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올림픽은 범인류적 축제, 정치적 무풍지대로 남겨둬야
이질적 문명 충돌, 험한 세상… 올림픽만은 정치 무풍지대로
PC 등 특정 가치 설파 전에 협소한 부족 의식 강요 전에
수십 억 인류 전통문화와 고유 가치 배려하는 미덕을
보름 넘게 올림픽을 보면서 또 한번 즐거웠다. 우리는 왜 운동 경기를 보면서 좋아하는가? 선수들의 가슴에 붙은 국기 때문일까? 그들의 몸짓이 아름답기 때문일까? 이유야 어떻든 올림픽만큼 인류를 결속하는 행사도 없다. 올림픽 경기가 열릴 때면 피부색과 가치관에 상관없이 수십억 명이 경기를 지켜보며 열광한다. 아슬아슬한 장면에선 숨을 죽이고, 안타까운 모습을 볼 땐 눈시울을 적시기도 한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여러 도시에선 보복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지만, 올림픽과 같은 전 지구적 행사가 열리기에 인류는 화해와 공존을 도모할 수 있다.
센강에서 펼쳐진 이번 파리 올림픽 개막식은 멋진 쇼였지만, 파격적 이미지와 도발적 메시지로 많은 사람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올림픽 개막식은 세 살배기부터 백 살 노인까지, 히잡 두른 무슬림뿐 아니라 문신투성이 야쿠자까지 모두 함께 지켜보는 지구촌의 구경거리다. 그런 중대한 행사에서 왜 난데없이 도서관에서 눈 맞은 세 명의 남녀(?)가 침실로 들어가는 영상이 나와야 하나? 231년 전 처형당한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수십 개 창틀에 일제히 서서 스스로 잘린 목을 들고 “귀족들, 우리가 그들을 목매달겠노라”를 부르는 장면은 대체 뭔가? 제작진이 아무리 부인한다 해도 ‘최후의 만찬’을 연상시키는 그 장면이 기독교인들에게 모욕감을 안 줄 수 있겠는가?
물론 어느 시대나 예술가들은 사람들의 통념과 상식을 뒤흔드는 상상력의 첨병들이다.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는 기상천외한 예술 작품은 틀에 박혀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각과 비전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는 인류 공동의 가치로 선양되지만, 모두가 지켜보는 안방 텔레비전에 색칠한 알몸뚱이나 그보다 더한 뭔가가 나온다면 거센 반발이 일 수밖에 없다. 지금도 많은 문화권에선 그런 식의 표현을 신성모독이나 음란 행위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의도가 어떠했건 이번 개막식은 전 세계를 처절하게 갈라놓았다.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 운동’이 거센 미주와 유럽에선 진영 사이 부족 전쟁이 다시 터졌다. 자유와 포용을 외친 최고의 작품이란 찬사가 있는가 하면, “무례하고,” “불경스러운,” “테러리즘의 과시”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중국에선 중앙방송 해설자가 할 말을 잃어 “해설자 침묵”이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올랐고, 다수 네티즌은 “눈이 맵다”며 고개를 돌렸다 한다. 인도나 기타 여러 나라에서도 애들과 함께 보는데 대체 무슨 짓거리냐는 거센 항의가 빗발쳤다.
개막식을 담당한 프랑스 당국이 진정 그런 결과를 예견하지 못했을까? 그보단 ‘PC 엘리트주의(elitism)’에 빠진 프랑스 문화예술계의 권력자들이 올림픽 개막식을 선전전으로 활용했다는 혐의가 짙다. ‘PC 엘리트주의’란 젠더 이슈나 성적 취향 등에서 스스로 진보적이라 확신하는 자들의 우월의식을 이른다. 그런 우월의식 위에서 그들은 다양한 문화권의 수십억 명이 가족과 함께 시청하는 올림픽 개막식에서 고의로 물의를 빚어 전 세계를 ‘계몽’하려 덤빈 듯하다. 도발이나 충격이 의도였다면 소기의 목적을 이뤘겠지만, 그 틈에 올림픽 정신은 크게 훼손당했다.
올림픽 개막식은 아방가르드 전시장이나 특정 집단만의 페스티벌이 아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서 응원하며 감상하는 범인류적 대축제의 무대다. 특히 이번 올림픽은 역병에 전쟁까지 겹쳐서 산산이 부서졌던 인류 공동체가 모처럼 만에 다시 모인 중대한 이벤트였다. 진정한 예술가라면 자기가 속한 협소한 동아리의 부족 의식을 버리고 전 세계 모든 인류가 기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감의 무대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 섣불리 특정 가치를 설파하기 전에 전 세계 수십억 인구의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고유 가치를 배려하는 미덕이 필요할 듯하다.
최선을 다해 경쟁하는 선수들 한 명, 한 명의 모습은 인종과 국적, 종교 가치나 정치 성향을 넘어 모든 인류에게 이미 큰 감동을 준다. 바로 그러한 순수한 감동이야말로 인류가 공동 가치를 확인하는 정서적 출발점이다. 이질적 문명이 격하게 충돌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올림픽만큼은 정치의 무풍지대로 남겨둬야 한다. 정치와 종교를 넘어 지구 위의 모든 사람이 다 함께 좋아하는 인류 공동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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