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정이삭 감독의 신작, 의외로 이 장면이 없다

최해린 2024. 8. 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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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트위스터스>

[최해린 기자]

 영화 <트위스터스> 스틸컷
ⓒ 유니버설 픽쳐스
(*이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미나리>를 통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정이삭 감독의 신작 <트위스터스>가 개봉했다. 1996년 영화 <트위스터>의 후속작인 이 영화는 신중한 뉴욕 기상청 직원인 '케이트'가 과감한 인플루언서 '타일러'와 합을 맞추며 오클라호마에 상륙할 초대형 토네이도를 없앨 방법을 찾는다는 내용이다.

외계인과 전쟁, 슈퍼히어로가 난무하는 최근의 블록버스터 영화들 틈에서 <트위스터스>가 어떻게 재난영화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었는지 알아보자.

할리우드에서도 살아남은 감독의 영상 문법

대부분의 촬영이 CGI를 통해 이뤄지는 고예산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감독은 자칫 자신의 개성을 잃어버리기 쉽다. <브링 잇 온>, <예스맨> 등의 영화로 자신의 브랜드를 확립했다가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에서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페이턴 리드 감독이 그 대표적인 예다.

정이삭 감독은 거대한 폭풍과 맞서는 영화 속에서도 자신의 영상 문법을 잃지 않는데, 바로 영화를 이끄는 두 중심인물의 소개 장면에서 이를 볼 수 있다.

주인공 케이트(데이지 에드가-존스 분)는 토네이도를 없앨 수 있는 기술을 시험하려다가 동료들을 죽음으로 내몬 적이 있어 극도로 신중하고 조심스럽다. 한편, 또다른 주인공 타일러(글렌 파웰 분)는 토네이도를 쫓아다니며 유튜브 방송을 생중계하는 등 무모한 모습을 보인다.

두 주인공은 모두 '촬영되는' 장면으로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보여 준다. 케이트는 토네이도 실험을 앞두고 자기 모습을 녹화하는 신으로, 그리고 타일러는 토네이도를 쫓는 트럭 안에서 자기 자신을 중계하는 신으로 영화의 시점(point of view)을 한 번씩 바꾼다.

대부분의 영화 속에서 이러한 '카메라 속 카메라' 장면은 소재가 믿음을 자아내기 어려운 경우, 이야기에 현실감을 더해주기 위해 사용되는 장치다. <트위스터스> 속의 이러한 시점 변경은 이야기의 호흡을 안정시킬 뿐만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두 주인공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창구로 작용한다.
 영화 <트위스터스> 스틸컷
ⓒ 유니버설 픽쳐스
케이트가 보는 타일러의 모습은 유튜브 영상 속 '대책 없는 인플루언서'이고, 타일러가 보는 케이트의 모습은 토네이도로 무너지는 사람들의 삶에는 관심도 없는 '냉철한 분석가'다. 두 주인공이 이러한 첫인상을 극복하고 각자의 진면목을 알아가게 되면서 이야기가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또한 정이삭 감독은 '영화적 허용'을 통해 두 주인공 간의 유사성을 부각하기도 한다. 케이트와 타일러가 처음 만난 후, 둘은 각자의 팀을 이끌고 토네이도를 쫓아간다. 둘은 토네이도가 향하는 곳을 각각 다르게 예측하지만, 소용돌이의 경이로움을 동료들에게 설명하면서 정확히 같은 대사를 내뱉는다. 멀리 떨어진 두 사람이 동일한 말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과감한 교차편집을 통해 이를 자연스럽게 영화 속에 녹여낸 것이다.

이러한 감독 특유의 문법이 영화 속에도 확실히 녹아났기에, <트위스터스>는 그저 그런 '재난영화의 속편'이 아닌 '정이삭 감독의 신작'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이다.

이야기 중심 확실히 잡은 주제

"반은 과학이고, 반은 신앙이죠."

토네이도의 발생 원인이나 방향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타일러가 한 말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트위스터스>는 재난영화의 옷을 입고 있지만, 사실상 마음을 굳게 닫은 두 인물이 서로를 믿는 과정을 담은 휴먼 드라마에 가깝다. 이는 결말부에서도 여실 없이 드러나는데, 타일러의 위 대사는 영화의 주제와 결말을 동시에 관통한다.

영화 후반 케이트와 타일러는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고 좋은 동료 관계로 발전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의 본심을 꺼낼 단계에는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케이트는 자신이 토네이도를 없애는 방법을 발명했으나 과거의 실패 사례 때문에 주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지 못한다.

한편, 지금까지 본 것보다 훨씬 큰 토네이도가 다가와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릴 위기가 다가오고, 케이트와 타일러는 케이트의 어머니 집에 갇히게 된다. 그제야 케이트는 자신이 오래전 토네이도 제거법을 구상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실패할까 봐 두렵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케이트의 예상과 달리, 타일러는 그의 계획을 응원하고 지지해 준다.

"두려움은 맞서는 게 아니에요. 타고 가는 거지."

결국 토네이도가 마을 전체를 휩쓸기 시작했을 때, 케이트는 홀로 토네이도 제거 장치를 이끌고 폭풍의 눈으로 향한다. 시도는 성공해 날씨는 한순간에 쾌청해지고, 미처 현장을 피하지 못한 사람들 역시 안전한 곳으로 향할 수 있었다. 토네이도를 사라지게 한 것은 케이트의 기술이지만, 그 기술을 쓸 수 있게 만든 것은 타일러의 케이트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야말로 반은 과학, 그리고 반은 신앙(믿음)인 것이다.

이 두 인물의 관계에 정점을 찍는 것은 바로 '키스 장면의 부재'일 것이다. 케이트와 타일러는 로맨틱한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지만 결말에 이르러서도 키스하지는 않는다. 이는 본작의 프로듀서인 스티븐 스필버그가 직접 지시한 결과로 알려져 있는데, 두 사람이 서로를 믿게 되는 과정을 단순한 '로맨스 플롯'으로 소비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결정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케이트와 타일러의 관계는 키스신의 부재를 통해 관객에게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영화 <트위스터스> 포스터
ⓒ 유니버설 픽쳐스
이처럼 <트위스터스>는 중심인물이 무미건조하면 아무리 흥미로운 소재라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없다는 법칙을 확실히 인지했다. 데이지 에드가-존스의 케이트와 글렌 파웰의 타일러는 은은하면서도 폭발적인 케미스트리를 자랑했고, 그것이 영화의 핵심이 됐다.

'영혼 없는' 블록버스터 영화에 지친 사람이라면, 그리고 시원한 폭풍을 극장에서 대신 경험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트위스터스>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인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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