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린 엄마의 충격 고백... 가족이 이리 쉽게 흔들리다니
[김형욱 기자]
▲ 영화 <엄마의 왕국>의 한 장면. |
ⓒ 스튜디오 에이드 |
주경희와 도지욱은 오래전에 죽었다는 남편이자 아빠 없이 둘만 살아가는데,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유독 사이가 좋아 보인다. 도지욱이 다 큰 어른임에도 주경희가 마치 아이처럼 대하니 말이다. 도지욱은 엄마 말을 잘 따른다.
어느 날 목사 도중명이 찾아온다. 실종된 형, 즉 주경희의 남편이자 도지욱의 아빠를 찾으려는 목적의 일환이다. 그의 등장으로 주경희는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고 도지욱은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쯤부터 주경희의 치매 증상이 심해진다. 얼마 못 가 미용실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말이다. 정신없는 와중에 아들 도지욱에게 '내가 네 아빠를 죽였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도지욱으로선 삼촌 도중명이 주경희를 의심하는 걸 좌시할 수 없는 것이다. 도중명이 찾아오고 주경희가 알 수 없는 말을 하니 도지욱은 애써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하나둘 떠오르는데... 평화로운 보였지만 위태로워지고 있는 이 가족, 어떻게 될까?
▲ 영화 <엄마의 왕국> 포스터. |
ⓒ 스튜디오 에이드 |
그런데 영화 전반적으론 막상 그렇지 않다. 치매에 걸린 주경희의 변화 양상이 영화의 줄기를 형성하는 와중에 도지욱과 도중명이 형성하는 상징이 자못 큰 파이를 차지한다. 주요 인물이 세 명뿐이건만 솥의 세 다리처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채 이야기를 견고하게 끌어 나가고 있다. 주경희가 '거짓'을 상징한다면, 도지욱은 '기억'을 상징할 테고, 도중명이 '진실'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정황상 주경희는 거짓으로 가족을 지탱했다. 그런데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니 때로 진실을 말하게 된다. 도지욱은 잃어버린 기억 또는 애써 잊고 있던 기억을 되살린다. 엄마와 삼촌의 말들이 그를 자극한 것이다. 도중명은 진실을 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을 뿐더러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다 생각해 정확히 말하지 않는다.
한정된 캐릭터로 스토리를 끌고 나가면서도 메시지를 전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자칫 굉장히 도식화되어 캐릭터를 수단으로 쓸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애초에 한정된 캐릭터만 쓸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해냈다. 캐릭터성을 유지하면서 스토리를 진행하는 와중에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말을 전한다. 연출, 연기, 공간, 음악, 미술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결과라고 하겠다.
▲ 영화 <엄마의 왕국>의 한 장면. |
ⓒ 스튜디오 에이드 |
가족이라는 신화라고 해야 할까. 가족이라면 자고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이게 제대로 된 가족의 모습이다, 가족 구성원들끼리는 서로 모르는 게 없어야 한다 등 우리는 가족의 이상향을 이렇게 배웠다. 물론 틀린 말은 없다. 그렇게만 된다면 완벽한 가족으로 행복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모종의 이유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면? 신화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주경희와 도지욱은 비록 엄마와 아들 둘뿐인 편모 가족이지만 여느 가족 부럽지 않게 화목해 보인다. 그런데 불쑥 찾아온 도중명의 말 한마디에, 치매에 걸린 주경희가 문뜩 내놓은 말 한마디에 뿌리부터 흔들린다. 화목함 따위는 온데간데없이 영원히 계속될 불화의 씨앗이 이제 자라나려 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게 이리도 쉽게 흔들리나? 가족이라는 신화가 이리도 쉽게 무너지나?
그럴 수는 없다. 누군가는 반드시 '가족'을 지킬 것이다. 그곳에 추악한 비밀, 진실, 거짓 등이 매섭게 소용돌이쳐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지켜나갈 것이다. 인간의 본능이다. 그 본능이 가족을 지켰고 공동체를 지켰고 국가를 지켰다. 그런 만큼 이 영화의 제목을 <엄마의 왕국> 대신 <가족의 탄생>이라고 바꿔도 무방할 것이다. 이전 세대 가족의 비밀을 묻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누군가는 끊어내야 한다. 본능을 억누르고 추악한 비밀, 진실, 거짓이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을 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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