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다리 온통 핑크색으로…하루만에 훼손된 伊 '올림픽 영웅' 벽화

에고누 벽화 훼손되기 전(왼쪽)과 후(오른쪽). 사진 이탈리아 안사(ANSA) 통신 캡처(연합뉴스)

2024 파리올림픽에서 이탈리아 여자배구팀을 우승으로 이끈 나이지리아계 간판 공격수 파올라 에고누(25)를 그린 벽화가 공개된 지 하루 만에 훼손됐다.

1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일간지 일메사제로는 로마에 있는 이탈리아 올림픽위원회(CONI) 본부 외벽에 그려진 에고누의 벽화가 훼손된 사진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에고누의 검은색 피부를 분홍색 스프레이로 누군가 덧칠한 듯한 모습이 담겼다.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여자배구 결승전이 끝난 뒤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이탈리아의 파올라 에고누가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탈리아에서 나이지리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에고누는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이탈리아에 사상 첫 배구 올림픽 금메달을 안겨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는 지난 11일에 열린 여자배구 결승에서 ‘디펜딩 챔피언(직전 우승팀)’인 미국을 상대로 양 팀 최다인 22점을 터트리고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라이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길거리 화가는 에고누 활약을 기리는 이 벽화 제목을 ‘이탈리아다움’으로 명했다. 에고누의 검은 피부색을 문제 삼는 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담기 위해서다. 라이카는 “인종차별, 증오, 외국인 혐오·무시를 멈추라”고 쓰기도 했다.

2015년부터 이탈리아 여자배구 대표팀의 간판 공격수로 활약한 에고누는 극우의 인종차별 때문에 그간 적지 않은 마음고생을 했다. 로베르토 반나치 유럽의회 의원은 육군 소장이었던 지난해 발간한 에세이 『거꾸로 뒤집힌 세상』에서 “에고누의 신체적 특징은 이탈리아다움을 대표하지 않는다”라며 흑인이 이탈리아 국가대표가 된 점을 문제 삼았다. 에고누는 반나치 당시 소장을 고소하기도 했다.

2022년에는 국제배구연맹(FIVB) 세계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이탈리아가 브라질에 패해 결승 진출에 실패한 뒤 SNS를 통해 에고누에게 인종차별적 메시지가 쏟아지자 참다못한 그가 대표팀 잠정 은퇴를 선언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마리오 드라기 총리 등 각계에서 에고누를 향한 응원 메시지가 쏟아지자 에고누는 마음을 돌리고 국가대표 유니폼을 다시 입었다. 에고누는 지난해 연예 전문지 베니티페어이탈리아와 인터뷰에서 “흑인 피부를 가진 아이를 낳는다면 내가 겪은 모든 고초를 겪게 될 것”이라며 “또한 혼혈아를 낳는다면 백인은 너무 흑인 같다고 할 것이고, 흑인은 너무 백인 같다고 할 텐데 아이를 불행에 빠뜨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