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원의 시선] 누가 안세영에게 돌을 던지랴

정제원 2024. 8. 14.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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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원 문화스포츠 디렉터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배드민턴 선수 안세영이 금메달을 딴 뒤 폭탄 발언을 했다. “내 승리의 원동력은 ‘분노’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스무 두살 젊은 선수가 이렇게 화가 난 것인가. 안세영은 대한배드민턴협회가 선수의 부상 관리를 소홀히 했다고 비난하면서 스스로 잔칫상을 뒤엎었다.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주로 젊은 세대는 “오죽했으면 안세영이 그렇게 화를 냈겠는가”라며 협회를 비난했다. 연세가 지긋한 축은 “다른 선수들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금메달을 따자마자 협회를 비난한 건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중립 기어를 넣고 양측의 말을 차분하게 들어보자는 부류도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여론의 양극화가 심해졌다. 안세영 선수의 발언을 놓고 확증 편향에 사로잡혀 우리 편만 옳다고 주장하는 이가 많아졌다.

「 고압적 ‘꼰대문화’에 대한 저격
‘돈타령’이라는 비난은 삼가야
올림픽의 포용 정신 돌아볼 때

안세영이 금메달을 따자마자 공식 기자회견에서 배드민턴협회를 비난한 건 바람직하지 못한 처사였다. 은메달을 딴 중국의 허빙자오와 동메달을 획득한 인도네시아의 툰중은 무슨 죄란 말인가. 기자회견장에서 안세영의 옆에 앉아 있던 이들은 난데없이 싸늘한 분위기를 접하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만 껌뻑거렸다. (허빙자오는 자신과의 준결승전을 앞두고 부상으로 기권한 스페인 선수를 위해 시상식에서 은메달과 함께 스페인 선수단의 배지를 함께 들어 보이는 스포츠맨십을 보여줬다.)

그렇다고 해서 안세영의 외침을 이기적인 생각에서 나온 철없는 행동으로 싸잡아 비난해선 곤란하다. 안세영의 분노를 비인기 종목 선수의 서러움 표출 정도로 이해하는 것도 지극히 단편적인 해석이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올림픽에서 활약한 동료 선수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는 올림픽이 끝난 뒤 이렇게 말했다.

“광고가 아니더라도 배드민턴으로도 경제적인 보상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폰서나 계약적인 부분을 막지 말고 많이 풀어줬으면 좋겠다.”

결국 안세영의 절규는 관행이란 이름으로 이어져 내려온 구습에 대한 항거였다. 야구나 축구 등 인기 스포츠는 운동만 잘하면 부와 명예를 이룰 수 있는데 “배드민턴은 왜 안 되느냐”는 절규였다. 안세영은 또 “국가대표팀에서 나간다고 해서 올림픽에 못 뛰는 건 선수에게 야박하지 않은가”라면서 “모든 선수를 똑같이 대한다면 오히려 역차별”이라고 했다.

국가대표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다는 발상은 관행과 상식을 뛰어넘는다. 당돌하기도 하지만, 신선하기도 하다. 국위선양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행복과 자아실현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누가 안세영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배드민턴협회는 전국의 동호회를 관리하던 생활체육 출신 인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세계정상급 기량을 갖추고 국제대회에 자주 출전하는 엘리트 선수의 요구와 주장을 수용하기엔 힘이 부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지도자의 지시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배드민턴 국가대표 운영 지침은 시대착오적이다.

안세영의 절규는 결코 돈타령이 아니다. 획일적이고 고압적인 꼰대 문화에 대한 통렬한 저격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숨 막힐 듯한 권위주의와 상명하복 문화에 더는 굴종하지 않겠다는 독립 선언이기도 했다.

주최국 프랑스는 파리 올림픽을 통해 ‘양성평등’과 ‘다양성’, 그리고 ‘포용’이란 메시지를 전 세계에 설파했다.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남성과 여성 선수의 비율은 처음으로 50대50에 가까웠다. 주최 측은 ‘올림픽의 꽃’으로 불리는 남자 마라톤을 앞으로 돌리고 여자 마라톤을 폐회식 직전에 열었다. 프랑스는 또 많은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을 자국 대표팀으로 출전시키면서 톨레랑스의 정신을 실천했다. 성 소수자는 물론 XY염색체를 가진 여자 선수도 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런 점에서 파리 올림픽은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기회가 됐다. 무엇보다도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선수들을 통해 코리아의 밝은 미래를 확인한 건 큰 소득이다. 전지희와 이은혜 등 중국에서 귀화한 탁구 선수들의 활약도 감동적이었다. 독립투사의 후손인 재일교포 유도 선수 허미미는 또 어떤가(그의 어머니는 일본 사람이다).

세상은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하게 돌아가고 있는 데도 우리는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다. 스포츠 현장에선 인구가 줄어든 탓에 학생 선수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당장 4년 후 LA 올림픽에 출전할 선수가 모자랄 판이다. 파리 올림픽이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대한민국은 변해야 한다.

정제원 문화스포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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