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세상 덕분에

2024. 8. 14. 00:34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아름다움에 관해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오색영롱한 보석처럼 시리게 빛나는 인상들이 삶의 길목을 비출 때, 내어준 것보다 얻은 것이 많아 인생 전체를 온 세상에 신세 지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아름다움에 관해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열다섯 살 시집올 적 받았다는 할머니의 은비녀, 청년기에 맞잡은 손으로 노년의 길을 함께 걷는 부부의 뒷모습, 노을에 감긴 대청호의 먹먹한 정취, 거뭇하게 때 탄 조각도가 나뒹구는 작업대, 꽃부리에 파고드는 뒤영벌의 야무진 날갯짓, 마당에 널어놓은 이불에 밴 햇볕 냄새 같은 것들이다. 그 언젠가 어디선가로부터 선물처럼 다가온 순간을 알아보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렸지만 뒤늦게라도 알아볼 수 있어 다행이다. 만약 모른 채 지나쳤다면 살아갈 날들이 암전된 도시의 밤처럼 적막했을 테니.

오색영롱한 보석처럼 시리게 빛나는 인상들이 삶의 길목을 비출 때, 내어준 것보다 얻은 것이 많아 인생 전체를 온 세상에 신세 지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태어날 적 부모가 지어준 몸을 입고,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행운과 역경의 미덕으로, 선인이 남긴 지혜와 영혼을 담은 음악 그리고 무언의 자연이 벗이 되어 준 덕분에 나는 살 수 있었다. 비록 구김살 많은 어른으로 자랐어도 인생의 아름다움에 관해 생각할 수 있으니 대체 이 신세를 어찌 다 갚을 수 있을지, 마음이 울컥해 가는 숨이 흘러나온다.

인생의 9할은 극적인 강렬함이 아니라 일상의 평범함으로 채워지지만 감사하게도 아름다움은 평범함을 가장한 채 지천으로 널려 있다. 세상이 값진 것을 내어주는 때는 우리가 그것을 알아볼 때이므로 가볍게 눈을 떠 바라보기를. 인생도 덩달아 고운 물이 들 것이다. 오늘 나는 갓 지은 잡곡밥을 먹고 깨끗한 물을 마셨으며 정갈한 보도블록을 밟고 저무는 해와 풀벌레 소리, 볼에 닿는 미지근한 바람을 누렸다. 오늘 하루 품에 안은 아름다움도 모두 세상 덕분이다. 살아가면서 자꾸만 세상에 신세를 지고야 말기에, 마지막 남은 하루에는 꼭 ‘덕분에 잘 있다 갑니다’ 웃으며 인사하고 싶다. 내 인생이 아름다운 건 오로지 이 세상 덕분이니.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