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과 1948년 논쟁…대한민국 건국은 하나의 과정이었다 [한윤형이 소리내다]

한윤형 2024. 8. 1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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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은 건국정신 정초한 해
1차 건국, 1948~60년까지 봐야
나라 세운 분들 함께 기념하자
대한민국 건국 시점을 두고 3·1 운동(왼쪽)에 이어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과 5·10 총선거에 의해 정부가 수립(오른쪽)된 1948년을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 [사진 이승만 건국대통령 기념사업회]

‘건국절’ 논쟁이 있다.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기리자는 주장과, 대한민국 건국 시점은 1919년의 임시정부 수립이란 주장이다. 보수와 진보 두 진영의 일각을 대변하는 두 사관은 지난 20여년간 첨예한 대립을 벌였다.

먼저 나는 현재 광복절이자 정부수립 기념일인 8월 15일이든, 임시정부 수립일인 4월 11일이든, 둘 중 하나를 굳이 ‘건국절’로 바꿔 부르는 일은 불필요하다고 본다. 단지 평행선을 달리는 두 세계관을 임의로 절충하고 타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국’을 하나의 과정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최근 발간한 『상식의 독재』에서 한국의 근현대사에 드리운 전근대사의 영향력을 직시해야 하며, 1919년의 3·1 운동은 대한민국의 기원을 정초한 사건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므로 그전의 시기와는 별도의 정체성을 담은 건국에 관한 이야기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디까지가 죽순이고 어디서부터가 대나무인지 분명하지 않듯이, 이를 과정 속에서 파악할 때 더 두텁고 현명한 이야기가 된다고 믿을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차 최근 번역 출간된 두 명의 하버드대 정치학자가 쓴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에서 흥미로운 도식을 발견했다. 책의 주요 논지는 미국에선 소수파 권리 보장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다수의 지배를 방해하며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등장하는 예시 중 상당수가 한국과 유사한 면이 있을지라도, 선거에서 이긴 쪽이 합의제 전통을 무시하고 전횡을 하려 해서 대립이 격화되는 한국의 상황과는 사뭇 다르다.

그런데 책에서는 미국의 건국을 단 한 번의 일회적인 사건으로만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총 3차에 걸친 사건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즉, 1차 건국은 미국 독립전쟁이 본격화된 1776년부터 연방정부가 수립되고 최초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 1801년까지의 과정으로, 2차 건국은 남북전쟁 이후 1865년에서 수십 년 간의 재건시대로, 3차 건국은 시민권법(1964년)과 투표권법(1965년)이 만들어진 과정으로 파악한 것이다.

이와 같은 도식을 대한민국사에도 적용해보면 어떨까. 일단 ‘N차 건국’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미국이 건국의 공로자들을 기리는 방식이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국부 이승만’을 기리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미국에선 국부가 아니라 ‘건국의 아버지들’을 기리며, 그 숫자도 적게는 몇 명에서 넓게 잡을 때는 지역 및 직능별 대표성까지 고려한 백수십 명에 달한다.

한국 현대사 문제에 대한 논평가인 주대환 작가는 최근 증보판이 나온 『K-데모크라시』에서 미국의 방식을 본받아 문어로는 ‘건국 원조’, 구어로는 ‘나라 세운 할아버지들’을 기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한 바 있다. 그가 제시한 건국 원조는 이승만, 김성수, 신익희, 조봉암, 조만식 등이다. 나는 그의 제안도 훌륭하다고 생각하는데, 다만 ‘나라 세운 할아버지들’은 미국의 방식을 본받아 범위를 넓게 잡을 때 ‘할머니들’이 포함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라 세운 어르신들’로 순화하는 게 더 적절하다고 봤다. 이렇게 나라 세운 어르신들의 목록을 관용적이고 넓은 스팩트럼으로 설정하고, N차 건국의 아이디어까지 포섭한다면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영화 ‘건국전쟁’에는 흥미로운 주장이 하나 나온다. 4·19 혁명의 공로 중 일부분은 1950년대에 전국 단위 선거를 수차례 치르며 민주주의를 정착한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민주혁명의 공로를 그에게 돌리는 것은 매우 어색한 일이나, 이는 ‘국부 이승만’을 기리자고 하는 이들도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사실을 결코 부정할 수는 없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게 본다면 미국의 1차 건국이 1776년에 고정되지 않고 18세기 말까지 포괄되듯, 한국의 1차 건국도 1948년이란 연도에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1960년까지의 연속적인 과정으로 파악되며 4·19 혁명의 주역들까지 건국 원조의 일원으로 포함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1919년은 물론 대한민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해다. 민주공화국의 이념이 선포됐으며, 그 기원을 반석 위에 세운 연도다. 하지만 그로 인해 성립된 임시정부가 전체 독립운동 내에서의 주도적인 위치를 잠깐밖에 누리지 못하고 부침이 있었다. 따라서 그때 건국된 대한민국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고 서술하는 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부자연스럽다. 따라서 1919년은 건국 정신을 정초한 해가 될 것이며, 굳이 도식화하자면 ‘0차 건국’의 해가 될 것이다. 1차 건국은 앞서 말했듯 1948년부터 1960년까지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렇다면 이 도식에서 2차 건국은 1987년의 6공화국의 형성부터 1997년의 수평적 정권교체까지의 과정이 됨이 마땅하지 않을까.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공로는 민주공화국의 건국과는 별도의 것으로 파악되어야 할 테니 말이다.

핵심은 민주공화국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지켜나가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공화국인 미국도 민주주의의 파행을 우려하는 이 시대에, 건국에 대한 우리의 재인식도 국부 논란은 떠나서 정립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한윤형 작가·새로운소통연구소 조사분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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