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로 쪼개진 광복절…초유의 사태 왜? [why&next]
대통령실 "임명 철회 불가…행사까지 노력할 것"
광복절 행사가 둘로 쪼개졌다. 독립유공자들의 대표 격인 광복회는 15일에 있는 광복절 정부 행사 참석을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행사를 치르기로 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광복회는 역사관에 이어 건국절 이념 논란을 제기하며 김형석 독립기념관 관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사태가 왜 이렇게까지 된 것일까.
논란은 언제, 왜 시작됐나.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할 당시 멘토로 통하던 이종찬 광복회장이 불을 지폈다. 이종찬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초등학교, 대학교 동창인 이철우 연세대 법학대학원 교수의 부친이다. 2022년 대선 때는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국가보훈부가 6일 김 관장을 임명하자 이 회장은 일제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왜곡된 역사관을 가진 ‘뉴라이트’라고 지목했다. 김 관장이 지난해 12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이 진정한 광복"이라고 한 발언을 문제 삼았다. 이 회장은 나아가 김 관장 임명에 건국절 제정을 추진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면서 광복절 행사 보이콧을 주장했다.
광복회 등 독립운동 관련 단체들은 김 관장이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주장하는 ‘뉴라이트 인사’라고 비판한다. 광복회는 김 관장의 주장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1945년보다 정부가 수립된 1948년에 중점을 두고 8월 15일을 ‘건국절’로 기려야 한다는 뉴라이트의 논리와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광복회는 뉴라이트가 독립운동의 의의를 축소한다고 본다.
광복회장, 백범 김구 선생 장손 배제에 반발
독립기념관장, 어떻게 임명됐나.
▲독립기념관장 임명은 독립기념관법(제7조 2항)에 따른다. 독립기념관에 두는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가 복수로 추천한 사람 중에서 국가보훈부 장관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하지만 임추위 당연직 위원인 이종찬 회장은 자신이 부당하게 임추위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오영섭 임추위 위원장은 ‘후보자 중 한 명(김진 부회장)이 광복회 인사이기 때문에 광복회장은 관련 규정에 따라 회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이종찬 회장이 임추위에서 제척된 상황에서, 백범 김구 선생의 장손인 김진 광복회 부회장과 한국광복군 출신 독립운동가의 자손인 김정명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가 탈락했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임추위가 독립운동 상징성이 있는 독립운동가 후손 후보들을 탈락시켰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독립기념관장 "난, 뉴라이트 아니다"
독립기념관장의 입장은?
▲김 관장은 13일 서울 용산 서울지방보훈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나는 일제의 식민지배를 강하게 비판해 왔다. 내가 일제의 강점을 옹호했다는 증거가 있으면 하나라도 갖고 오라"며 "건국절 제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분명히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뉴라이트 계열로 이번 독립기념관장 임명이 1948년 8월 15일 건국절 제정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 기용된 정략적 인사라는 광복회 등의 주장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김 관장은 15일 열리는 정부 주최 광복절 경축식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도 거듭 내비쳤다. "정부로부터 임명받았고, 성실하게 관장직을 수행하겠다고 약속한 마당에 물러설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면서도 "오히려 개인 휴대전화나 이메일을 통해 사퇴하지 말라는 내용의 격려를 많이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독립운동단체 백범기념관서 별도 기념식 개최
기념식 따로 어떻게 개최하나
▲광복회장과 독립기념관장의 싸움에 결국 제79주년 8·15 광복절 행사는 둘로 쪼개졌다. 정부 주최 경축식과 독립운동단체 개최 기념식으로 각각 열린다. 광복절에 정부 주최 경축식과 독립운동단체 기념식이 따로 열리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광복회를 비롯한 37개 독립운동단체는 15일 오전 10시 효창공원 내 백범기념관에서 광복회원과 독립운동가 유족, 관련 기념사업회 및 단체 회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광복절 기념식을 개최한다. 기념식을 주도하는 광복회는 정당·정치권 인사를 초청하지 않기로 했지만, 자발적인 참석은 막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정부 주최 광복절 경축식도 15일 열리지만, 현재로선 일부 독립운동단체와 독립운동가 유족, 야당 등은 불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상 2000여명이 참석하는 정부 주최 경축식 초청 대상은 여야 정치인과 정부 관계자, 독립운동단체 및 독립운동가 유족, 종교계, 주한 외교사절단 등이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대통령실 입장은?
▲대통령실은 "정부는 건국절에 대해 언급한 적도 없고, 추진하려고 한 적도 없다"고 거듭 밝히면서 진화에 나서고 있다. 논란이 거세지자 윤 대통령은 13일 참모진들에게 "건국절 논란이 먹고살기 힘든 국민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라며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민생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복절 행사가 이념 논란에 휩싸이면서 정쟁화되는 것에 대해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건국절 논란은 국민 민생과 동떨어진 불필요한 이념 논쟁이라는 입장을 피력한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종찬 광복회장과 야당이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을 '뉴라이트'로 정의한 근거가 미약하다며 김 관장에 대한 잇단 사퇴 요구는 임명권자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실 "건국절 제정 추진한 적 없어"
대통령실은 왜 이종찬 광복회장 편지에 답하지 않았나.
▲이종찬 광복회장은 지난 12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윤 대통령에게 직접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반대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지만, 윤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김 관장 임명이 자칫 정권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담아 편지를 썼지만, 윤 대통령이 별다른 반응 없이 전자결재로 인사 발령을 내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 회장 편지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렵다"면서 "대통령실 참모진들이 여러 루트를 통해 광복회장에 대해 설득하는 작업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일단 광복절 행사가 잘 치러지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겠다"고 답했다.
대통령실은 사태 수습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
▲광복회가 빠진 광복절 행사를 우려한 대통령실은 전광삼 시민사회수석이 직접 광복회장을 찾아가 입장을 설명하고 설득에 나섰지만, 이 회장의 입장은 확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광복절 경축식 참석을 설득하기 위해 지난 13일 여의도 광복회관으로 찾아간 강정애 보훈부 장관에게도 이 회장은 독립기념관장 사퇴를 거듭 요구했다. 강 장관은 "광복절 경축식이 쪼개져서는 안 되지 않느냐. 국민 통합을 위해 참석해달라"며 참석을 권유했지만, 이 회장은 김 관장의 사퇴가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윤 대통령은 제79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청와대 영빈관에 독립유공자 후손 100여명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하고 "자유의 가치를 지키며 발전시켜 온 선조들의 뜻을 절대 잊지 않고, 자유·평화·번영의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데 모든 힘을 쏟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광복절 행사에 모두가 참여, 미래 자유·평화·번영의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데 뜻을 모으는 자리여야 하는데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한 데 대해 아쉬움을 표명하면서, 광복절 행사 당일 오전까지도 이 회장 설득을 위한 작업을 이어갈 뜻을 내비쳤다.
대통령실 "김 관장 결격 사유 없어…임명 철회는 혼란 가중"
독립기념관 자체 행사 취소 논란이 있다. 향후 어떻게 수습하나
▲해마다 독립기념관에서 해오던 광복절 경축식 행사가 올해 취소된 데 대해 일각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대통령실은 "자체 행사를 취소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충남 도청에서 주관하는 행사로 독립기념관이 장소만 제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관장은 14일 독립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독립기념관 경축식 행사 취소 논란에 대해 최종 결재를 내린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내가 취임한 이후 담당 직원이 '자체적인 행사를 그동안 준비를 했었는데 어떻게 할까요' 물어보길래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을 뿐"이라며 "오늘 천안시에서 경축식을 주관한다고 하니 기쁜 마음으로 동의했고, 나는 서울 행사에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역시 김 관장의 임명 철회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김 관장의 결격 사유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임명을 철회하는 것은 되레 혼란을 가중시키는 일"이라며 "가능한 많은 인사가 광복절 행사에 참석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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