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의 시시각각] 윤 정권에서 단명하는 참모들

고정애 2024. 8. 14.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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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대리

10여 년 전 ‘형님, 쓴소리 마요’란 글을 쓴 적이 있다. 당시 노무현 청와대 출신 의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가까운 의원에게 했다는 조언이다. 대통령 측근인데 대통령에게 쓴소리 말라니, 기억에 오래 남았다. 그중 한 당사자인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최근 통화에서 이런 의미라고 설명했다.

“건의하지 말라는 뜻보다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이 ‘이 말은 해야지’ 하며 얘기(쓴소리)를 많이 해서 (대통령 입장에선) 서너 번 이상 들은 셈이 되니 참모까지 말하면 속에 거부감이 있는 상태에서 듣게 돼, 그걸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떠오르는 인터뷰가 있다. 2021년 2월의 전윤철 전 경제부총리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멀 수 없는 사이로 문 대통령을 “호인”이라고 칭했다. 그런데 기자가 “최근에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나”라고 묻자 그는 2019년 4월이라고 했다.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은 상충한다고 얘기했고, 문 전 대통령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년간 만남이 없었던 게 이해됐다.

「 후반일수록 민심 아는 참모 필요
공교롭게 합리적 참모들이 단명
쓴소리 꺼리는 심리 때문 아닌가

사실 쓴소리, 참 어려운 거다. 장삼이사도 싫어하는데 대통령이야 오죽하겠나. 한 정치권 인사가 “모든 리더는 싫은 소리 하는 걸 싫어한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그리하여 쓴소리는 대통령 주변에도, 대통령에게도 숙제다. 대통령 눈 밖에 나지 않으면서 잘 말하는 기예가 참모들의 숙제라면, 제대로 쓴소리할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대통령의 숙제다.

마키아벨리가 500년 전 고민했던 주제다. 『군주론』에 아예 한 장(‘아첨꾼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을 할애했다. 인간이 아첨이란 질병에 빠지기 쉬운데, 그러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진실을 듣더라도 결코 화내지 않는다는 걸 널리 알리는 것이다. 허나 누구나 당신 앞에서 솔직하게 말하게 둬선 존경심이 생길 리 만무다. 따라서 군주라면 제3의 길을 찾아야 하고, 그건 사려 깊은 사람들을 선임해 모든 일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란 주장이다. 마키아벨리는 그러곤 이렇게 말했다. “(군주는) 조언자들의 말이 솔직하면 할수록 더욱더 그들의 말이 더 잘 받아들여진다고 믿게끔 처신해야 한다. 항상 조언을 들어야 하지만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누군가 조언하려 한다면 저지해야 한다. 누군가 무슨 이유에서건 침묵을 지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는 노여움을 표시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퇴임 대법관 훈장 수여식에 입장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도입부가 길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안보진 개편을 두고 김용현 국방장관 후보자의 발탁을 위한 연쇄이동이라거나, 북·러 조약 체결을 예상하지 못한 후과란 식의 해석이 나오는 걸 봤다.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실의 설명에도, 발탁 7개월여 만에 국가안보실장을 특보로 보낸 걸 선의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실력 있고 합리적 사고를 하는 인사라고 들어서다.

공교롭게 윤 대통령 옆에서 단명하는 이들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란 세평을 듣는 사람들이다. 이른바 시중의 목소리를 전한 통로였다. 반면에 장수하는 이들은 윤 대통령과 공명하는 쪽이다. 윤 대통령이 논쟁에 휩싸일 때마다 “왜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느냐”고 하는 심리와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

이런 인적 배치라면 윤 대통령은 인지적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정치적 곤란함마저 피할 수 있을진 모르겠다. 대통령 초기엔 무엇이든 이해받지만 후반기로 갈수록 무엇이든 오해받기 때문이다. 사실상 대통령에게 별다른 귀책사유가 없는 독립기념관장 인선이 쟁점화되는 과정을 보라. 후반기 권력에 인지적 편안함은 사치재다. 갈수록 달아나는 민심과의 거리를 관리하려면 그나마 민심을 이해하는 참모들이 절실하다. 이견은 필연이고 이견이 능력이다. 그게 불충은 아닌 거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달리 여기는 듯하다. 불행한 일이다.

오늘 윤 대통령을 예로 들었지만 윤 대통령 얘기만은 아니다. 쓴소리 듣는 게 공력이 필요한 일인데 현 정치권엔 그런 공력의 소유자가 희귀하다.

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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