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설치한 옆집 신고합니다" 경관 해칠라 주민 갈등 격화 伊 부촌
이웃 주민들, 설치 사진 찍어 경찰에 제보도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의 고급 휴가지로 알려진 이탈리아 북서부의 해안마을 포르토피노에서 에어컨을 둘러싼 주민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도시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당국이 에어컨 설치를 단속하자 주민들이 서로를 신고하고 나선 탓이다. 1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은 최근 포르토피노 경찰은 주민들이 불법으로 설치한 에어컨을 단속으로 인해 주민 간의 불신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이탈리아에서 손꼽히는 부자 마을이자, 379명 인구가 사는 포르토피노는 바다와 항구 주위로 알록달록 지어진 집들이 조화를 이루는 해안 마을이다. 19세기부터 유럽 상류층의 휴가지로 알려진 이곳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빈, 팝스타 마돈나 등 유명 인사들이 자주 찾았다. 최근 이곳에선 패션 디자이너 돌체앤가바나가 주최한 파티와 인도의 억만장자 아난트 암바니의 결혼 전 파티 등이 성대하게 열렸다.
그러나 정작 이곳 주민들은 돈이 있어도 에어컨을 쉽게 설치할 수 없어 무더위로 고통받고 있다. 포르토피노는 1935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건물에 에어컨 설치하는 것이 불법이기 때문이다. 이후 주민들의 반발에 정부 당국은 규제를 완화했지만, 여전히 설치 조건은 까다롭다.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실외기 등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설치해 도시의 미관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제약 조건이 따른다.
이 가운데, 최근 몇 년 사이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무더운 여름 날씨가 이어지자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무단으로 에어컨을 설치하는 집들이 늘었다. 단속에 나선 경찰은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옥상과 테라스에서 불법으로 설치된 실외기 22건을 찾아냈다. 또 기온이 급상승한 6월 이후로 15건을 더 적발했다. 일부 주민들은 에어컨 실외기를 숨기거나 주변과 비슷한 색깔의 페인트를 칠해 위장했지만, 이 역시 당국의 눈을 피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주민들이 서로의 에어컨 설치를 감시하고 신고하는 사례 또한 늘고 있다.
이탈리아 현지 매체 코리에레델라 등은 이웃 주민의 초대를 받아 방문한 뒤 몰래 에어컨 사진을 찍어서 경찰에 넘긴 사례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곳 주민들은 실외기 소음이 싫어서, 또는 자신을 신고했을지도 모르는 이웃 주민에 대한 보복 등을 이유로 앞다퉈 경찰에 제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경찰이 옥상에 설치한 실외기를 찾기 위해 드론을 동원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됐지만, 마테오 비아카바 시장은 이를 부인했다.
포르토피노에서 에어컨 불법 설치 혐의로 기소될 경우 최대 4만3000유로(약 64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 사건은 대부분 불기소 처분에 그쳤다. 비아카바 시장은 "작년 겨울 누군가 비좁은 거리에 커다란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한 일을 계기로 단속을 시작하게 됐다"며 "사람들이 더위로 고통받고 수면을 방해받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규정을 존중하고 포르토피노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에어컨 없는 유럽 도시들, 그 이유는?앞서 12일 폐막한 파리 올림픽에서도 친환경을 이유로 선수촌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여름철 에어컨이 필수인 한국과 달리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에어컨은 여름철 필수품이 아니다. 오히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에어컨은 사치품이란 인식이 강하다.
특히 파리를 비롯한 유럽의 관광 도시들은 에어컨 실외기가 도시 미관을 해치기에 에어컨을 설치하려면 구청 허가를 받아야 한다. 여기에 소음 때문에 같은 건물 주민들 동의도 있어야 건물에 에어컨 설치가 가능하다. 이런 까다로운 절차로 인해 에어컨 설치를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프랑스에서 에어컨을 설치한 가정은 2020년 기준 17%밖에 안 된다. 에어컨이 없는 건 지하철이나 버스 등 교통수단도 마찬가지다. 파리 지하철 17개 노선에서 에어컨이 설치된 곳은 단 5개 노선과 2개 노선 일부 전동차뿐이다. 전동차 비율로 보면 10대 중 4대만 에어컨이 설치돼있다. 일반 사무실은 물론이고 한국 기준으로는 당연히 있을 거로 생각하는 호텔조차도 프랑스, 특히 파리 도심에서는 에어컨이 없는 경우가 상당수다.
방제일 기자 zeilism@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폭설에 길 막히자 컵라면 먹은 버스기사…누리꾼 비판에 "참 민감하다" - 아시아경제
- 샤워하다 소변 봐도 괜찮다?…의사들 "생산적인 멀티태스킹" - 아시아경제
- 햄버거 2개, 콜라 7캔…트럼프 식단 따라한 기자 "하루만에 병났다" - 아시아경제
- "북한 지하철엔 이런 것도 있네"…'평양 여행' 다녀온 유튜버가 공개한 모습 - 아시아경제
- "오늘이 가장 싸다" 발표하자마자 전화통에 '불'…분당 선도지구 가보니 - 아시아경제
- "80개국 언어 구사"…날씨 전하던 日 아나운서의 실체 - 아시아경제
- 고현정 "자식들에 부담주고 싶지 않아…받은 사랑 잘 돌려드리고파" - 아시아경제
- "얼굴, 목소리, 범죄기록까지 다 본다"…크리스마스 앞두고 구인난 겪는 이 직업 - 아시아경제
- "수준 낮고 저급하다"…'미달이' 김성은, 모교 동덕여대 시위 비판 - 아시아경제
- "내 돈으로 산 야구카드 돌려줘" 오타니, 230억 훔친 전 통역사에 또 소송 -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