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텐제국의 몰락...Why & How
고객 돈 쌈짓돈 쓰듯 투자금으로
큐텐그룹 창업자 구영배 대표의 몰락은 드라마틱하다. 구 대표는 인터파크 창립 멤버로 지마켓을 키워 2006년 미국 나스닥 상장에 성공한 뒤 2009년 미국 이베이에 매각했다. 지마켓은 인터파크 사내벤처 ‘구스닥’이 모태다. 구스닥이 2000년 별도 법인으로 출범하며 그가 대표를 맡았다. 국내 유통업계에 ‘오픈마켓’ 개념을 처음 도입한 것도 지마켓이다. 일반사업자도 판매자 등록만 하면 물건을 팔 수 있다는 점을 앞세워 가파른 성장 궤적을 그렸다. 2005년 연간 거래액 1조원을 돌파한 후 이듬해 바로 2조원을 기록하더니 2008년 4조원을 돌파했다. 지마켓 매각 뒤 싱가포르에 정착한 구 대표는 2010년 큐텐을 차렸다. 한국식 빠른 배송과 편리한 결제 시스템 등을 무기로 빠르게 시장을 장악했다. 큐텐은 싱가포르를 기반으로 동남아에서 저변을 확장했다. 구 대표는 여세를 몰아 다시 한국 시장에서 성공을 꿈꿨다. 문제는 국내외 이커머스 환경이 급변했는데, 과거와 똑같은 방식을 고집했다는 데 있다. 과거 성공에 도취된 ‘모로 가도 상장만 하면 된다’는 맹목적 사고는 결국 독이 됐다. 고객 돈을 몰래 쌈짓돈처럼 쓰다 대규모 미정산 사태를 낳았고 큐텐그룹은 사실상 공중분해됐다. 한때 2조원을 바라보던 큐텐 기업가치는 이제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다는 게 시장 평가다. ‘큐텐제국’ 몰락과 국내 이커머스업계 파장을 분석한다.
시선 1. 무자본 M&A
주식 교환으로 일군 그룹
큐텐제국 몰락의 직접적 원인으로는 무리한 인수합병(M&A)이 첫손에 꼽힌다. 피인수 기업 지분을 가져오는 대가로 큐텐 자회사 주식을 제공하는 등 사실상 무자본 M&A로 외형을 확장하는 데 몰두했던 게 ‘돈맥경화’를 초래했단 지적이 비등하다.
큐텐그룹 창업자 구 대표는 이커머스업계에선 입지전적 인물로 통한다. 2009년 지마켓을 이베이에 매각하고 손에 쥔 자금으로 싱가포르로 간 뒤 2010년 이베이와 합작사 큐텐을 차렸다. 지마켓 매각 당시 한국에서 10년간 경업금지 조건이 걸렸던 터라 싱가포르에서 이베이와 협업하며 현지 업체 인수에 나서는 등 또 다른 사업 밑그림을 그렸다. 한국에서 경업금지가 해제될 즈음 2018년 구 대표는 주식 교환으로 큐텐 지분 100%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됐다. 이베이와 연결고리를 끊고 지배구조를 정비한 구 대표는 본격적으로 사세 확장을 도모한다.
큐텐 사태 시발점이 된 M&A 거래로 2022년 티몬 인수가 지목된다. 구 대표는 티몬 경영권 지분을 인수하면서 현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상세한 인수 방식은 알려지지 않지만, 구 대표는 지분 교환 방식으로 티몬을 품었다. 글로벌 PE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앵커에쿼티파트너스(앵커에쿼티) 등이 보유한 티몬 지분 82%를 큐텐 물류 자회사 큐익스프레스와 교환하는 방식이다. 이듬해 위메프도 같은 방식으로 큐텐그룹에 편입했다.
대부분 이커머스 기업은 유형자산이 거의 없고 누적 적자로 재무 상태가 열악하다. 구 대표가 자기자본을 거의 쓰지 않고 주식 교환만으로 몸집을 키울 수 있었던 배경이다. 지마켓 창업자라는 구 대표 후광과 평판 덕분에 거래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단 후문이다.
그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2023년 야놀자로부터 인터파크커머스를 인수했다. 인수금액은 1500억원 규모다. 올 초에는 인터파크커머스를 통해 온라인 쇼핑몰 AK몰을 약 5억1782만원에 인수했다.
사달이 난 것은 올 초 글로벌 쇼핑 플랫폼 ‘위시(Wish)’를 인수하면서다. 위시는 미국 나스닥 상장사 콘텍스트로직이 운영하는 쇼핑 플랫폼이다. 인수금액은 약 1억7300만달러(약 2300억원)에 달했다. 위시를 인수하면서 구 대표는 ‘진짜’ 현금이 필요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결국 인수자금을 마련하려 큐텐이 티몬과 위메프 등 판매대금을 끌어 쓰는 과정에서 미정산 사태가 촉발됐다는 게 다수 전문가 지적이다.
성장 본질 외면
‘거래 규모 확대-상장’이라는 저금리 시절 이커머스 성공 방식을 고금리 국면에서도 고스란히 답습했던 게 결과적으로 독이 됐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구 대표는 물류 계열사 큐익스프레스 상장을 위해 자본잠식 기업을 무차별적으로 인수하는 데 몰두했을 뿐 사업 효율성 강화, 현금흐름 창출 등 핵심 역량 강화는 뒷전으로 미뤘다는 게 지배적 평가다. 과거 성공에 도취해 근본적 성장을 도외시했던 게 큐텐제국 몰락을 가속화했단 지적이다.
구 대표가 자본잠식 회사를 잇달아 인수했던 것도 ‘계열사 거래액(GMV)을 키워 상장만 하면 된다’는 안일한 판단 때문으로 지적된다. GMV 자체가 명확한 정의가 존재하지 않고 이커머스 플랫폼 거래 규모에 따른 성장성과 점유율 등을 추정하기 위한 보조지표 성격이 짙다. 상당 기간 누적 적자가 불가피한 이커머스 플랫폼 특성상 기업가치를 계산할 때도 재무지표보다 GMV가 주로 쓰였다.
외형 확장에 혈안이 된 나머지 제대로 된 성장 전략은 뒷전에 밀렸다. 현금흐름이 전무한 상태에서 계열사 거래액을 키우려다 보니 자본잠식 상태 적자 회사를 줄줄이 인수하는 데 주력했다. 티몬의 경우 2022년 말 기준 자본총계가 마이너스(-) 6386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였다. 지속된 적자로 누적 결손금만 1조2644억원에 달했다. 위메프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2022년 54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내 결손금이 2021년 6077억원에서 6624억원으로 급증했다. 큐텐에 인수되기 약 3개월 전 2022년 말 기준 자본총계는 -1471억원이었다.
더 큰 문제는 적자 기업을 무더기로 인수한 뒤 재무 구조를 개선하려는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중복 사업부 통폐합, 비용 구조 효율화, 손익 통제력 확보 같은 통상적인 인수후통합(PMI) 절차조차도 엿보이지 않았다는 게 다수 전문가 시선이다.
오히려 티몬과 위메프는 큐텐그룹에 인수된 뒤 실적이 악화 일로를 걸었다. 2023년 연결 기준 위메프 매출액은 1385억원으로 1년 전보다 28% 줄었다. 영업손실 규모는 557억원에서 1025억원으로 두 배 늘었다. 인터파크커머스 역시 2023년 말 기준 자본금과 결손금이 각각 50억원, 138억원으로 사실상 자본잠식에 빠졌다. 티몬은 아직 2023년도 감사보고서도 내지 못했다. 결국 거래 규모를 키우는 데 몰두하고 현금흐름 개선을 도외시한 결과 모자회사 동반 부실로 작금의 유동성 고갈 사태에 직면했단 지적이다.
PE업계 관계자는 “저금리 국면 땐 시중 유동성이 풍부해 비상장사를 평가하는 잣대가 유저 수, 매출 규모, 거래대금 등으로 다양해졌다”며 “돈이 남아도는 판국이니 IRR을 충족시키기 위한 고육지책성 기업 평가 방식이 횡행했던 것”이라 돌아봤다. 이어 “고무줄 잣대에 기댄 숫자에 불과한 기업가치와 상장에 매달리는 투자 풍토가 성공 스토리로 포장됐고 결국 근본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라 진단한다.
시선 3. 그림자 금융
회삿돈을 쌈짓돈처럼
상대적으로 긴 정산 주기를 악용한 고객자금 유용 등을 두고 사실상 ‘그림자 금융’이라는 지적이 드세다. 현행법상 이마트 같은 ‘대형유통업자’는 공급업자에게 40~60일 안으로 판매대금을 정산해줘야 한다. 티메프 같은 ‘판매중개업자’는 정산 주기에 대한 별도 규제가 없다. 다만, 정산 주기 자율 규제 자체를 이번 사태의 직접적 원인으로 볼 수는 없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보다는 유동성 고갈과 맞물려 회사 자금을 다루는 ‘고유 계정’과 ‘고객 계정’이 물리적으로 분리돼 있지 않았던 게 정산 주기 시차를 악용한 ‘그림자 금융’으로 변질됐단 비판이 나온다.
올 들어 티몬과 위메프는 선불충전금 ‘티몬 캐시’와 각종 상품권을 ‘선주문 후사용’ 방식으로 대폭 할인 판매했다. 결과적으로는 정산이 이뤄지지 않아 단기 유동성 확보를 위해 무리한 프로모션을 벌였던 게 사태를 악화한 단초가 됐단 지적이 팽배하다.
하지만, 정산 주기보다 근본적으로 큐텐 경영진의 전략적 오판과 회계 계정 부실 관리가 맞물려 사태가 삽시간에 악화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정산 주기는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 이커머스 업체마다 일정 수준 시차가 존재한다. 판매대금 정산까지 티몬과 위메프는 최대 60일 정도 공백이 존재했고 무신사나 쓱닷컴도 10~40일가량 걸린다. 쿠팡 역시 주정산과 월정산 등 일반정산으로 잔여대금이 모두 정산되려면 최대 두 달까지도 소요된다. 이들 업체 역시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벌이고 정산 주기 시차가 존재하지만, 큐텐 같은 대규모 미정산 사태가 초래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정산 주기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회계 계정 부실 관리를 도마에 올리는 시각이 다수다. 고객이 상품 구매 대가로 납입한 돈은 판매자에게 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선수금’ 부채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큐텐은 이를 마치 자기자본처럼 취급했고 고객대금을 투자금으로 썼다. 여기서 초래된 유동성 공백을 메우려 출혈 프로모션을 잇달아 벌였고 종국에는 미정산 사태로 확산했다는 지적이다. 결국 고객 돈과 회삿돈을 구분하지 않았던 모럴 해저드가 몰락의 단초가 됐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플랫폼 사업자가 고객자금 활용에 주목하면 사고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라며 “플랫폼 사업자의 ‘고유 계정’과 ‘고객 계정’을 물리적으로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IT 플랫폼 악순환 가속
이번 사태와 관련, 판매대금 미정산 → 셀러 이탈 → 거래액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가속화한 배경을 두고도 여러 해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IT 고도화로 위기 확산 속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다. 큐텐 측은 이번 사태 대응 과정에서 정산 처리에서 빚어진 ‘실수’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들불처럼 확산했다. 이커머스업계에서는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환불과 반품이 가능해져 유동성 고갈 속도가 더 빨라졌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과거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가 비슷한 예다. 위기 징후를 감지한 고객이 일제히 스마트폰 인출을 시도하면서 ‘스마트폰 뱅크런’이 빚어졌고 실리콘밸리은행은 위기설 이후 파산까지 이틀도 걸리지 않았다. 당시 실리콘밸리은행이 자금 조달 계획을 공시한 뒤 48시간도 되지 않아 빠져나간 예금만 한화 약 56조원에 달했다.
시선 5. 역네트워크 효과
지배력 낮아도 일파만파
이번 사태를 두고 플랫폼 ‘역네트워크 효과(Reverse Network Effect)’를 경계해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좁은 국내 내수 시장에서는 이미 쿠팡 등 소수 사업자가 지배적 사업자로 등극했던 탓에 큐텐그룹 시장 지배력은 미미했다. 하지만, 미정산 규모가 조 단위로 추정될 만큼 위기 파급력은 큐텐그룹 시장 지배력과 비교 불가다. ‘소비자-카드사-PG사-플랫폼-판매자’로 이어지는 이커머스 네트워크에서 자금흐름 정점에 플랫폼이 위치해 있다. 점유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플랫폼이라 해도 불신으로 흔들리면 그 위기가 가치 네트워크 전체로 삽시간에 전염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사태로 드러났다는 진단이다. 이커머스업계 관계자는 “시장 지배력이 낮아도 플랫폼 부실 땐 상상 이상으로 큰 파장을 낳을 수 있단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우려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2호 (2024.08.14~2024.08.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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