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로켓배송 탄 CJ…햇반·스팸 '쿠팡 컴백'
CJ제일제당, 식품사업 내수 위축
쿠팡, 공정위 제재·멤버십 인상 위기감
양측 협업 필요성 공감대 분석
CJ제일제당이 쿠팡과 자사 제품 직거래를 재개한다. 납품가 문제로 갈등을 빚어 해당 채널에 상품 공급을 중단한 지 약 1년8개월 만이다. 유통업계에서는 식품업계 1위 CJ제일제당이 지속되는 내수 시장의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e커머스 공룡'으로 불리는 쿠팡과 협력이 불가피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쿠팡도 최근 자체브랜드(PB) 상품 판매를 늘리기 위해 검색 순위 알고리즘을 조작하는 행위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000억원대 과징금 제재를 받으면서 영업손실이 발생한 데다, 유료 멤버십 회비 인상으로 회원들이 이탈 조짐을 보이는 등 위기감이 커지자 영향력 있는 제조사를 다시 포섭해 e커머스 시장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CJ제일제당과 쿠팡은 14일 오전 나란히 보도자료를 내고 햇반과 비비고, 스팸 등 CJ제일제당의 인기 제품을 로켓배송으로 순차 판매한다고 밝혔다. 우선 이날부터 CJ제일제당의 제품 가운데 비비고 만두를 비롯해 비비고 김치, 고메 피자 등 냉동·냉장·신선식품 판매가 쿠팡에서 재개된다. 이어 맥스봉 소시지, 맛밤 등 가공·즉석식품뿐 아니라 해찬들 고추장·된장 등 양념류와 백설 식용유, 밀가루, 설탕 등도 모두 쿠팡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오는 23일부터는 CJ제일제당의 추석 선물 세트도 쿠팡에서 구매할 수 있다. 다음 달 말이면 CJ제일제당의 주요 브랜드 전체 상품을 쿠팡 로켓 배송을 통해 살 수 있게 된다. 쿠팡 와우 멤버십 회원은 주요 상품을 로켓프레시와 로켓와우를 통해 새벽 배송이나 당일 배송으로 받을 수 있다.
두 회사가 직거래를 재개하기는 1년8개월 만이다. 앞서 CJ제일제당과 쿠팡은 납품가를 두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2022년 12월부터 발주를 중단했다.
유통업계에서는 C커머스(중국 e커머스)의 공습을 받는 쿠팡이 CJ제일제당에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것으로 보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쿠팡과 거래를 중단한 대신 네이버쇼핑이나 11번가, G마켓 등 다른 e커머스 플랫폼과 할인전을 진행하며 이른바 '반쿠팡 연대'를 형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C커머스 플랫폼인 알리익스프레스의 한국상품 전문관인 '케이베뉴(K-Venue)'에도 입점해 주요 상품을 할인 판매했다. 초저가를 무기로 삼는 알리는 쿠팡의 최대 위협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공정위가 '쿠팡 랭킹순' 검색 순위를 조작해 소비자의 PB 상품 구매를 유도한 쿠팡에 최종 162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지난해 창립 이래 최초로 연간 기준 영업이익을 기록했던 쿠팡은 올해 2분기 2500만달러(약 34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쿠팡이 분기 기준으로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은 2022년 3분기 영업흑자를 낸 이후 8개 분기 만이다. 쿠팡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1500만달러(약 205억원)인데, 지난해 상반기 쿠팡의 영업이익이 2억5440만달러(약 3470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 규모는 94% 급감한 것으로 추산된다.
쿠팡 측은 올해 초 인수한 파페치의 영업손실 424억원(약 3100만달러)과 공정위 과징금이 반영되면서 영업손실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와우 멤버십의 기존 회원 월 회비를 이달부터 4990원에서 7890원으로 58.1% 인상하면서 일부 회원들이 이탈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CJ제일제당의 상황도 녹록지는 않다. 만두와 떡볶이, 김치 등 K-푸드를 앞세워 해외에서 판매량이 늘고 있으나 경기 침체 여파로 내수에서는 고전하고 있어서다. 올해 2분기 식품사업부문은 국내 판매량 위축으로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4.8% 감소한 1359억원, 매출은 1% 줄어든 2조7051억원을 기록했다.
이 같은 현실을 고려할 때 두 회사 모두 식품 제조와 유통 영역에서 영향력이 큰 상대방을 배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CJ제일제당과 쿠팡은 "양 사가 거래를 중단한 이후로도 비즈니스 관점에서 소통과 협상은 지속해왔다"며 "협업을 재개하는 것은 소비자 편의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식품 제조사와 e커머스 1위 업체가 납품가를 둘러싸고 협상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힘겨루기를 했으나 양측 모두 비즈니스 측면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황"이라며 "CJ제일제당은 소비자 만족도나 영향력에서 쿠팡을 대체할 만한 플랫폼이 마땅치 않고, 쿠팡도 공정위 제재 등에 따른 위기감으로 이전보다 태도가 유연해지면서 양측이 거래를 재개할 명분이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쿠팡이 CJ제일제당과의 거래를 다시 시작하면서 뷰티, 택배 사업을 둘러싸고 또 다른 갈등을 빚어온 CJ올리브영, CJ대한통운 등 CJ그룹 계열사들과도 관계 개선에 나설지 주목된다. 앞서 쿠팡은 LG생활건강과도 납품가 문제로 상품 직거래를 중단했다가 4년9개월 만인 지난 1월 중순부터 거래를 재개했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이명환 기자 lifehw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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