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하고, 옷 안 사고... '뭐라도 하는' 사람의 마음

서부원 2024. 8. 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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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날이 떨어지는 효능감... 나약한 마음을 추스르려 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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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원 기자]

"인류에게 22세기란 오지 않는다."

교사로 일하는 나는 몇 해 전 우연히 접한 이 글귀에 무릎을 쳤다. 환경 오염과 기후 위기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경고 중 단연 최고라고 여겨, 토론 수업의 화두로 활용하기도 했다.

기실 '지구의 멸망'이라는 표현은 틀렸다. 인류가 멸종된다는 걸 가당찮게도 지구에다 빗댄 것이다. 시기의 문제일 뿐, 중생대에 공룡이 사라졌듯 인류도 언젠가는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출 건 자명해 보인다.

그런데, 그 시기가 채 100년도 남지 않았다면? 아직은 비유일 뿐이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두렵다. 지금 갓 태어난 아이가 세상을 떠나기 전이라고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당장 '뭐라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본능처럼 솟구친다. 너 혼자 그런다고 이 세상이 달라지겠느냐는 조롱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20여 년 전 육식을 끊었다. 차마 거창하게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실천이었다고는 못하겠다. 당시는 기후 위기라는 말조차 생소할 때다. 그저 제 몸만 한 비좁은 곳에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가두어놓고 살을 찌우는 공장식 축산의 실상을 보고 충격이 너무 컸다. 옆 닭을 쪼거나 자해하지 않도록 부리를 자르는 모습을 보고선 기겁했다.

그로부터 몇 해 뒤 종이컵과 나무젓가락 사용도 자발적으로 금했다. 평소 죽고 못 사는 커피도 종이컵에 담긴 거면 쳐다보지 않았다. 일과 중 어딜 가든 텀블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처음엔 무척 번거로웠지만,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불편하기는커녕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침샘을 자극하던 육식의 쫄깃한 식감도 지금은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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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한 실천하려 하지만, 가끔은 외롭습니다

옷도 거의 사지 않고, 일주일에 한 번은 무조건 자전거로 출근한다는 원칙을 세우는 등 나름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데, '효능감'은 나날이 떨어진다.

어차피 22세기가 오기 전에 멸종될 운명이라면, 마음껏 쓰고, 먹고, 버리는 소비 생활의 즐거움을 누리는 편이 낫지 않나 하는 나약한 생각마저 스멀거린다.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뿐인가 싶어 외로워질 때도 있다.
▲ 이상기후 폭염으로 조류 번식 급증 전북 진안 용담호에 지난 1일 올해 첫 조류경보 '관심' 단계가 발령됐다. 전북지방환경청은 장마 기간 집중호우로 다량의 영양물질이 유입된 상태에서 폭염으로 수온이 상승해 조류가 급격히 번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일 조류가 번식해 짙은 녹색으로 변한 용담호의 모습.
ⓒ 연합뉴스
지금껏 '못 볼 것'을 너무 많이 봐온 탓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이런 경험이다. 몇 해 전 인근 농촌 마을에 대기업 브랜드를 앞세운 대규모 축사 시설이 들어온다는 소식에 지역 주민, 환경 단체 등과 함께 반대 시위에 며칠간 참여한 적이 있다. 거리 곳곳에 '결사반대'라는 현수막이 내걸렸고, 여론도 주민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였다.

업체와 지방자치단체는 전가의 보도처럼 시설이 오면 지역 경제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읊어댔다. 하지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다른 이가 챙기게 될 것'이라며 되레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만 키운 결과를 낳았다. 반대 시위가 계속되던 어느 날, 업체가 유치 의사를 접게 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이내 뒤풀이 자리가 마련됐다.

바로 그때, 청정한 농촌 마을에 악취 풍기는 축사를 세운다는 계획만큼이나 충격적인 모습을 봤다. 서로 수고했다며 덕담이 오간 뒤풀이 자리가, 다름 아닌 고깃집이었다. 술잔이 몇 순배 도는 동안 불판 위에선 두툼한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갔다. 축사 시설은 '결사 반대'한다면서 고기 먹고 힘내서 싸우자는 그들의 의기투합은 괜찮은가. 그 아이러니함에, 채식주의자로서는 더 당혹스러웠다.

상황은 달라도 '못 볼 것'은 주변에 숱하게 널려 있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내연기관 자동차를 최근에 큰마음 먹고 전기차로 바꿨다는 한 지인은, 최근 지하철 공사로 교통 체증이 심각해졌다며 대화 중 버럭 화를 냈다. 전기차를 사는 것보다, 시내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자주 타고다니는 게 실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자전거를 상용할 수 있도록 도심에 전용도로를 넓히고 편의 시설을 갖추도록 하자는 제안에도 사람들은 대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하나같이 요즘 같은 폭염에 자전거는 이동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이유를 댄다. 최근의 기후 여건을 고려하면, 1년 중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시기는 기껏해야 4개월 남짓에 불과하다고 눈을 흘긴다.

눈앞 이상기후, 고개 돌리는 사람들... 이게 최선일까

그들 역시 해마다 경신되는 역대급 폭염이 자기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때문이라는 사실에는 눈을 감는다. 심지어 자전거 전용도로가 확충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다음과 같은 궤변을 늘어놓는 이도 있다. 차라리 자동차 전용도로를 넓혀 교통 체증을 줄이는 것이 연비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어 더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억지 섞인 주장 말이다.

이런 당혹스러운 주장과 행동은, 분명 그들이 몰라서 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저 오랫동안 몸에 밴 관행 탓에 불편함을 견디기 싫다는 거고, 나아가 혼자 고기 안 먹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자전거를 탄다고 해서 해결될 리 만무하다는 관성적 인식이 워낙 강고해서일 것이다. 억지 논리일지언정 자신의 주장과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몸부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학교에서 동료 교사들은 물론, 아이들에게까지 유별난 환경주의자로 낙인찍힌 탓에 나는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 채식주의자라고 하면 식물도 생명체인데 동물만 불쌍하냐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쏟아내던 십수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세상은 진보했다. 그러나 적게 소비하고 자발적으로 불편함을 감수하는 데까진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고백하자면, '효능감'은 낮아지고 자꾸만 흔들리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다짐 삼아 이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민망하게도 조금 전까지 내 두 손에는 택배 상자와 플라스틱이 가득 담긴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스티로폼 상자와 플라스틱, 빈 종이 상자가 수북하게 쌓인 아파트 분리수거함에 다녀오는 길이다. 당장 우리집에서 하루에 배출되는 양만 족히 한두 상자는 될 성싶어 면구하다.
▲ 환경의날 하루 앞두고 환경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6월 4일 경기도 수원시자원순환센터에 플라스틱 재활용 쓰레기가 가득 쌓인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
분리수거함 옆 누군가 내다 버린 며칠 전 신문 더미에 기사의 제목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당 40mm의 국지성 호우, 수온 상승으로 인한 해파리떼 극성, 폭염으로 채솟값 폭등, 열사병으로 2명 사망… 물론, 기사마다 기후 위기가 주요인이라는 분석을 덧붙인다. 어제 날짜 신문엔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 댐을 건설할 계획이라는 기사도 보였다.

댐이라고 하면 전력을 생산하거나 농업과 생활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건설하는 게 보통이었는데, 이젠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라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한쪽에서는 타성에 젖은 채 기후 위기를 부추기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기후 위기로 인한 재난에 대비한다고 호들갑 떠는 모양새다. 마치 병 주고 약 주는 꼴이다.

아파트 주차장에는 택배 트럭과 배달 오토바이가 밤낮으로 오간다. 엄청난 양의 상자와 포장재가 이내 이곳 분리수거함에 쌓이게 될 것이다. 그때 분리수거함을 정리하고 있는 관리소 직원분께 부러 다가가 이 많은 쓰레기가 다 어디로 가고, 어떻게 처리되는지 아느냐는 실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렇게 대답했다.

"땅에 묻거나 바다에 버리거나, 그도 아니면 태우겠죠. 다들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고 걱정하면서도 쓰레기의 양은 늘어만 갑니다. 기후 위기는 멀고, 편리함은 가까우니까요.

더 이상 쓰레기를 처리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기 전까지는 행동의 변화를 기대하긴 힘들겠죠. 각자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고선 쓰레기를 줄이기란 불가능하다고 봐요. 절망적인 상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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