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현의 과학 산책] 밭 속의 보물
“언젠가 누군가는, 이 난장 속에서 쓸모 있는 걸 찾아낼 거야.”
친구 슈발리에를 향한 편지는 마무리되었다. 어느덧 새벽이었다. 위대한 발견을 모두 적기에 하룻밤은 너무 짧았다. 동은 곧 텄고, 스무 살의 에바리스트 갈루아(1811~1832)는 결투장으로 향했다. 이 편지는 그의 유서가 되었다. 군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유력 혁명가. 갈루아의 장례식은 일련의 사건들과 맞물려 공화주의자의 폭동으로 번졌다.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민중의 소리가 들리는가’ 장면으로 그려진 봉기이다.
하지만 수학자로서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학창시절부터 천재인 척하는 ‘잘난체쟁이’로만 몰렸다. 지나친 비약과 들끓는 심성 때문이었다. 원하던 대학에는 두 번 낙방했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은 처음이다.” 고등학교 졸업시험을 주관했던 한 선생의 평이다. 어렴풋한 그의 천재성을 믿었던 수학 시험관 덕분에 그나마 다른 한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의 연구 주제는 야망만큼이나 광활했다. 모든 방정식의 해를 찾는 문제였다. 그는 방정식마다 숨겨진 대칭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혁명적인 아이디어였으나 설명은 서툴렀다. 코쉬·푸아송·가우스와 같은 대가들도 그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다. 사후 십수 년이 지나서야 수학계는 그 발견의 위대함을 깨닫기 시작했다. 혁명운동으로 투옥되었던 한 해 동안의 발견. 그 내용이 담긴 갈루아의 마지막 편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심오한 문헌’으로 평가된다.
심사를 거듭할수록, 학생의 재능은 밭 속에 숨겨진 보물처럼 느껴진다. 완전히 꺼내볼 때까지 제대로 가늠하는 것은 어렵다. 기준을 이리저리 대보지만, 갈루아나 아인슈타인을 떨어뜨린 심사관으로 역사에 남는 것 아닐까 두렵다. 그나마 노력하는 것은, 학생의 입장에 서 보려는 약간의 따뜻한 시선이다. 갈루아의 발견이 전해진 것도 그 보물의 가치를 믿어 준 친구, 슈발리에 덕분이었다.
김상현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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