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어진 두 동강 광복절…"김구 '테러리스트화" vs "독립관장 사퇴 없어"
‘뉴라이트’ 인사로 지목돼 광복회 등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이 14일 “물러날 이유가 전혀 없다”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광복회 역시 “김 관장의 사퇴가 없으면 오는 15일 정부 경축식과 별도로 광복절 행사를 열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두 동강 광복절’이 사실상 굳혀지는 양상이다.
김 관장은 이날 오후 독립기념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부로부터 임명받았고 성실하게 관장직을 수행하겠다고 약속한 마당에 물러설 이유가 전혀 없다”며 “이 시간 이후 ‘사퇴하느냐’는 질문에는 더 이상 답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앞서 그는 지난 12일에도 “나는 일제 식민 지배를 옹호하는 ‘뉴라이트’도 아니고, 뉴라이트의 ‘건국절 제정’에도 동조한 적이 없다”면서 광복회의 주장을 반박했다.
김 관장은 이날 ‘친일인명사전’ 관련 발언 등을 예로 들며 자신에 대해 왜곡된 비판이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친일인명사전의 오류로 억울하게 매도된 사람이 있다”는 과거 발언이 도마에 오른 데 김 관장은 “나는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어떻게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며 “같은 대한민국 말을 쓰는 우리가 어떻게 저렇게 말이 왜곡되고 오도될 수 있을까 궁금하다”고 반박했다. “학자로서 생각은 바뀐 게 없지만 이제는 독립기념관장으로서 입장이 바뀌어 의사 결정 과정에서 내부 논의를 거쳐 결정하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앞서 그는 백선엽 장군 등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것을 놓고 “학문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김 관장은 자신이 오는 15일 정부 주최 광복절 경축식에 참여한다는 이유로 독립기념관 주최 광복절 행사를 취소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김 관장은 “이전 사례를 보면 독립기념관은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주최 행사에 장소를 제공하고 협력했던 것”이라며 “전임 관장 재직 때 지자체 행사를 주최한 충청남도가 올해 광복절 경축식 행사를 그동안 해오던 독립기념관이 아닌 홍성 내포 신도시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을 보고 받았다”고 말했다.
다만 “지난주 정부 주관 광복절 행사에 독립기념관장이 참석할 것인지 물어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기에 그곳(정부 행사)에 참석하겠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이날 브리핑에서 “독립기념관 (광복절) 행사 관련, 독립기념관은 장소만 제공해왔다”며 “충남도가 이번에 행사 장소를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김 관장의 기자회견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독립기념관 항의 방문 직후 이뤄졌다. 민주당 의원들은 “김 관장을 포함해 독립기념관장 최종 후보자 3명을 추천한 독립기념관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의 심사가 불공정했다”며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김 관장은 “이미 언론에 공개돼 감춰진 자료는 없다”며 “법률 검토 후 임추위 구성원 실명 공개 여부 등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광복회는 이날 김 관장의 사퇴를 거듭 요구하면서 김 관장 임명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업적을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이날 CBS 라디오에 출연해 “단순한 하나의 인사가 아니라 지하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계획이 있다”며 “이승만 대통령을 치켜세우고 이 기회에 김구는 '고하' 송진우를 암살한 테러리스트로 만들자, 이런 음모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이날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열린 ‘파리올림픽 은메달리스트 허미미 선수 광복회 유족회원증 전달식’에서 기자들과 만나 “마지막 문은 항상 열어놓고 있다”며 “저로 하여금 자유롭게 내일 식장에 갈 수 있도록 해줄 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 관장의 임명을 철회할 경우 정부 주관 광복절 경축식 행사에 참가하겠다는 의미다.
이밖에 이 회장은 “손기정 선수가 일본 국적이라고 부끄럼 없이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며 “청년 허미미 선수는 일본에서 태어났음에도 ‘나는 대한민국 국적’이라고 선언한 것은 참으로 대비된다”고도 말했다.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 사람의 국적은 일본이었고, 그래서 국권을 되찾으려고 독립운동을 했다‘는 취지의 김 관장의 과거 발언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정부는 김 관장 임명 철회는 없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결격 사유가 없는 상태에서 임명을 철회할 계획은 현재 없다”고 말했다.
출구 없는 대치가 계속되면서 광복절 행사가 정부 주최 경축식과 독립운동단체 개최 기념식으로 쪼개지는 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광복회를 비롯한 37개 독립운동단체는 광복절 당일 백범기념관에서 별도 기념식을 열 예정이다. 광복회 관계자는 “기념식을 주도하는 광복회는 정당·정치권 인사를 초청하지 않기로 했지만, 자발적인 참석은 막지 않겠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조국혁신당 등 야권 인사들도 해당 행사에 참석한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이들은 용산 대통령실까지 거리행진도 계획하고 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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