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 쌓인 오수, 악취 풍기지 않고 흘려 보내는 법

김성호 2024. 8. 14.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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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808] <물은 바다를 향해 흐른다>

[김성호 기자]

'대악취(Great Stink)'라 불리는 사건이 있다. 기술과 위생, 도시와 인구의 관점에서 역사를 공부한 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역사적 사건이다. 1858년 발생한 이 사건의 영향으로 후일 수많은 인간이 목숨을 건지게 되리란 걸 예상한 이는 얼마 되지 않았다.

19세기 중반 런던은 끔찍한 도시였다. 지금도 그리 쾌적하지는 않은 영국 템스강이다. 도시 중앙을 흐르는 이 강의 오염도는 가뜩이나 불결했던 도시를 더욱 끔찍하게 했다. '거대한 악취(The Big Stink)'란 별명으로도 불린 이 강의 냄새 때문에 강변을 걷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근처 건물은 죄다 창문을 닫아놓았고, 사람들은 코를 쥔 채로 걸음을 빨리했다고 전한다. 1878년, 프린세스 앨리스(Princess Alice) 호가 침몰해 600여 명이 죽은 비극이 벌어졌을 때 대부분의 사인이 익사가 아닌 유독물질 흡입으로 판명된 건 유명한 일이다.

대악취는 1858년 여름 발생한 사건이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강물이 끓어오르며 박테리아와 온갖 미생물이 번식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악취가 올라온 것이다. 기록은 강변에 위치한 의사당과 법원 등이 제 역할을 못 할 만큼 끔찍한 악취였다고 전한다. 정도가 다를 뿐 매년 여름 반복되는 사건이었지만 이 해엔 그 정도가 심했다.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쓰러진 이들까지 속출할 정도. 비가 내리기까지 지속된 악취로 영국 정부는 미뤄온 결정을 내리기에 이른다. 악취의 원인을 차단하는, 향후 전 세계 대도시에 모범이 되는 장대한 계획이었다.
 영화 <물은 바다를 향해 흐른다> 스틸컷
ⓒ 미디어캐슬
하수는 반드시 흘러야 한다

악취의 원인은 미비한 하수 시스템이었다. 산업 발달과 그에 따른 이촌향도, 즉 도시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급격하게 도시에 몰려들었다. 기본적인 생활 여건이 갖춰지지 못한 가운데 늘어난 이들은 도시에 여러 문제를 발생시켰다.

그중 하나가 배설이었다. 제대로 된 화장실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오물통(cesspool)에 일가족의 배설물을 저장했다. 그리고는 매일 아침 직접, 혹은 처리업자를 통해 그를 내버렸다. 업자든, 개개인이든 처리방식은 같았다. 강에다가 던져 버리는 것이다.

대악취 사건에 대한 대응은 대규모 하수도 설비였다. 거대한 하수도가 1860년 이후 런던 곳곳에서 완공돼 운영에 돌입했다. 도시 오물은 바다로 흘러갔고, 도시는 쾌적함까지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위생을 되찾았다. 무엇보다 콜레라를 비롯한 수인성 질병이 크게 줄어들었다. 문자 그대로 '똥물'이라 불렸던 템스강물은 생명이 살 수 있는 정도로 복원됐다.

부산시민이라면 일명 '똥천'으로 불린 동천을 단박에 떠올릴 수밖에 없을 테다. 오염으로 인한 악취가 심각한 수준이었던 동천 살리기에만 수백억 원, 하수관 교체까지 포함하면 수천억 원의 세비가 투입됐다. 바닷물을 끌어다 천에 붓는 이른바 '해수도수사업'도 실패했다. 의도는 그럴듯했으나 여러 제약을 핑계로 해수를 끌어오는 지점을 강 하구에 둬 하류의 오염된 물을 위에다 붓는 꼴로 전락한 것이다. 흐르지 못한 오수 문제는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다.

서론이 길었다. 그러나 영화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서론이다. 이번 '씨네만세'에서 다룰 영화 <물은 바다를 향해 흐른다>가 대악취와 그에 대한 인간의 대응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는 환경오염이나 위생, 하수도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물은, 특히 오수는 저 멀리 흘려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영화가 일깨운다. 각자의 마음 안에 오수를 처리하는 하수 시스템 하나 정도는 제대로 설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아서, 때때로 재앙이 빚어지기도 한다. 런던의 1858년과 1878년, 부산의 오늘이 그렇듯이.
 영화 <물은 바다를 향해 흐른다> 스틸컷
ⓒ 미디어캐슬
바람나 집 나간 엄마를 둔 딸의 마음

<물은 바다를 향해 흐른다>는 고등학생 나오타츠(오니시 리쿠 분)가 낯선 동네로 전학을 오며 시작된다. 형편상 삼촌(코라 켄고 분)의 집에 얹혀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데, 역에 마중을 나온 이는 처음 보는 여자 사사키(히로세 스즈 분)다. 삼촌의 애인인가 보다 싶어 그녀를 따라나서 도착한 집은 나오타츠의 예상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이제는 한국에도 제법 있는 셰어하우스다. 삼촌 혼자 사는 줄로만 알았던 그 집에 삼촌뿐 아니라 사사키, 여장 알바도 마다 않는 아저씨(토즈카 준키 분), 대학교수(나마세 카츠히사 분) 등이 함께 살아간다. 알고 보니 본가에선 멀쩡히 직장을 다닌다고 한 삼촌이 만화를 그리겠다며 퇴사해 생활비를 줄이려 셰어하우스에 입소한 것. 이 집에 얹혀살겠다고 들어온 조카 나오타츠만 난감한 입장이다.

삼촌의 당부로 상황을 알리지 못하는 나오타츠는 어떻게든 집에서 살아보려 하지만 적응이 만만치는 않다. 무엇보다 예쁘장한 누나 사사키가 제게 까칠하게 나오는 것이 영 불편하기만 하다.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주눅이 들어 있는 나오타츠다. 본래 공감력 있는 선한 기질에다 감수성도 한창 예민할 나이가 아닌가. 가뜩이나 불편한 마음을 안고 있던 나오타츠가 사사키가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를 알게 되며 영화는 본격적인 이야기에 시동을 건다.

이들 사이에 켜켜이 쌓인 사연은 다음과 같다. 사사키의 엄마가 나오타츠의 아빠와 바람이 나 집을 나갔단 것, 이 사실을 나오타츠가 나온 사진을 보고 알게 된 사사키가 사사건건 꼬장을 부리는 것이다. 나오타츠를 직접 해하는 건 아니지만 그를 싫어한단 사실은 분명히 전달하는 그녀의 태도에 소년은 좌불안석이 될 밖에 없다.
 포스터
ⓒ 미디어캐슬
썩어 악취를 풍기지 않도록

그로부터 영화는 사사키가 제 상처를 돌아보는 과정으로 흘러간다. 엄마의 불륜으로 마음을 다친 열 몇 살 그대로 멈춰 있던 사사키의 시간이 비로소 흘러내리는 과정이 일본 드라마 특유의 소소하지만 은은한 성장기로 그려진다. 이를 가만히 보다 보면 마음속 오물 또한 어떻게든 흘려내야 하는 것이 삶임을, 상처를 껴안은 채로 버티는 것이 도리어 저 자신을 망치는 일임을 알게 된다. 요컨대 마음속에도 템스강 아래 깃든 하수도가 놓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콜레라와 같은 질병이 우리를 덮칠지도 모를 일이니.

<물은 바다를 향해 흐른다>는 타지마 렛토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 그러나 나는 제목을 달리 달아야 한다고 여긴다. 모든 물은 바다를 향해 흐르지 않는다. 고이고 썩어 악취를 풍기기도 한다. 말하자면 순환의 숙명을 거슬러 생명과 자연, 생태를 해친다. 대악취 사건이 가장 선명한 증거가 된다.

대악취 사건으로부터 인간은 배웠다. 자연히 흐르길 바라는 것은 늦다고 말이다. 썩기 전에 흐르도록 해야 할 일이다. 말하자면 물은 바다를 향해 흘러야 한다. '흐른다'는 관측이 아닌 '흘러야 한다'는 당위, 흐르지 못해 썩기 직전인 사사키와 같은 이가 있으므로. 사사키에겐 나오타츠의 방문이, 그로부터 일어난 사건들이, 저를 둘러싼 이들이 내민 손길이 곧 하수도 공사와 같은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구원받는다. 20세기 템스강과 런던의 주민들이 그러했듯.
 영화 <물은 바다를 향해 흐른다> 스틸컷
ⓒ 미디어캐슬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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