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욱 칼럼] 명분도 감동도 없는 광복절 특사

고승욱 2024. 8. 14.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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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상 대통령 고유권한이나 사법부 판단 뒤집기 논란 많아
트럼프 뜬금없는 이벤트 물론 카터 국론통합 사면 비판받아
고민 없이 습관적으로 결정해 공감 없어 필요성 의문만 남아

사면은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논란거리다. 국가원수의 헌법상 통치 행위로 민주적 정통성은 있지만 사법 시스템에 의해 확정된 결과를 뒤집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나라나 사면이 실시되면 ‘버리지 못한 유산’ ‘봉건적 권력 행사’ ‘법치주의 훼손’이라는 비판이 예외 없이 쏟아진다. 잘못된 역사를 극복해 화해와 통합을 이루거나 비인간적인 법의 기계적 적용으로 가혹한 처벌을 받은 사람을 구제하는 등 명분이 확실한 사면도 이 비판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은 ‘대통령은 탄핵 사건을 제외한 모든 연방 범죄를 사면할 권한이 있다’는 헌법 조항에 따라 대통령에게 광범위한 사면권을 부여한 나라다. 하지만 시대정신을 반영한 사면조차 두고두고 말이 많다. 1977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베트남전 징집 회피자에게 실시한 대규모 사면이 대표적이다. 당시 징집을 피해 기소된 젊은이는 20만명이 넘었다. 숨거나 외국으로 도망간 기소대상자도 36만명에 달했다. 카터는 반전 시위 속에 갈라진 국론을 통합하고 전쟁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그러나 “국가의 부름에 응해 숨진 사람은 뭐냐”는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대통령이 징집 회피를 합리화했다는 논란은 선거 때마다 되살아났고, 아직도 진행형이다. 세계 경영을 위해 전쟁을 불사하는 미국에서 징집 회피는 좀처럼 용인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명분조차 찾을 수 없는 사면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날 이복동생의 마약밀매 범죄와 자신의 이름을 딴 도서관에 전 부인 명의로 거액을 기부한 사업가를 사면했다. 역대 대통령이 친척이나 선거를 도운 지인을 사면한 사례는 적지 않다. 심지어 뜬금없는 정치공학적 사면도 벌어진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첫 흑인 헤비급 권투 챔피언 잭 존슨을 사후 사면했다. 존슨이 1913년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사실은 2004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용서할 수 없는 흑인’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2015년 의회가 존슨에 대한 사면 결의안을 통과시켰을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법 오류를 바로잡으라는 여론이 높았지만 첫 흑인 대통령이 흑인의 영웅을 사면하는 정치적 부담이 컸다. 트럼프는 이를 이용했다. 백인우월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은 그였지만 오바마의 딜레마를 부각시키기 위해 흑인 영웅을 갑자기 사면하는 이벤트를 마다하지 않았다.

사면이 논란이 되는 나라에서 우리도 결코 빠지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대상자가 터무니없이 많다는 것이다. 제멋대로라는 트럼프가 4년 동안 237명, 2차대전 이후 가장 많다는 오바마가 8년 동안 1927명인데 우리 대통령들은 매년 5000명 안팎의 각종 사범을 특별사면한다. ‘광복절 특사’ ‘설 특사’ 등의 이름 아래 사법부의 판단을 바꾼 경우가 정부 수립 이후 30만명이 넘는다. 이렇게 대상자가 많은 이유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권력을 가진 소수의 특정인을 사면하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경제 살리기를 앞세워 추진된 사면자 명단에는 영세 상공인 수천명과 대기업 총수 서너명이 함께 들어있다. 국민통합을 위해 서민생계형 형사범과 불우한 수형자 수천명을 사면하면서 부정한 돈을 받았거나 선거의 규칙을 어긴 정치인들이 빠지지 않았다. 이것이 수십년 동안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별다른 고민 없이 습관적으로 실시한 특사사면의 민낯이다.

어제 발표된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자는 1219명이다. 1977년 카터의 사면처럼 과거의 특정 범죄에 대한 일괄적 사면이 아닌데도 1000명이 넘었다. 명분은 사회 통합의 기회를 마련하고 경제성장에 기여할 토대를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무슨 죄를 저질렀고, 얼마나 뉘우쳤기에 그런 혜택을 받았는지 일반 국민은 알지 못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수사를 지휘해 유죄가 확정된 국정농단 사건의 주역들을 사면하는 것이 사회통합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게다가 이번에는 대법원의 판단을 결코 인정하지 않은 채 자신에 대한 사면에 거부 의사를 밝혔던 김경수 전 경남지사에 대한 복권까지 포함됐다. 이것이 트럼프가 했던 정치공학적 사면과 어떻게 다른지 좀처럼 가늠할 수 없다. 이런 사면이 왜 필요한지 의문만 남을 뿐이다.

고승욱 수석논설위원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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