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2년 넘게 제자리걸음…‘오토바이 전면번호판’ 공약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영업용 오토바이에 대해 전면번호판(앞 번호판)을 단계적으로 도입해 부착토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코로나19 와중에 식음료 배달이 늘면서 과속과 신호 위반, 인도 주행 같은 배달 오토바이의 불법 주행이 급증했지만, 기존 무인단속카메라로는 단속이 어려운 데 따른 것이었다.
기존 무인단속카메라는 전면번호판만 인식이 가능한데, 오토바이는 자동차와 달리 뒤에만 번호판(후면번호판)을 달기 때문에 사실상 단속 사각지대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배달 오토바이 앞에도 번호판을 달면 기존 단속 카메라로 제한적이나마 단속이 된다. 여기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본다고 의식해 법규 위반을 삼가는 ‘명찰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
「 배달 늘며 사고 잦자 공약으로
국토부, 용역 거쳐 최근 공청회
앞 번호판 도입에 찬반 엇갈려
“시범도입 통해 효과 따져봐야”
」
시민단체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안실련)이 2022년 말 시민 559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2%가 전면번호판 부착에 찬성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초지종이 이렇다 보니 윤 대통령 취임 이후 배달 오토바이 전면번호판 도입이 속도를 내리란 기대가 적지 않았다.
후면번호판 시인성 개선엔 공감대
하지만 담당부처인 국토교통부는 1년 가까이 흐른 지난해 4월에서야 ‘이륜차 번호판 번호체계 및 디자인 개선 연구’라는 과제명으로 용역을 발주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과 홍익대가 수주했다. 그리고 1년 4개월이 더 지난 이달 7일 해당 용역 결과를 공개하고, 각계의 의견을 듣는 공청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선 먼저 후면번호판 개선 방안부터 발표됐다. 기초지자체 명칭에 문자·숫자까지 들어가 8~10자리로 복잡하게 구성된 표기 체계를 단순화하고, 번호판 크기도 주요 선진국 수준으로 확대하는 게 골자였다. 기존 번호판이 작은 데다 글자와 숫자도 많아 인식이 어렵다는 지적에 따라서다. 경찰청과 한국도로교통공단이 개발해 현재 일부 지역에서 운영 중인 후면번호판 단속 카메라의 정확도 향상에 도움될 것이란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전면번호판 도입의 타당성 검토 발표 땐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연구진은 ▶전면번호판 설치가 어려운 오토바이가 다수이고 ▶스티커형 번호판은 전면 곡률(휘어짐)로 인해 카메라 단속이 곤란하고 ▶후면번호판 개선으로 불법운행 방지 효과가 더 있을 것이라며 사실상 부정적 의견에 힘을 실었다.
용역 결과를 발표한 최동석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 센터장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후면번호판만 부착하고 있으며,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등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전면번호판을 사용하고 있다”며 “영국과 중국에선 전면번호판을 도입했다가 안전성 문제로 폐지했다”고 소개했다.
업계-시민단체 찬반양론 격돌
이어진 패널 토론에선 찬반양론이 격돌했다. 김영호 한국이륜자동차산업협회 부회장은 “후면번호판을 개선하고 보완하고자 하는 시점에 전면번호판을 도입하자는 건 시기적으로 아주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김한섭 혼다코리아 인증팀장도 “현행 번호판을 앞에 달면 주행 중에 발생하는 공기저항으로 인해 차량 조향에 영향을 줘 위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후면단속카메라를 개발한 한국도로교통공단의 인병철 책임은 “특정 용도의 오토바이만 앞 번호판을 달면 형평성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며 “후면카메라가 계속 보급될 테니 현재 체계를 유지해도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윤호 안실련 사무처장은 “전면번호판은 분명히 명찰효과 등이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며 “지금처럼 배달 오토바이로 인한 사고가 빈발하고 시민들의 불안감이 큰 상황에서는 안 된다고만 할 게 아니라 되는 방법부터 찾아봐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후면단속카메라가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단속 범위를 피해서 가거나 아예 카메라가 없는 이면도로로 돌아가면 무용지물이 된다”고 지적했다.
전면번호판을 부착하면 인도 주행 등 위반사항을 발견했을 때 시민들이 앞에서 직접 번호판을 촬영해 경찰에 신고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이 가능해 실효성이 있을 거란 주장도 나왔다. 또 후면단속카메라가 실질적인 효과를 나타낼 수준까지 보급되려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사이 시민 불편을 줄일 보완책은 딱히 없다는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현재 경찰이 운영하는 무인단속카메라는 전국적으로 1만대가 넘는다.
자가용-영업용 구분도 검토할 만
결국 이날 공청회는 후면번호판 개선에는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정작 관심을 모았던 전면번호판 도입과 관련해선 공방만 벌어졌을 뿐 진척은 없었다. 국토부는 용역 결과와 공청회 내용 등을 검토해 정책 방향을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실제론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전면번호판 관련 논의와 정책검토 과정에는 가장 중요한 게 빠져있다. 바로 명찰효과가 과연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적으로라도 검증한 적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사실 명찰효과 유무만 어느 정도 확인돼도 소모적인 논쟁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국토부가 주요 배달플랫폼, 대형 배달대행업체들과 논의해 전면번호판 시범사업을 서둘러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번호판 형태는 지금 같은 금속판이 아니라 스티커 형태 등 다양하게 적용해봐도 된다. 마침 전국배달라이더협회의 송기선 회장도 “전면번호판이 타당성이 있느냐 여부를 실증사업으로 알아봤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시범사업을 할 경우 효과를 높이기 위해 위반사항 발견 때 시민이 휴대전화 등으로 번호판을 촬영해 경찰에 신고하면 과태료 부과가 가능한 시스템도 마련해 함께 운영할 필요가 있다. 또 신고제인 오토바이 관리체계를 등록제로 바꿔 강화하고, 현재는 구분하지 않는 오토바이 용도를 자가용과 영업용으로 나눠 특성에 맞게 관리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사고와 시민 불편은 이어지고 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불륜은 과학입니다" 그 길로 빠지는 대화법 | 중앙일보
- 병원서 성폭행 후 살해된 인도 수련의…동료 의사들 무기한 파업 | 중앙일보
- "10살 아들 '사탕 뇌' 됐다"…MIT 교수 아빠의 충격 목격담 | 중앙일보
- 10년간 프랑스 절대 못 온다…올림픽경기장 나타난 남녀 충격 만행 | 중앙일보
- 태국서 40대 한국인 사망…현금 뿌리고 속옷만 입은 채 투신 | 중앙일보
- "태권도 金 박태준 우리 직원 아들이래"…6000만원 쏜 이 회사 | 중앙일보
- "검사비 3만원? 안 받을래"…코로나 재유행에 노인들 한숨 | 중앙일보
- 악플 고통받는 이혜원 보자 안정환 반응…"컴퓨터선 가위로 잘라" | 중앙일보
- '베드신 몸매 보정' 거부한 여배우, 이번엔 뱃살 당당히 드러냈다 | 중앙일보
- “전차 탔다가 65만원 뜯겼다” 폴란드 여행 중 생긴 일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