리지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 회담 중인 왕이 외교부장, 양제츠 정치국 위원, 앤서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왼쪽부터). 중앙포토


하지만 난 설리번의 이런 능력보다 더 탁월한 능력에 주목한다. 설리번을 임기 내내 바꾸지 않고 기용한 바이든의 용인술이다. 서른 살에 상원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해 50년 넘게 국제정치를 관찰해 온 관록이다. 외교에서 핵심은 국익이다. 그리고 국익을 위해선 외교의 일관성과 신뢰성이 핵심이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저간의 사정, 흐름을 꿰고 카운터파트 및 상대국과 때로는 맞장을, 때로는 마주앉아 설득할 수 있는 비결은 연속성이다. 이런저런 국제회의에 나가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바뀐 누구누구라고 합니다"라며 명함을 건네는 이들과 그런 관계가 맺어질 리 만무하다.

'믿을맨'을 뽑아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길게 보고, 믿고 맡기고, 참아주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다. 주변을 둘러보면 비단 미국만 그런 게 아니다. 중국은 시진핑이 2013년 국가주석 취임 이후 11년 동안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딱 두 사람만 뒀다. 양제츠, 그리고 현직인 왕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14일 차기 자민당 총재 불출마 의사를 밝힌 기시다도 만 3년 동안의 총리 임기 동안 아키바 국가안전보장국장 한 사람을 썼다. 그 자리는 자국은 물론이고 주요 상대국과 '함께 가는' 자리라는 공감대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지난 12일 새로 지명된 신원식 신임 국가안보실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2년3개월 만에 네 번째다. 잦아도 너무 잦다. 대통령실이 설명하는 교체 이유는 늘 똑같다.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그런 건 이유가 될 수 없다. 1년 365일 매일매일 변하는 게 국제 정세 아닌가. 올 11월 미국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 또 바꿀 것인가. 다음 달 기시다 일본 총리의 후임이 정해지면 또 바꿀 것인가. 진작 바꿔야 할 내치 장관은 안 바꾸고, 바꾸면 곤란한 외교·안보 수뇌부들만 바꾸고 있다.

신원식 신임 국가안보실장(왼쪽)과 김용현 신임 국방장관 지명자 (오른쪽). 연합뉴스, 뉴스1


이쯤 되면 인사권자의 외교 철학과 비전 부재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셋 중 하나일 것이다. ▶국가안보실장이란 자리의 기능과 무게를 아직도 잘 모르거나 ▶국가안보실장을 '바지사장'으로 번갈아 앉히면서 다른 누군가에게 실질적 파워를 주고 있거나 ▶외교 또한 대통령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거나다. 짐작은 가지만, 어느 쪽이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런 주먹구구, 우물 안 개구리식 발상으로 무슨 외교 강국 G8, G9이 되겠는가.

김현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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