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보고를 생략하다

김기환 2024. 8. 1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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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 경제부 기자

조직 생활은 보고의 연속이다. 보고를 잘하려면 업무를 스스로 잘 꿰고 있고, 스케줄에 따라 진행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조직의 위계질서를 따른다는 마음가짐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최선은 좋은 보고지만, 허술한 보고라도 하면 중간은 간다. 최악은 아예 보고하지 않는 것이다.

검찰에서 보고를, 그것도 매우 중요한 사건의 보고를 건너뛴 파장이 여전하다. 서울중앙지검은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연루 의혹 사건과 명품백 수수 사건을 수사 중이다. 그런데 지난달 20일 대통령실 경호처의 서울 종로구 부속청사에서 김 여사를 방문 조사하며 대검찰청에 10시간 뒤 사후 보고했다. 수사팀이 “성역 없이, 원칙대로 수사하라”고 강조한 이원석 검찰총장을 의도적으로 패싱(passing·건너뛰기)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총장에게 김건희 여사 방문 조사를 사후 보고한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과거 ‘보고 패싱’에 울고 웃은 당사자다. 윤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이었다. 당시 국정원 직원을 체포하며 보고 절차를 어겼다는 이유로 정직 1개월 처분을 받고 좌천됐다. 역경 덕분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하지만 검찰총장 시절 정부가 껄끄러워한 수사를 밀어붙이자 당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중요 사건의 총장 보고를 건너뛰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직보하는 수모를 겪었다. 투사처럼 버틴 덕분에 대통령에까지 올랐다. 보고 패싱의 수혜자가 피해자로, 다시 수혜자로 바뀌었다.

황당한 일이 검찰에서만 반복된다. 같은 공무원 조직인 기획재정부를 예로 들자. 사무관(5급)이 쓴 중요 보고서 초안이 과장(4급)→국장(2·3급)→차관 보고를 거치는 과정에서 수차례 수정·보완 지시가 뒤따른다. 보고서 파일마다 따라붙는 ‘과수(과장이 수정)’ ‘국수(국장이 수정)’ ‘차수(차관이 수정)’ 꼬리표가 증거다. 보고 체계를 건너뛰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보고에 죽고 사는 공무원의 일상이다.

보고 패싱이 유독 검찰에서 두드러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검찰은 직속 상관인 검찰총장 보고를 건너뛰더라도 정부 최고 권력자의 ‘심중’만 잘 헤아리면 된다는 경험칙을 배웠다. 오히려 보고 패싱이 훈장이 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검찰을 나서 변호사로 개업하면 된다. 두려울 게 없으니 입맛에 따라 보고를 생략한다. 여기서 누가 정권 실세인지 감별하는 ‘촉’이 검찰의 백미(白眉)다. 검찰총장 후보자인 심우정 법무부 차관도 끈 떨어지면 별수 없을 것이다. 보고하지 않는 것도 출세 수단이라니, 처음 보는 유형의 공무원 집단이다!

김기환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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