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걷은 엄마들… 꿈틀대는 창작욕구에 생명을 불어넣다
2018년 일단의 화가들이 전시 초대를 받아 미국 서부의 한 도시에 여행을 갔다. 이들은 자폐, 다운증후군 등 신경다양성(발달장애) 증상이 있는 장애 청년 작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말이 초대이지 자비 전시 여행이었다. 청년이 된 자녀를 동반해 함께 여행하며 지내던 엄마들 사이에서 누구 먼저랄 것도 없이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각자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하지 말고 함께 뭐라도 해요! 백지장도 맞들면 낫잖아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최초로 승인을 받은 미술 부문 사회적 협동조합 아르브뤼코리아(Artbrutkorea)는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2019년 9월의 일이었다. 답답한 엄마들이 미술기획자를 자처한 것이다. 현재 권세진 금채민 김기정 박태현 정도운 조영배 최명은 손제형 신의현 등 총 9명이 소속 작가로 활동한다. 23세 최명은부터 35세 손제형까지 20~30대로 구성돼 있다.
아직 매출이 충분하지 않아 엄마들이 분담해서 일을 하는 구조다. ‘장애예술가 엄마들의 품앗이 기획 공동체’라고나 할까. 자녀인 장애 작가들의 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부모 사후에도 이들이 사회적 참여, 경제적 자립을 이룰 수 있는 시스템을 도모하는 것이 활동 목표다. 월 1회 정기 모임을 가지며 전시회 개최, 아트페어 참가, 아트상품화, 해외 전시 교류 등 다양한 일을 해왔다. 지금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사회적 기업 진흥원에서 지원하는 소셜 캠퍼스온에 입주기업으로 선정되어 사무실도 두고 있다.
최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아르브뤼코리아 회원들을 만났다. 제2대 정경숙 이사장(김기정 작가 어머니)를 비롯해 송원숙(금채민), 현 제3대 이사장 고유경(정도운)씨 등이 나왔다. 금채민 작가도 함께했다. 두 시간 인터뷰 동안 금채민 작가는 혼자 잘 놀았다.
정 전 이사장은 “4년여 헤맨 끝에 이제는 자리를 잡은 것 같다. 혼자 하지 않고 일을 나눠 한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2019년 11월 창립 기념전을 가진 이후 매년 정기전을 한다. 또 장애예술가 대상 각종 시상제도와 공공기관의 전시 공모에 응모한다. 외부 초대전도 적극 참여한다. 올해도 지난 1월 강릉 ’2024 강원 동계청소년동계올림픽대회’ 전시에 초대 받았고, 김근태기념도서관과 기획전도 공동 주최해 현재 진행 중이다. 연초에는 대구대학교 특수교육 130주년 기념 특별전에도 참가했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발달장애 예술가 지원 복지기관 세인트매들린소피센터와 전시 교류 사업도 2021년부터 정례적으로 하고 있다.
고 이사장은 “ 올해 5월 비장애아트페어인 서울아트페어에 나가는 성과를 거뒀다. 발달장애 작가 작품이라고 알리지 않았는데도 10점이나 작품이 팔렸다”며 흐뭇해했다. 금채민 작가 어머니 송원숙씨는 “일반(비장애) 작가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희망을 봤다”고 거들었다.
아트 상품화도 노력을 기울이는 분야다. 소속 작가들의 작품을 활용해 여행용 캐리어, 텀블러, 에코 가방, 소화기 등 다양한 아트 상품을 만들었다. 2020년 소화기 제조회사인 대동소방과 함께 제작한 가정용 및 차량용 소화기는 장애인고용공단이 공단 기숙사에 하나씩 설치하도록 주선해준 덕분에 2000만원 정도의 판매 수입을 올렸다. 실적은 저조하지만 작품 대여 사업도 한다.
“뭉치지 않았다면 이런 일들이 가능했겠어요? 도운이가 혼자 활동하면 결코 초대 받지 못할 전시를 아르브뤼코리아라는 단체 이름으로 불려나갑니다. 기업도 혼자일 때는 관심을 갖지 않지만 여러 명이 함께 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이니까 뭐라도 도와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고 이사장)
“뭉치지 않았다면 서로 비교하고 경쟁만 했을 거예요. 그런데 같이하니까 그런 경쟁심이 희석돼 좋아요. 금채민이 상을 못 받고 김기정이 상을 받아도 축하해주게 되더라고요. 아르브뤼코리아가 상을 받은 거니까요. 공동체 의식이 생긴 게 가장 큰 수확입니다.”(송원숙씨)
예상하지 못했던 수확도 거뒀다. 신경다양성 작가들은 모이면 상대방에 관심이 없다. 서로 소 닭 보듯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사회적 협동조합을 처음 하면서 작가들에게 친구가 생긴다는 생각은 전혀 안 했어요. 우리 애들은 친구를 못 사귄다고 단정 지었거든요. 그런데 몇 년을 같이 모여서 밥도 먹고 하니까 동료가 되고 친구가 되더라고요. 누가 결석하면 ‘어, 누구 안 왔네’하며 서로의 존재를 느껴요. 희한하게 대화는 안 하는데, 카톡은 주고받는 친구 사이가 됐어요.” (송원숙씨)
장애예술이 주목받는 것은 자폐 등 이들이 가진 특성이 비장애 예술가들이 갖지 못한 장점이 됨으로써 미술에 새로움을 불러일으킬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래서 미술 전문가가 아닌 학부모의 개입이 창의성에 끼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아르브뤼코리아 엄마들도 시행착오 끝에 이제는 안다.
“발달장애라 기획력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도움을 주고 싶었죠. 하지만 비전문가로서 뭔가 푸쉬(강압)를 하거나 개입했을 때 오히려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왔어요.”(정 전 이사장)
“‘여기에 저 색보다는 이 색이 낫지 않아?’라고 하면 그대로 따라주었죠. 그런데 내가 그런 말을 하지 않을 때 더 좋은 작품이 나오더라고요. 각자의 색감이 있는데 제가 개입하면 그림에 생명력이 없어지는 느낌이랄까….”(송원숙씨)
그래서 엄마들끼리 도출한 원칙이 절대 자녀들의 작품 활동에 개입하지 말자는 거다. 그러면서 작품에 영감을 받을 수 있게끔 동물원, 자동차 회사 등 다양한 곳을 섭외해 가급적 경험의 폭을 넓혀주려 한다.
신경다양성 자녀들을 돌보는 것은 쉽지 않다. 특정 주파수에 민감해 우리가 듣지 못하는 소리까지 듣는 작가도 있다. 비상한 기억력과 집중력이 있지만 타협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그릇에 담긴 음식은 절대 먹지 않기도 한다. 이유를 몰라 답답하다. 일상의 루틴에도 민감해 일요일 동물원 방문 일정이 있으면 소낙비가 쏟아져도 가야 한다. 그런 작가들을 돌보며 엄마들의 열정으로 여기까지 왔다.
아르브뤼코리아는 더 도약하고자 한다. 고 이사장은 “우리 힘만으로 활동하는데 한계가 있어 큰 단체나 기관과 협력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밀알복지재단과 양해각서(MOU)를 맺은 것이 그런 사례다.
부산에도 발달장애 작가들의 엄마들이 나선 블루아트가 있다. 블루아트는 한국자폐인사랑협회 부산지부 산하 문화예술팀으로 2020년에 발족했다. 작품 제작과 공모, 전시 등을 통한 회원 상호간 교류 증진을 목표로 한다. 국민일보 주최 제1회 아르브뤼미술상 최우수상 윤진석, 신현채 작가가 여기 소속이다. 경기도 군포에도 비슷한 성격의 로아트(Raw Art)가 있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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