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버스에 뻘뻘, 오발 해프닝에 아찔” 파리의 영웅들 뒷이야기
파리올림픽에서 ‘소수 정예의 기적’을 완성한 국가대표 선수들이 귀국 직후 흥미로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냈다. 목표와 훈련 과정, 결과는 서로 달랐지만 ‘열심히 준비한 만큼 모두 보여준다’는 각오는 똑같았다.
파리올림픽 참가자 중 한국체대 소속 선수들과 지도자들은 14일 서울 송파구 한국체대 본관 합동 강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올림픽 본선 무대를 마친 소감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파리 현장을 누빈 선수들 중 3관왕을 이룬 임시현(양궁)과 ‘오심 번복’의 주인공 서건우(태권도)가 참석했고 지도자들 중에서는 오혜리 코치(태권도)와 장갑석 감독(사격)이 함께 했다. 문원재 한국체대 총장을 비롯해 김영선(근대5종), 김동국, 김진호(이상 양궁) 교수도 동석했다.
임시현은 “3개의 금메달 모두가 애틋하지만, 가장 뜻깊은 메달은 역시나 (여자) 단체전 금메달”이라면서 “대회 10연패라는 역사를 써내려가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금메달을 공언하고 나선 대회의 책임감이 얼마나 무거운지 느꼈다”면서 “부담감이 적지 않았지만 ‘양궁은 나 자신만 이기면 어떤 상대도 이길 수 있는 종목’이라는 사실을 거듭 떠올렸다. ‘준비한 것만 제대로 보여주면 누구도 못 따라온다’는 생각으로 사대에 올랐다”고 말했다.
임시현은 “선수촌에서 (경기장인) 레쟁발리드까지 차량으로 40분 정도 걸리는데, (선수단을 태운 버스의) 기사님이 길을 잘 모르시는지 항상 뱅뱅 돌았다. 테러 위험 때문에 버스 창문을 모두 닫아 놓은 상태에서 에어컨도 틀어주지 않아 너무 더웠다. 정말 힘들었다”며 후일담도 들려줬다.
장갑석 사격대표팀 감독은 개인 사정으로 불참한 양지인(사격)을 대신해 대회 도중 발생한 오발 해프닝의 전말을 공개했다. “경기 이틀 전 공식 연습 도중에 (양)지인이가 오발 사고를 냈다. (오발의) 파편이 뒤에 있던 에콰도르 선수에 튀어 배에 작은 상처가 났다”고 아찔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양지인은 사격 직전 잠시 팔을 내리는 동작(어텐션)을 취하던 중 실수로 방아쇠를 눌렀다. 사격에서 이따금씩 일어나는 실수지만, 올림픽 무대에서 실전을 치르기 직전이라 선수의 심리적 부담감이 커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라이벌 선수들의 의도적인 견제도 선수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장 감독은 “규정상 어텐션 상태에서 발생하는 오발은 페널티 대상이 아니다. 에콰도르 선수와 감독도 ‘문제없다’는 뜻을 전달했다. 하지만 우리와 라이벌인 독일과 프랑스가 강력하게 항의해 현장이 시끄러웠다”면서 “대회 관계자에게 현장 영상을 확보해달라고 요청한 뒤 이를 근거로 어필했고, 해프닝으로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 이틀 전에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다보니 선수가 심리적으로 흔들릴 수 있었다”면서 “(경쟁 선수들이 없는) 다른 방에 데려가 훈련을 시키면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평정심을 회복한 양지인은 사격 25m 권총 여자 결선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스승의 노력에 화답했다.
왼무릎 부상 탓에 다리에 보조기를 착용하고 등장한 서건우는 마인드컨트롤을 위한 남다른 비법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마음이 불안할 때 음악을 듣곤 하는데, (또래들과 달리) 트로트를 좋아한다”고 밝힌 그는 “이찬원의 ‘18세 순이’ 같은 흥겨운 노래를 들으며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심적 안정을 찾으려 애쓴다”고 털어놓았다.
“대회 이전부터 부상이 있었는데 ‘올림픽에 나서는 모든 선수는 똑같이 부상 하나쯤 안고 뛴다’는 생각으로 참았다”고 밝힌 그는 “대회 일정을 마친 뒤 정밀검사를 받아보니 근육이 7~8㎝ 가량 찢어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회복에는 3개월 정도 걸린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어 “제 별명이 ‘강철 파이터’다. 별명처럼 빨리 회복해 운동에도 다시 참여하고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동메달결정전에서 에디 흐르닉(덴마크)에 패한 뒤 오혜리 코치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린 그는 “열심히 준비했음에도 결과를 내지 못해 죄송하다”면서도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동메달을 목에 걸지 못한 게) 동기부여가 더 됐다. 결과를 내진 못 했지만, 끝난 뒤에 얻은 게 훨씬 많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송지훈 기자 song.j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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