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전기차 지하충전인데…" 학교 초긴장, 인천은 지상화 추진
지난해 학교 지상 주차장에 전기차 충전 시설을 설치한 인천 A고교 교장은 300만원을 들여 소방 점검을 했다. 청라국제도시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를 보면서 학교에서도 대비를 철저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학교 교장들과 ‘지하 충전 시설은 지상으로 올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눴다“며 “이번 점검으로 소방 센서와 시설을 수리했고 학생들 대피 교육도 강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충전 시설 의무지만…“어디다 놓을지부터가 걱정”
최근 인천의 한 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한 이후로 교육청과 일선 학교도 긴장하고 있다. 지난 2022년 시행된 친환경자동차법 등에 따르면 주차 면수가 50면 이상인 공중이용시설에는 친환경 차량 충전 시설을 갖춰야 한다. 숙박·문화·의료 시설뿐 아니라 학교나 유치원 같은 교육기관에도 적용된다.
서울의 한 중학교 행정실장은 “우리 학교는 충전소가 지하주차장에 있다 보니 학생들도 그 존재를 잘 몰랐지만,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아져 2학기 개학을 하면 관련 민원이 들어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경기도 파주시 한 초등학교 교장은 “학교 건물과 전기차 충전소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안전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 학교에 충전소를 설치한 수도권의 한 고교 교장은 “건물과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충전소를 설치하려 했지만 전기를 먼 곳에서 끌어오는만큼 비용이 늘어난다고 해 포기했다”고 했다.
일부 학교에선 ‘전기차 포비아(공포)’로 진통을 겪기도 했다. 지난 4월 경기 안양시 호성중학교 앞에 한 운수업체가 전기버스 충전소를 지으려고 했지만, 학부모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학부모 “충전소 반대”, 교육감도 “설치 중단하겠다”
우려가 커지자 교육청에서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인천광역시교육청 관계자는 “일부 지하 주차장에 있는 충전기들을 지상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최근 “학생 안전에 대한 조금의 우려도 없어질 때까지 학교 내 전기차 충전소 설치를 중단하겠다”며 “학교 내 전기차충전소 설치 의무는 지금 현실에 맞지 않는 제도”라고 말했다.
학교복합시설 사업을 추진 중인 교육부도 선제적으로 진화에 나섰다. 학교복합시설 사업은 학생과 지역주민이 함께 이용하는 주차장, 수영장, 도서관 등을 확산·지원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올 초부터 산업통상자원부에 문의해 학내 충전소 설치는 2년 유예할 수 있다는 공문을 현장에 배포했다”고 설명했다.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전용주차구역 및 충전시설을 올해 1월 27일까지 설치해야 하지만, 지자체장의 승인을 받아 2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서울·경기 설치율 10% 안팎…‘님비’ 지적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학내 충전소 설치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확산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지역 교육청 관계자는 “학교들은 충전소 설치를 선호하지 않는다. 환경부 지원금을 받아 급속 충전기를 설치하면 외부인에게 개방해야 하고, (천천히 충전되는) 완속 충전기를 설치하면 교직원도 이용을 안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교육청 관내 충전소 의무 설치 대상 학교는 611곳이지만 이 중 69곳(11.29%)만 충전소가 설치된 상황이다. 경기도도 설치율이 8.72%(929곳 중 81곳)에 그쳤다. 그나마 교육청 예산이 투입된 인천의 설치 비율이 51.7%(574곳 중 297곳)까지 올라온 상황이다. 경기도의회 안광률 민주당 의원은 “교내에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하는 것을 두고 교통사고, 화재·감전사고, 외부인 출입에 따른 안전사고에 관한 학교 구성원들의 우려가 크다”며 전기차 충전시설 의무 대상에서 학교를 제외하는 조례를 발의했다.
반면 한국전기자동차협회장을 맡은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 출입과 주차를 둘러싼 ‘전기차 포비아’, ‘전기차 님비(NIMBY)’ 현상은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서지원·최민지 기자 seo.jiwo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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