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병력 재편성 끌어낸 우크라 기습…"명예로운 철수" 권한 까닭
러시아 본토를 기습한 우크라이나군이 접경 마을 74곳을 점령하고 러시아군 수백 명을 포로로 사로잡은 가운데, 러시아가 본토 방어를 위해 최전방 병력의 일부를 이동시키고 있다. 러시아군의 이런 움직임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적들을 몰아내고 제압할 것”이라며 반격을 예고한지 하루 만에 파악됐다.
13일(현지시간)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러시아가 통제 중인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의 항공정찰·공격 드론 부대가 러시아 본토의 전투를 지원하기 위해 쿠르스크로 이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같은 날 라우리나스 카스추나스 리투아니아 국방장관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러시아 역외 영역인 칼리닌그라드에 주둔 중인 러시아 병력 일부가 쿠르스크로 이동 중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관료의 발언을 인용해 러시아 병력의 이동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당국도 자포리자와 헤르손 등 남부 전선에 배치된 러시아군 일부가 철수해 쿠르스크로 재배치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러시아군의 재배치 움직임은 푸틴 대통령의 ‘반격 예고’ 하루 만이다. 전날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기습 이후 세번째 안보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적들을 우리 영토에서 몰아내고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바 있다.
우크라, 74개 마을 장악…벨고로드 비상체제
이날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 본토를 치고들어간 자국군을 위해 탱크와 장갑 차량을 보내며 추가 지원을 했다. 올렉산드르 시르시키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은 “우리 군은 3㎞ 더 전진해 영토 40㎢를 추가로 장악했다”면서 “현재 74개 마을을 점령했다”고 밝혔다.
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2일 우크라이나 군대가 1000㎢의 영토를 점령했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도 지도를 공개하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에서 최소 800㎢(서울 면적의 1.32배)를 통제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쿠르스크와 인접한 벨고로드까지 전선을 넓혔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이날 뱌체슬라프 글라드고프 벨고로드 주지사는 자신의 텔레그램에 벨고로드 전 지역에 비상 체제가 선포됐다고 밝혔다. 그는 “벨고로드는 매우 어렵고 긴장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군의 연이은 포격으로 가옥 파괴와 민간인 사망이 속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국경 지역 상황이 급벽히 악화됐다면서 드론 공격뿐 아니라 곡사포, 박격포, 다연장로켓포의 공격 횟수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장에선 이미 러시아군의 반격이 강해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쿠르스크에서 돌아온 일부 우크라이나군들은 “러시아군의 맹렬한 저항에 부딪쳐 거점을 확장하는 게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WSJ에 전했다. 일부 군인은 러시아가 활공폭탄으로 우크라이나의 진지를 파괴하고, 정규군을 집결하면서 예비군도 모으고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의 본격적인 반격이 예고되면서, 우크라이나의 작전이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BBC는 “우크라이나의 대담하고 훌륭한 기습은 성공을 거뒀지만, 이제 선택의 순간이 왔다”고 전했다. 러시아를 최대한 압박하기 위해 본토로 치고들어간 우크라이나군을 유지할 것인지, 점령지를 포기하고 자국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명예로운 철수’를 할지 정할 순간이 왔다는 의미다.
WSJ은 우크라이나군의 본토 기습 감행에 주요 목적 중 하나가 최전선에 투입된 러시아군 병력을 분산시키는 데 있었다면서, “러시아군의 재편성을 이끌어낸 것만으로도 우크라이나군 작전은 일부 성과를 거둔 것”으로 했다. BBC는 “크렘린의 자존심에 피를 흘리게 하고, 러시아의 병력이 더 투입되기 직전인 현 시점이 명예로운 철수의 적기”라고 전했다.
영국 엑서터 대학의 데이비드 블래그던 교수는 “우크라이나가 본토 공격을 지속하고 점령지를 유지하려면 인력·장비·물류에서 상당합 압박을 받을 것”이라면서 “공급선이 길어질수록 더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 “러시아 영토 점령 관심 없다”
한편 이날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이번 러시아 본토 진격 작전의 목적에 대해 “러시아의 전쟁용 물류와 인프라를 파괴하기 위해서”라고 전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쿠르스크 지역을 이용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중 및 포병 공격을 개시하고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 대한 침공을 지원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 대변인 헤오르히 티키는 “우리는 러시아 영토 점령에 아무 관심이 없다”면서 “러시아가 공정한 평화 회복에 빨리 동의할수록 러시아 영토에 대한 우리의 공격도 빨리 멈출 것”이라고 전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불륜은 과학입니다" 그 길로 빠지는 대화법 | 중앙일보
- 병원서 성폭행 후 살해된 인도 수련의…동료 의사들 무기한 파업 | 중앙일보
- "10살 아들 '사탕 뇌' 됐다"…MIT 교수 아빠의 충격 목격담 | 중앙일보
- '베드신 몸매 보정' 거부한 여배우, 이번엔 뱃살 당당히 드러냈다 | 중앙일보
- 태국서 40대 한국인 사망…현금 뿌리고 속옷만 입은 채 투신 | 중앙일보
- 10년간 프랑스 절대 못 온다…올림픽경기장 나타난 남녀 충격 만행 | 중앙일보
- "태권도 금 박태준 우리 직원 아들이래"…6000만원 쏜 이 회사 | 중앙일보
- "검사비 3만원? 안 받을래"…코로나 재유행에 노인들 한숨 | 중앙일보
- 악플 고통받는 이혜원 보자 안정환 반응…"컴퓨터선 가위로 잘라" | 중앙일보
- “전차 탔다가 65만원 뜯겼다” 폴란드 여행 중 생긴 일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