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벨트 주도권 역전? 해리스, '셰일가스 시추' 발언 역풍
11월 미국 대선의 양대 경합지역 가운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추격 중인 러스트벨트(쇠락한 북부 공업지대)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소 앞선다고 평가받는 선벨트(남부 국경지대)에서 상대방이 주도해온 정책 이슈 때문에 막판 주도권의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또한 양측의 주도권 경쟁 속에서 국가 재정 상태를 무시한 무분별한 선심성 포퓰리즘 공약이 난무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4년전 ‘수압파쇄 금지’ 발언 돌출
해리스가 사활을 걸고 있는 러스트벨트의 중심 펜실베이니아에선 2020년 민주당 대선 경선 때 해리스가 셰일가스 시추 기술의 하나인 ‘수압 파쇄법(fracking·프래킹)을 금지하겠다’고 했던 발언이 돌출했다.
당시 해리스는 암반에 액체를 주입해 가스를 분리하는 수압 파쇄법이 대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펜실베이니아가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지 중 하나로,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비용이 적게 드는 프래킹을 지지한다는 점이다. 특히 해리스의 부통령 후보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는 2040년까지 미네소타의 전력망을 100% 친환경 에너지로 바꾸겠다는 밝히는 등 해리스보다 강경한 에너지 정책을 펴고 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며 “취임 첫날부터 가스와 원유를 시추해 미국의 에너지 비용을 세계 최저수준으로 낮추겠다”고 공약한 상태다.
워싱턴포스트(WP)는 13일(현지시간) “해리스 캠프가 펜실베이니아 유권자들을 의식해 ‘프래킹을 금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지역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며 “해리스보다 중도 성향이자 펜실베이니아 출신인 바이든 대통령도 2020년 8만1000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는데, 해리스는 펜실베이니아에서 바이든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선벨트, 낙태 ‘찬반 투표’ 변화 가능성
불법 이민 문제를 앞세워 트럼프가 상대적으로 앞서고 있다고 평가 받는 선벨트 지역의 선거 구도는 급격히 낙태에 대한 찬반투표 양상으로 변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애리조나주는 이날 대선 때 낙태권리를 주(州) 헌법에 명기할지를 놓고 주민 투표를 함께 실시한다고 밝혔다. 앞서 미주리, 콜로라도, 플로리다, 메릴랜드, 네바다, 사우스다코타 등 6개주가 같은 결정을 했는데, 이중 네바다는 조지아·애리조나와 함께 선벨트 내 대표적 경합주로 꼽힌다. 선벨트 내 2개 주의 대선이 사실상 낙태에 대한 찬반투표 형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낙태 이슈는 민주당 내에서도 특히 해리스가 주도해왔다. 또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연방 대법원이 2022년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한 이후 낙태권 보호와 관련한 주민투표가 실시된 7개주 모두에서 낙태권을 인정하는 결과가 나왔을 정도로 낙태권에 찬성하는 여성 표심이 강하다. 2022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예상을 깬 선전을 한 배경 역시 낙태 이슈로 분석된다.
美 대선서도 ‘무상급식’ 이슈 부상?
NYT는 이들 2개 이슈 외에도 모든 공립학교 학생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보편적 무상급식이 이번 대선에서 전국 단위의 쟁점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무상급식은 해리스의 러닝메이트 월즈 주지사가 지난해 미네소타에서 통과시킨 사안으로, 민주당을 월즈의 결정을 당 차원의 주요 성과로 홍보하고 있다. 현재 미국 50개 주 가운데 현재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주는 미네소타, 콜로라도, 캘리포니아, 메인, 매사추세츠, 미시간, 뉴멕시코, 버몬트 등 8개다. 버몬트를 제외한 7개 주의 주지사는 민주당 소속이다.
트럼프의 경우 2020년 코로나19 대응 차원에서 일시적 무료 급식을 실시한 적이 있다. 해당 정책은 바이든 정부 때인 2022년 가을에 종료됐다.
NYT는 “해리스 캠프가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제시할 가능성이 큰 반면, 트럼프는 무상급식을 지지할 가능성이 낮다”고 전망했다. 실제 공화당이 최근 제시한 예산안에는 바이든 정부가 추진해온 무상급식 기준 완화안에 반대하고 있고, 트럼프 2기의 국정운영 청사진으로 평가되는 ‘프로젝트 2025’에도 무상급식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4.8경 부채에도…‘포퓰리즘’ 공약 경쟁
미국 언론들은 미국 정부의 국가부채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상황에서도 두 대선주자들이 재원 마련 없는 포퓰리즘 공약 경쟁을 벌일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일례로 트럼프와 해리스는 경합주 네바다를 겨냥해 ‘팁(tip)’에 대한 세금을 없앤다는 공약을 내놨다. 트럼프가 완전 면세 공약을 먼저 제시하자, 해리스가 노령연금 및 고령자 의료보험을 뺀 연방 소득세를 면제하는 방식으로 따라간 형식이었다. 만약 트럼프식 전면 면세가 이뤄지면 10년간 2500억 달러(약 341조원)의 세금 징수가 줄고, 해리스의 방식으로도 1000억 달러 이상의 세수가 감소한다.
트럼프의 러닝메이트 JD밴스 상원의원은 자녀 1인당 세액공제 규모를 현행 2000달러에서 5000달러로 상향하겠다고 했다. 이 공약엔 10년 간 2조 달러(약 2734조원)이 필요하다. 트럼프는 또 저소득층에게만 적용되는 현행 노령연금 세금 감면 제도를 전계층에 대한 면세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 공약엔 1조 8000억 달러(약 2460조원)가 든다.
지난달 29일 기준 미국 정부의 총부채는 35조 달러(약 4경 8496조원)에 이른다. 그러나 양측은 선심성 공약 경쟁 속에서도 재정 적자에 대한 언급은 최소화하고 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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