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평생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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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식사권공짜 맥주와 지하철 이용권주고 받는 양쪽 눈치게임 같아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공쿠르상은 꽤 소박하다.
공쿠르상에는 독특한 게 또 있는데, 그건 바로 심사위원에게 파리 중심가에 위치한 이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평생 공짜로 식사할 권리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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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맥주와 지하철 이용권…
주고 받는 양쪽 눈치게임 같아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공쿠르상은 꽤 소박하다. 노벨상이나 부커상과는 달리 시상식을 파리 2구에 있는 ‘드루앙’이라는 식당에서 치른다. 물론 ‘드루앙’이라는 레스토랑은 유서 깊다. 19세기 후반에 개업해 미슐랭가이드로부터 1988년에는 1스타, 2005년에는 2스타를 받았고, 후에는 미슐랭 3스타 셰프가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이 레스토랑에는 ‘살롱 공쿠르’라는 고풍스러운 방이 있는데,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달려 있고 벽은 결 좋은 나무로 장식돼 있다. 테이블에는 내 마음처럼 깨끗한 순백의 식탁보도 깔려 있다. 이 방에 심사위원이 모여 식사 후에 예비 심사도 하고 수상작 최종 결정도 한다. 시상식도 이 레스토랑에서 하니 실로 프랑스적이다.
공쿠르상에는 독특한 게 또 있는데, 그건 바로 심사위원에게 파리 중심가에 위치한 이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평생 공짜로 식사할 권리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 10명의 심사위원은 종신제로 선정된다. 그러니 매년 새로운 심사위원이 뽑혀 해마다 평생 공짜로 밥을 먹을 이들이 열 명씩 늘어나는 구조는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어느 날 심사위원들이 ‘다음 주에 우리 드루앙에서 단체 회식합시다’라고 결의라도 해버린다면 그날 레스토랑 장사는 공치게 되는 셈이다. 어쨌든 이 소식을 들으니 궁금해졌다. 혹시 심사위원 중에 대식가가 있지는 않을까. 프랑스인은 와인과 음식의 조화를 ‘마리아주(mariage)’, 즉 ‘결혼’이라 칭할 만큼 중시하는데 설마 와인만 공짜 혜택에서 쏙 빼놓는 건 아닐까 하고.
어쨌든 프렌치 레스토랑에는 고급 와인이 즐비하다(어떤 건 수백만원을 넘는다). 그렇다고 3세기에 걸쳐 영업 중인 레스토랑에서 심사위원에게 식사는 평생 무료로 제공하면서 와인은 ‘한 끼에 한 잔!’ 이런 식으로 제공하기엔 너무 박하다. 또 노파심에 ‘와인은 한 병 제공’이라고 문서화하기엔 너무 구차하다. 어쩌면 그 문서가 족쇄가 돼 로마네 콩티 같은 걸 한 병 주문한 후에 ‘이봐. 여기에 문서가 있다고!’ 하는 일이라도 생기면 오히려 곤란하다. 그러니 평생 무료 혜택은 어찌 보면 주는 쪽과 받는 쪽이 평생에 걸쳐 펼치는 눈치 게임 같다.
그럼에도 평생 무료이용 혜택을 받은 이는 꽤 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2002년 4강 신화 후 조선호텔에서 평생 맥주 제공을, 태극전사는 무슨 영문인지 포털사이트 다음으로부터 평생 100MB 용량의 프리미엄 이메일 서비스를 선물받았다(상기하자면 22년 전).
대만에도 이런 사례는 있는데, 지난 6월 타이중시의 지하철에서 칼부림 난동이 일어났다. 범인을 제압한 시민 9명이 각각 공헌도에 따라 포상금으로 500~2만 대만달러(약 2만~84만원)를 받았다. 이 중 화제가 된 인물이 있는데, 그는 범인이 휘두른 흉기에 광대뼈가 부러지고 얼굴에는 9㎝에 이르는 상처가 난 장발의 사내였다. 이 청년에게 타이중시는 지하철 평생 무료이용권을 선사했다. 목숨을 건 값치고는 박하다. 그럼에도 그는 시상식에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힘멜이라면 이렇게 했을 거니까요.” 힘멜? 아니, 힘멜이 대체 누구길래? 취재진의 질문에 일본 게임의 코스프레 의상을 입고 나온 그는 첨언했다. 힘멜은 자신이 사랑하는 판타지 만화 ‘장송의 프리렌’에 등장하는 숭고한 용사라고. 힘멜은 늘 어려움에 처한 이를 돕는다고. 지하철 영웅의 첫 대답은 그가 빠져 있는 만화 속 대사였다. 작품 속에서 인물들은 헌신적 행동을 한 후 늘 이렇게 말했다. “힘멜이라면 그렇게 했을 거니까.”
한 작가의 대사가 칼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게 한 것이다. 얼굴에 긴 상처가 날지언정 자신이 사랑하는 캐릭터처럼 위험에 맞설 용기를 준 것이다. 이러니 대사 쓰는 게 어려울 수밖에! 기사를 접한 후부터 못 쓰던 대사를 더 못 쓰게 됐다. 그래서 말인데, 힘멜이라면 대사를 어떻게 썼을까.
최민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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