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텐은 공중분해…티메프는 회생?
총 부채 1조6천억…정부 지원 충분?
1조원 넘는 미정산으로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큐텐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티몬과 위메프가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하면서다.
큐텐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수습될지를 놓고 갖가지 전망이 쏟아진다. 쟁점은 크게 3가지다. 티몬과 위메프는 과연 회생이 가능할 것인지, 회생이 된다면 이후 기업은 어떤 식으로 운영될지, 소비자와 입점 판매자(셀러) 등 피해자는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다.
자율 구조조정 난항 불가피
티몬과 위메프는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말 그대로 ‘기업을 다시 살릴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를 법원 관리하에 진행하기로 했다. 한 기업이 사업을 계속할 만한 가치가 있지만 과잉 투자나 금융 사고 등 문제로 부채를 감당할 수 없을 경우 기업회생 절차를 밟게 된다. 법원은 회생계획안을 검토한 후 사업을 계속할 때 가치가 청산할 때보다 크다고 판단하면 회생을 인가한다. 채무를 탕감해주거나 주식으로 전환하는 식으로 기업을 돕는다.
관전 포인트는 ‘자율 구조조정 지원 프로그램(ARS)’이 원활히 진행될지다. 티몬과 위메프는 현재 기업회생과 함께 ARS 프로그램을 신청해 승인받은 상황이다. ARS는 회생 절차 개시 결정에 앞서 채무자와 채권자가 자율적으로 구조조정 협의를 할 수 있도록 법원이 지원하는 제도다. 양측은 채무 조정, 외부 자금 유치, M&A 등 경영 정상화 방안을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다. 채권자 강제집행을 피하면서 기존처럼 정상 영업을 할 수 있다. 구조조정에 합의하면 회생 절차는 즉시 끝난다. 합의에 실패할 경우 일반적인 기업회생 절차를 거치게 된다. 법원이 회생 절차를 시작해도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면 회생 개시 자체가 기각되면서 티몬과 위메프는 ‘파산’ 절차를 밟는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ARS를 통한 합의에 성공하는 편이 그나마 손해를 줄이는 방법일 수 있다. 기업회생으로 기업이 채무를 탕감받으면 셀러는 정산금을 거의 돌려받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티몬과 위메프가 파산할 경우 채권은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다. 주 사업이 ‘플랫폼’인 탓에, 파산 후 유형자산 처분으로 받을 수 있는 돈도 많지 않다. 무작정 기업회생 반대만을 외치기 난감한 입장이다.
ARS에 성공하면 상황은 단순해지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구조조정 논의 상대방인 채권자 협의회 구성부터 쉽지 않다. 현재 티몬과 위메프가 협의해야 하는 채권자, 즉 피해 셀러는 11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피해 규모, 자금 여력 등 상황도 모두 제각각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피해자 11만명을 대상으로 누구부터, 또 얼마를 변제받을지를 결정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셀러뿐 아니라 카드사, 전자지급결제대행(PG) 업체 등 너무 많은 이들 사이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자율 구조조정 합의를 도출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티몬과 위메프가 기업회생 제도를 ‘악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ARS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당장 소송·압류·추심 등 채권자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 회생을 신청했다는 의구심이다. 회생 절차에 돌입하면 자산 처분과 채권자 강제집행이 막힌다. 티몬과 위메프를 상대로 한 환불이나 미정산 대금 지급 요구도 한동안 불가능해진다. 티몬에 입점한 한 셀러는 “지금 대부분 셀러는 당장 채무 상환 등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중이라 정신이 없다. ARS에 적극 참여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이런 현실을 잘 아는 티몬과 위메프가 시간 벌기 수단으로 회생법원 제도를 악용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고 한탄했다.
회생 인가가 날 것인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티몬과 위메프 가치가 심대하게 훼손됐고 미정산 금액 등 정확한 채무 규모조차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 투자 유치나 M&A가 가능하겠냐는 우려다. 구조조정 이후 티몬·위메프가 지금과 다른 확실한 수익 구조를 만들 수 있는지에도 의문부호가 붙는다. 모든 셀러와 제휴사가 등을 돌린 상황에서, 사업 자체를 계속할 수 있겠냐는 시각이다.
구영배 ‘통합 플랫폼’ 외치지만
티몬과 위메프 모회사 큐텐그룹은 사실상 ‘공중분해’ 수순을 밟고 있다. 회생 절차를 신청한 티몬과 위메프는 물론 인터파크커머스, 또 이번 큐텐 사태 핵심 계열사로 꼽혔던 큐익스프레스까지 저마다 따로 살길을 찾아나선 상황이다. 구 대표는 티몬과 위메프 등을 통합해 새로운 ‘공공 플랫폼’ 설립을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업계 공통 의견이다.
구 대표는 어떻게든 ‘한 몸’처럼 움직이길 원하는 모습이다. 티몬과 위메프를 통합해 가칭 ‘K-커머스’라는 공공 플랫폼 설립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7월 말 법원에 티몬·위메프 기업회생을 신청하면서 밝힌 계획이다. 티몬과 위메프를 인수·합병하고 미정산 판매자(셀러)를 대주주로 앉히겠다는 생각이다. 구 대표가 보유 중인 큐텐 지분 38%를 합병 법인에 백지 신탁하고, 대금을 받지 못한 셀러 채권을 K-커머스 전환사채(CB)로 바꿔 주주로 만든다는 내용이다. 정산받지 못한 액수만큼 셀러에게 통합 법인 주식을 주겠다는 얘기다. 큐텐의 티몬·위메프 지분을 100% 감자하고 구 대표가 보유 중인 큐텐 지분 38%를 합병 법인에 백지 신탁한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이렇게 되면 합병 법인이 역으로 큐텐 대주주가 된다. 구 대표는 “K-커머스는 셀러 이해관계와 정확히 일치된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거듭날 수 있다. 중소 신규 브랜드 업체가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 확장하게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상당수 관계자가 “어처구니없는 생각”이라고 잘라 말한다. ‘해당 계획에 참여할 셀러가 있겠느냐’는 점에서다. “당장 돈이 필요한데 무슨 주식을 준다는 소리냐” “다시는 티몬·위메프와 엮이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셀러가 대부분이다. 셀러뿐 아니다. 각 계열사도 구 대표 합병 법인 계획을 반박하며 선을 긋고 나섰다. 공공 플랫폼보다는 각자 투자를 유치하거나 플랫폼 매각을 시도하는 등 그룹 차원이 아닌 독자 자구책을 마련 중이다.
류광진 티몬 대표는 서울회생법원에 출석한 자리에서 구 대표의 공공 플랫폼 계획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류 대표는 “그룹 차원 지원을 기다리기보다 그룹과 별개로 정상화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투자 유치와 매각을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티몬은 최근 큐텐과 관련된 사업을 정리하고 상품권 관련 조직도 해체하면서 큐텐과의 손절에 나섰다. 큐텐과 연계된 서비스인 직구 서비스를 비롯해 파워딜·제휴 혜택 등 큐텐 관련 서비스도 종료하기로 했다. 해외직구와 비즈마켓을 담당하고 있는 조직도 해체한다는 방침을 내부에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메프도 마찬가지다. 공공 플랫폼이 아닌 개별 매각과 투자 자금 확보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류화현 위메프 대표는 “구 대표가 생각하는 그림은 큐텐 전체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 넋 놓고 볼 수 없는 상황”이라며 “독자적인 생존 방안을 모색 중이고 그 노력을 계속해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인터파크커머스는 매각을 타진하는 중이다. 인터파크커머스는 최근 큐텐에서 받지 못한 미수금 등을 돌려받기 위한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모회사에 미수금 반환을 위해 내용증명을 발송하는 건 굉장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인터파크커머스가 큐텐과 관련 계열사에 물린 자금은 650억원대로 알려졌다. 대부분 판매대금 미수금과 대여금이다. 티몬에 위탁 운영하던 PG 시스템을 KG이니시스·헥토파이낸셜로 바꿨고 큐텐으로 파견된 재무 등 일부 인력도 복귀시킬 계획이다.
이번 큐텐 사태 핵심으로 지목됐던 큐텐 글로벌 물류 자회사 ‘큐익스프레스’ 역시 사실상 구 대표 손을 떠났다. 구 대표가 큐익스프레스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났고 후임 CEO로 마크 리 최고재무책임자를 임명했다. 큐익스프레스 주요 주주는 구 대표 지배력을 약화시켜 경영권을 인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재무적투자자가 보유하던 사채를 보통주로 전환해 지분을 확보, 최대주주로 올라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기존 대주주였던 큐텐과 구 대표 지분율은 30%대까지 떨어지며 경영권을 잃게 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큐익스프레스는 이베이재팬과 아마존 등 동남아 등지에서 이미 대형 고객을 갖고 있다. 큐텐과 관계를 끊어도 기존 확보해놓은 고객 덕에 독자생존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3. 피해자 보상은 어떻게
일단 환불부터…혈세 투입 ‘논란’
1조6400억원.
티몬·위메프가 지난 7월 말 기준 자체 추산한 전체 부채 규모다. 미정산 금액이 포함된 상거래 채권액만 1조3000억원 수준이다. 앞으로 8~9월 정산 기한이 도래하면 피해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셀러와 소비자 등 피해자 최대 관심사는 ‘돈을 언제 받을 수 있냐’다. 티몬과 위메프로부터 당장 돈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업회생 신청으로 티메프 자산이 동결됐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지원안을 마련하고 나섰다. 먼저 카드사·PG 업체·여행사·이동통신사 등에 협조를 구해 지금까지 접수된 600억원 규모 소비자 환불을 우선 진행한다. 돈을 정산받지 못한 셀러와 PG 업체 등 피해자에게는 1조원이 넘는 금융 지원을 약속했다. 시중금리보다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줘 당장 급한 불을 끄도록 하는 방향이다.
시중은행에서는 티몬·위메프 매출을 근거로 선정산대출을 받은 업체 대상으로 만기 연장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요약하자면 ‘소비자는 환불, 피해 업체는 저리대출 확대와 만기 연장’이다. 하지만 논란이 거세다. “돈을 떼인 것도 억울한데 추가로 대출을 받으라는 얘기냐”라는 비판이 나온다. 혈세 투입을 둘러싸고도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민간 기업이 져야 할 책임을 왜 정부와 지자체에서 떠맡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다. 특히 지자체 재원 총 6000억원을 대출로 지원하는 방식에 불만을 표하는 목소리가 크다. 기업 관리·감독 의무가 있는 정부도 아닌, 직접적으로 사태와 무관한 지자체 예산을 사태 수습에 투입하는 것이 맞냐는 주장이다.
정부로부터 ‘빠른 환불’을 약속받은 소비자는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환불이 애매한 품목도 있다. ‘상품권’이 문제가 된다. 모바일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을 구매한 경우 ‘핀(PIN) 번호’가 즉시 전달되는데, 이때는 ‘물품이 배송됐다’고 본다. 환불은 물품이나 서비스를 받지 못한 소비자에 한해 진행된다. ‘여행 상품’처럼 환불 주체를 놓고 갈등이 심화 중인 품목도 있다. PG 업체는 일반 상품과 달리 확정된 여행을 취소한 경우 여행사가 환불 주체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여행사는 “티메프로부터 정산을 받지 못해 환불해줄 돈이 없다”며 “결제 취소·환불 의무가 있는 PG 업체에서 환불을 해줘야 한다”고 반발한다. 지금처럼 업계 간 ‘폭탄 돌리기’가 계속될 경우 환불이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2호 (2024.08.14~2024.08.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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