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목표는 자본주의 끝판왕이다…美대통령도 만난 탈북 이현서 [안혜리의 인생]
자산운용사 설립한 탈북자 이현서 대표 인터뷰
" 창문도 없이 그 좁은 공간에 갇혀 웅크린 채 빠른 속도로 돈을 세다니, 정말 불쌍하구나. " " 지난 2010년 탈북 1년 만에 가까스로 자본주의 한국 땅에 도착한 엄마(68·당시 54세)는 현금인출기(ATM)를 처음 보고 얼어붙었다. 은행은커녕 미국 달러만 취급하는 북한 백화점 앞의 환전상 말고는 현금 거래 경험이 없는 엄마로선 돈 나오는 기계는 직접 보고도 믿기 어려웠다. 한국 온 지 벌써 14년이 흘렀지만 엄마는 아직도 현금을 집에 보관한다. 자본주의 적응이 어려운 다른 많은 탈북자처럼.
그런 엄마의 딸인 이현서(44)씨가 지난 2021년 한국에서 공모주 펀드 위주 투자일임업을 하는 자산운용사(세븐 에셋)를 세웠다. 탈북자 출신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무원, 교수나 변호사, 혹은 북한 특기를 살린 외화벌이 외환딜러는 있었어도 자본주의 끝판왕인 자본시장 참여자는 찾기 어렵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퇴직금 1억원을 156억원으로 만든 '주식투자의 전설'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 눈에 든 것도 이런 이유다. 한 달 전쯤 두 사람이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친 후 강 회장은 주변에 이 대표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운 좋게 자본주의 시스템에 태어났으면서도 주변에 널린 보석(주식)을 놓쳐요. 근데 이 사람은 운 나쁘게 공산주의에 태어났는데, 한국에 와서 그 보석을 알아본 거예요. 그게 기특한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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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D 후 트럼프 등 각국 정상 만나
베스트셀러 작가 돼 고액 강사 활동
강연 스스로 접고 자본시장 공부
투자 전설 강방천 회장도 주목
할리우드 제작자와 영화화 논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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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폰 vs 공모주, 두 세계로 갈린 가족
"엄마는 숨이 쉬어져?"
증시가 폭락한 지난 5일 저녁밥을 먹으며 엄마한테 물었다. 2018년 이후 가장 심한 호흡 장애였다. 하지만 엄마는 영문 모르는 표정이었다. "숨이 왜 안 쉬어지니?"
며칠 중국 다녀온다고 압록강을 건넌 게 열일곱살 때(1997)다. 그 며칠이 예기치 않게 12년 넘는 가족과의 생이별이 됐고, 엄마·남동생과 나의 삶은 이렇게 완전히 달라졌다.
중국 선양에서 인신매매범 손에 넘어갈 뻔하던 위기에서 벗어나, 한식당에서 한 달에 딱 하루 쉬고 일하며 받은 월급 40달러(당시 350위안)를 악착같이 모았다. 오로지 북한 가족을 찾기 위해서였다. 중국인 브로커와 잘못 엮여 강간 위협 속에 일주일 감금당한 후 중국 삼촌에게 큰돈을 빌려 남동생과 겨우 3분 재회했다.
이후 내 삶에서 돈은 더 중요해졌다. 2002년 상하이로 옮겨 정신병 앓는 한국계 중국인 신분증을 산 덕분에 식당 종업원보다 네 배 많은 월급에 한국기업 통역으로 취직했다. 그 무렵 동생이 누군가의 휴대전화를 빌려 먼저 걸어온 전화가 또 삶을 뒤흔들었다. "국경에선 중국 통신망을 이용해 휴대전화를 쓸 수 있다"는 동생 말에 노키아 폰을 중국 지인을 통해 보냈다. 그렇게 고향인 국경 혜산을 떠난 지 5년 만에 엄마 목소리를 들었고, 이후 주말마다 통화했다. 어쩔 땐 한 번 통화에 300위안 넘게 나왔다.
저축은 오래 고생하며 미뤄놓은 안락함이었지만, 북한 사람들은 바깥세상에선 돈이 넘쳐난다고 생각했다. 또 불법에 둔감했다. 엄마는 가끔 "얼음(필로폰) 몇 킬로 있는데 혹시 팔아줄 사람 있니?"라고 물었다. "불법"이라고 화내면, 엄마는 "불법이 한둘이니" 했다. 필로폰이 관리들에게 줄 뇌물 등 돈 역할을 하는 어머니의 세계에선 살아남으려면 법을 지킬 수 없었다. 2009년 엄마가 탈북하자마자 중국 장백에서 만났을 때도 엄마는 "빙두(필로폰 결정) 가져올 걸" 할 정도였다.
내 세계는 달랐다. 중국 생활 경험도 컸지만, 원래 숫자에 밝았던 나는 2008년 한국 정착 후 일용직 대신 세무회계사 과정을 듣고 실무 회계 자격증을 땄다. 국가 장학금 받고 대학도 갔다. 그 뒤 2013년 탈북자의 첫 영어 강연으로 조회 수 수천만을 기록할 만큼 주목받은 TED 무대 이후 미국 에이전시 계약을 통해 거액의 강연료를 벌었고, 미국을 비롯해 44개국에서 출간된 내 책의 인세로만 지금도 매년 웬만한 직장인 연봉만큼 들어온다. 영어판만 100만 권 이상 팔렸고, 한국어판은 지난해 출간했다. 2017년 그렇게 모은 돈을 공모주 펀드에 투자했다. 처음 본 높은 수익률에 눈이 번쩍 뜨였다. 한국 온 지 10년 만에 진짜 자본주의 세계에 발을 디딘 거다.
북한이 끝내 찾아낸 진짜 이름
원래 꿈은 정치였다. 미국 유력 출판사 하퍼콜린스에서 낸 책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라 미국·유럽뿐 아니라 호주·뉴질랜드·인도·멕시코 등 세계를 다니며 많으면 한 달에 열 번 이상 강연했다.
심지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중국 베이징에서 탈북자 중 처음으로 중국의 탈북자 강제 송환을 공개 비판하는 북 토크(2016)도 했다. 국정원은 "중국에서 실종되면 뒷감당 안 된다"며 만류했지만 중국에서 꼭 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막상 강연 후 파장이 너무 컸다. 일정 중 첫 행사만 한 뒤 도망치듯 공항에 가 1시간 뒤 서울로 떠나는 비행기 표를 샀다. 그리고선 출국 직전까지 화장실에 숨어 있었다. "고작 공항 화장실에 숨으려고 여기까지 왔나"라는 자괴감과 함께 "서울 하늘 아래서 엄마와 동생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은 불안이 교차했다. 그게 내가 직면한 현실이었다.
이런 활동 덕분인지 2018년 2월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문재인 정부 후 나빠진 탈북자 처우 문제 등을 얘기했다. 또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참석차 방한한 펜스 부통령도 만났다. 뭘 하고 싶냐고 묻기에 "하버드에서 정치와 인권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더니 한 달 뒤 추천서를 보내왔다. 하지만 결국 가지 않았다. 컬럼비아대학 유학 중이던 동생에 이어 나마저 떠나면 혼자 남을 엄마가 걱정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당시 상황을 오판했다.
2018년은 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해다. 통일까진 아니어도 남북 왕래는 가능할 거라 봤다. 남북 화해 국면에 한국에 있고 싶었다.
그 와중에 사건도 있었다. 2012년부터 세계 언론에 노출됐지만 워낙 신분을 잘 숨겨 북한이 그간 나를 못 찾아냈다. 다른 탈북자들을 향해선 북한 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가 실명으로 "성범죄자, 살인자"라고 비난했지만 나는 한국에서 쓰는 일곱 번째 가명 "이현서"로만 불렀다. 그때마다 혼자 박수 치며 "아직 내가 누군지 못 찾아냈네, 껄껄"하고 웃었다. 그런데 2018년 북한 사는 이모가 공포에 질려 "보위부가 찾아와 네가 공화국을 비방 중상한다는데 이젠 공화국에 도움되는 말만 하라더라"며 전화를 걸어왔다. 수용소에 끌려가지 않은 이모를 보고 한편으론 "내가 유명해서 가족을 지켰다"고 안심했지만 더 하면 가족이 위험하겠다 싶었다. 마침 어두웠던 과거 얘기를 반복하며 우울 증상까지 나타나 강연을 접었다.
이후 2020년 함께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던 꽃제비 출신 지성호 등과 함께 공천을 제안받았지만 단칼에 거절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다시 받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정권이 바뀌어도 똑같이 인재 없는 한국 정치에 대한 팬터지가 사라졌다.
동학개미운동에서 할리우드까지
내 인생의 중요한 사건 하나가 동학개미운동이다. 2017년 아는 운용사 대표가 권한 공모주 펀드로 생애 처음 자본시장에 발을 들인 후 기업공개(IPO) 시장을 직접 공부했고, 2020년 많은 개미를 공모주 시장으로 이끈 SK바이오팜의 기적을 목격하곤 회사를 차리기로 했다.
펀드 매니저 자격증 공부 시작과 동시에 멘붕이 왔다. 여신·수신 어쩌고 하는데 "여신? 예쁘다는 그 여신(女神)은 아닐 텐데 뭐지?" 이랬다. 공부 자체보다 단어 찾는 데 시간이 더 걸려 나중엔 무조건 외웠다. 나중에 與信·受信 한자를 보고 화가 났다. 처음부터 한자로 썼다면 이렇게 쉬운 걸…. 어쨌든 힘겹게 재수 끝에 자격증 따고 2021년 내 과거를 담은 '세븐 에셋'이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세웠다. 고객은 비록 소수지만 한국인들이다. 대다수 탈북자는 여전히 투자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
세븐 에셋은 한국인에겐 많고 많은 운용사 중 하나일 거다. 하지만 중국에서 10년 넘게 숨어 살다 한국 땅을 밟으며 "나는 북한 사람, 망명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당시 하루 150여명의 탈북자가 몰려들던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의 작은 관심조차 못 받은 탈북자로선 의미가 남다르다. 더욱이 서울 금천구 아파트와 매달 35만원의 보조금을 지원받다 불과 10여년 만에 자본주의의 꽃인 자산운용사 대표가 됐으니 하는 말이다.
처음 집을 받자마자 최대한 빨리 여기서 나가겠다고 마음먹었다. 기초생활수급자 삶에 안주하는 게 싫었다. 난 대학 장학금을 받고, 2년 뒤 정착한 어머니는 청소일로 생활비를 벌고, 여기에 주위 도움을 더해 몇 년 만에 목표를 이뤘다. 그리고 한창 강연 수입을 올리던 시기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살다 지금은 집과 회사 모두 판교로 옮겼다.
그사이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배우 벤 애플렉과 나란히 섰던 TED 강연을 도와준 위스콘신 출신 브라이언과의 결혼생활은 그가 자꾸 내 삶에 없는 "릴랙스"를 외치며 나의 "빨리 빨리"와 충돌한 탓에 2년(2015~16) 만에 짧게 마무리했다. 오래 무국적자로 살다 2008년 대한민국 여권을 받곤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이걸 지켰다. 다만 납치될 때를 대비해 미국 영주권은 갖고 있었는데 이마저도 지난해 자진 반납했다.
지난 2016년 뉴욕 구글 행사에서 만나 "뭘 해 줄 수 있을까"라고 물은 배우 로버트 드 니로의 호의 덕에 지난해 내가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탈북 다큐멘터리 '비욘드 유토피아'가 지난해 미국에서 개봉했다. 이제 마지막 바람이 있다면 내 얘기가 할리우드 영화로 만들어져 더 큰 파급효과를 내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6월 블록버스터 '엑스맨' 공동 제작자 제이슨 테일러가 방한해 나의 역경 극복과 가족애 스토리를 할리우드 상업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기적은 또 한 번 나를 찾아올까.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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