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프리즘] 금정산에 찾아온 ‘시절인연’
한국을 대표하는 5대 명산이 있다. 동쪽의 금강산, 남쪽의 지리산, 서쪽의 묘향산, 북쪽의 백두산, 그리고 중심의 삼각산(북한산)이다. 이 중 백두산은 일찍부터 한민족의 신앙이 되어 온 종주산(宗主山)으로 불렸다. 부산에도 산이 많지만, 백두산처럼 명산으로 여기는 산이 바로 최근 국립공원 지정 논의가 활발한 금정산(金井山, 801.5m)이다.
금정산은 총면적 73.6㎢로 부산(58.9㎢)과 경남 양산(14.7㎢)으로 길게 뻗어 있다. 이곳에는 멸종위기종 13종을 포함해 동·식물 1482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신라 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금정총림 범어사와 사찰 안팎 보물 등을 포함한 국가유산 105점이 있어 전국 국립공원 최상위 수준 문화자원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금정산이 부산의 명산으로 불리는 이유다.
이뿐만이 아니다. 금정산 정상 고당봉 인근에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전해지는 ‘금샘’이 있다. 실제 보면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바위가 있고, 그 끝에는 하늘에서 내려주는 물을 받으려는 듯 조그만 샘이 조성돼 있다. 여기서 금정(金井)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또 금정산에는 한국에서 가장 긴 금정산성(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215호)도 있다. 둘레가 17.3㎞로 북한산성(9.5㎞)과 비교하면 두 배 정도 크다.
이런 배경으로 부산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금정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관리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2013년에는 국가지질공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금정산은 전체 82%가 사유지다. 특히 이 중 8%의 땅을 소유한 범어사가 반대 입장을 내면서 국립공원 추진이 난항을 겪었다. 환경부가 2021년 부산시에 범어사 설득을 ‘국립공원 추진 선결 과제’로 제시한 이유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1월과 올해 2월 범어사 방장·주지승이 모두 교체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부산시에 따르면 이후 범어사는 ‘경내 그린벨트 해제’ 요구를 접었다. 대신 사찰 초입에서 일부 암자에 이르는 임도 약 1㎞ 구간 정비와 주차면 확대 등을 요구했다. 부산시는 임도를 정비하되 이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 해당 임도를 탐방로로 사용하는 등의 조건으로 협의했다. 범어사 측은 일이 순리대로 풀리는 데에는 때가 있다는 의미의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고 답하며 지난 2월 국립공원 지정에 동의했다고 한다.
첫 단추는 끼웠으나 지주 설득 등 남은 과제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금정산을 24번째, 전국 첫 도심형 국립공원으로 추진하는 걸 단순히 국가 예산을 투입해 더 많은 관광객을 모으려는 목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무수한 개발 압력을 받는 금정산을 슬기롭게 보존해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그 밑바탕에 있어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할 때 금정산에 진정한 ‘시절인연’은 찾아올 것이다.
위성욱 부산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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