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룡의 신 영웅전] 식민통치 전문가 알프레드 밀너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조선 통감이 되자 어떻게 하면 식민지 국민을 저항 없이 다스릴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그는 영국 식민 정책의 설계자인 알프레드 밀너(1854~1925) 자작을 주목했다. 그는 옥스퍼드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는데, 이때 젊은 경제사학자로 유명한 아널드 토인비(1852~1883)를 만나 식민 정책에 눈을 떴다.
밀너는 재무부 부장관 시절에 이집트에 금융 위기가 발생하자 수습하러 4년 동안 이집트에 근무했다. 그 무렵 『영국의 이집트 통치』(1892년)를 출판해 식민 통치의 전문가로 부상했다. 밀너는 페이비언협회(Fabian Society) 회원으로서 로이드 조지 내각에서 전쟁부 장관과 식민부 장관으로 일하면서 이집트와 인도 식민 정책을 주도했다.
식민지에 대한 밀너의 입장은 이렇다. “통치국이 피지배 국가의 외형적 안정에만 힘쓰지 말고 먼저 그 민족을 말살하고 피지배 국가의 뿌리 깊은 악행을 제거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밀정에 가까운 군사’(janissary)를 먼저 파견한 다음 군대를 해산하고, 강력하고 잔혹한 폭정을 시행하면서 군중이 느끼는 망국의 슬픔이나 불만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깔아뭉개라”는 것이었다. 그는 훗날(1897~1901년) 남아공 총독을 지냈다.
그 무렵 이토에겐 이노우에 마사지(井上雅二)라는 참모가 있었다. 그는 와세다대학을 다니며 아세아주의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러·일 전쟁이 터지자 조선의 경제 고문인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郎) 밑에서 근무했다. 뒷날 중의원 의원(1924년)을 거쳐 동양척식회사 상무고문으로 활동했다.
영어에 유창했던 이노우에는 밀너의 『영국의 이집트 통치』를 읽고 심취해 1906년 일본어로 번역했다. 이 책이 이토에게 감동을 줬다. 일제 시대에 한국인들 가운데 ‘자치식 식민 통치’를 요구했던 친일 세력은 바로 이 책에 영향을 받은 무리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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