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상징’ 신촌·이대 거리는 지금

정다운 매경이코노미 기자(jeongdw@mk.co.kr), 조동현 매경이코노미 기자(cho.donghyun@mk.co.kr) 2024. 8. 1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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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살아난다는데 여전히 썰렁한 상권
서울 서대문구 신촌 대학가 상가 점포에 ‘임대 문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윤관식 기자)
# “상가 계약 기간이 아직 남았는데 지금이라도 손해를 감수하고 폐업해야 할지 고민 중이에요.” (신촌 상권 자영업자 이 모 씨)

8월 첫 주 찾은 서울 신촌 상권. 찜통더위 속 비가 내렸다 그치길 반복한 탓인지 평일 낮 시간대에도 거리에는 유동인구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상권의 대문 격인 신촌역 3번 출구 아티제 커피숍에는 손님이 드문드문 앉아 있다. 아티제는 2018년까지만 해도 20년간 자리를 지키며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해오던 맥도날드가 있던 자리다. ‘터줏대감’이던 맥도날드가 8년 전 높은 임대료와 낮은 수익성을 이유로 폐점한 이후 신세계그룹의 헬스앤뷰티(H&B)스토어 부츠가 입점했다가 지금은 커피숍이 들어서 있다.

2호선 신촌역에서 연세대까지 이어지는 연세로 메인 거리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상가가 많다. 신촌 핵심 상권으로 꼽히는 유플렉스와 스타광장 인근에는 통째로 비어 있는 건물들도 있었다. 연세로에서 7년째 음식점을 운영 중이라는 정 모 씨는 “신촌은 유동인구가 꽤 많아 경기가 좋아졌을 거라고들 생각하는데 가게 매출은 좀처럼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 인근 이화여대 상권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평일 점심시간인데도 오가는 사람이 적고 한산하다. 지하철 2호선 이대역 2·3번 출구부터 이화여대 앞까지 이어지는 거리에는 이미 폐업해 빈 점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때 옷·화장품 가게와 미용실마다 문전성시를 이루던 ‘패션과 미용의 중심지’ 명성은 무색해진 지 오래다. 이대역에서 이화여대, 신촌역 방향으로 이어지는 이화여대길은 상가건물 4곳 중 1곳꼴로 비어 있다. 4개 이상 점포가 연달아 ‘임대 문의’ 현수막을 내건 곳도 눈에 띈다. 이면도로인 ‘모두의거리(이화52번가)’에도 폐업 안내문을 써 붙여둔 점포가 수두룩해 도로명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화여대 인근에서 5년가량 옷 가게를 운영해왔다는 이 씨는 “코로나19 이전에는 학생과 외국인 관광객으로 붐볐지만 지금은 방문하는 손님이 하루에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며 “특히 관광객이 끊기면서 매출이 크게 빠져 마음고생 중”이라고 토로했다.

명동·압구정동과 함께 서울의 3대 황금 상권으로 꼽히던 신촌·이대 상권이 좀처럼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상권 노후화, 온라인 위주 소비 성향 개편이 맞물려 주 소비층이던 젊은 유동인구가 대폭 감소하면서 엔데믹 이후에도 예전의 활기를 되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매출 대비 높은 임대료를 감당 못하는 임차인이 속속 빠져나가면서 지금은 서울에서 교대역(22%) 다음으로 공실이 많은 동네가 됐다.

신촌·이대 상권, 어떻길래?

공실률 서울 2위…임대료는 제자리

당장 통계 지표들을 살펴봐도 신촌·이대 상권은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노후 상권에서 소비층이 이탈하면서 매출이 감소하자 공실 증가, 임대료 하락으로 이어졌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하는 ‘상업용 부동산 임대동향조사’에 따르면 팬데믹 2년 차였던 2022년 2분기 서울 대표 상권 명동의 공실률은 소규모상가를 기준으로 42.1%에 달했다. 그러다 외국인 관광 수요가 회복하면서 올 2분기에는 공실률이 2.4%까지 급감했다.

반면 신촌·이대의 경우 소규모상가 공실률이 2022년 2분기 15%에서 지난해 2분기 6.9%까지 감소했다가, 올 2분기 다시 18.3%로 치솟았다. 그나마 지난해 3분기(22%)보다는 개선된 수치라지만, 자영업자가 주 임차인인 소규모상가 5곳 중 1곳은 여전히 비어 있는 셈이다.

임차인이 떠난 자리를 제때 채워 넣지 못한 신촌·이대 상권 임대료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올 2분기 서울 통합상가 임대가격지수(2021년 4분기=100)는 전분기보다 0.52% 오른 102.1로 집계됐다. 임대료 변동을 나타내는 임대가격지수가 서울 주요 상권 대부분에서 상승한 가운데 특히 업무지구를 배후로 한 상권과 MZ세대 ‘핫플레이스’ 상권을 중심으로 높은 임대료 상승세를 나타냈다. 지역별로 용산역(5.22%), 뚝섬(1.94%), 남대문(1.58%), 또 ‘경동시장’이 있는 동대문(1.22%) 등에서 상승세가 가팔랐다. 뚝섬 임대가격지수는 113.03, 용산 112.29로 압구정(111.5)보다 높고 서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반면, 서울 시내 주요 대학 상권인 신촌·이대 상권의 임대가격지수(98.04)는 유동인구 감소로 공실이 증가하며 1.84% 떨어졌다. 임대가격지수가 100보다 낮다는 것은 신촌·이대 상권 임대료가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4분기(100)보다도 하락했다는 의미다. 인근 상권인 홍대 상권이 0.17%, 공덕역 상권이 0.44%씩 상승하며 회복한 것과 대조적이다. 신촌·이대 상권에서는 소상공인 점유율 높은 집합상가(98.8, -1.24%)와 소규모상가(99.77, -1.81%)는 물론 중대형상가(97.89, -1.97%)까지 상가 규모와 상관없이 부진했다.

건물, 상가 소유주인 임대인에게도 이런 상황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3개월간의 부동산 보유에 따른 투자 성과를 나타내는 투자수익률은 신촌·이대 상권이 1.35%로 서울 평균(1.54%)을 밑돈다. 서울에서 같은 권역으로 묶이는 영등포구와 마포구에서는 투자수익률이 당산역 1.8%, 여의도 1.49%, 영등포역 1.63%, 홍대·합정 1.46% 등으로 모두 신촌·이대보다 높다.

서울 서대문구 이촌 대학가 상권에서는 4~5개 점포가 연달아 비어 있는 곳이 눈에 띄었다. (윤관식 기자)
몰락한 신촌·이대 상권, 왜?

특색 없는 거리, 학생도 상인도 ‘이탈’

신촌·이대 상권 공실률이 높아진 건 무엇보다 매출 감소 여파가 크다.

상권 분석 플랫폼 오픈업에 따르면 지난 6월 한 달 동안 신촌·이대 상권을 아우르는 신촌동에서 발생한 매출(659억6710만원, 이하 추정)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5.39% 감소했다. 이 기간 홍대 상권인 서교동, 연남동 매출도 각각 3.75%, 4.17% 감소했다. 대형 쇼핑몰이 있는 명동(1.38%), 회현동(7.21%), 소공동(57.62%)과 숙명여대 상권인 남영동(65.47%), 용산역이 있는 한강로동(4.84%), 한동안 고전했던 이태원동(12.57%) 등 한강 이북 주요 상권들이 모두 견조한 매출 성장세를 나타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어렵사리 영업을 이어가는 점포들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업주들은 “남은 임차 계약 기간을 채우느라 폐업하지 못한 채 월 임대료만 내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이화여대 인근 한 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그나마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날 즈음 다시 채워진 점포가 몇 있는데, 장사가 안되니 상인들도 월세를 까먹으며 버티는 것”이라며 “일부 빈 상가들은 보증금도 한참 낮춘 상태고 권리금 없이 들어올 수 있는 데도 채워지지 않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매출이 줄어든 것은 주 소비층인 학생과 외국인 유동인구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연세대 신입생이 송도국제캠퍼스로 의무적으로 통학하면서 유동인구 상당수가 빠져나갔다. 10여년에 거쳐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사태, 코로나19 팬데믹 등을 거치며 어학당을 찾던 외국인과 관광객까지 급감했다.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상인들은 이미 2013년을 기점으로 경의선숲길과 연남동, 망원동 등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낮은 상권으로 옮겨 가는 중이었다. 빈 점포는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들이 꿰차기는 했지만 신촌·이대는 점차 특색 없는 상권이 돼갔다.

홍대, 연남동, 망원동, 멀게는 성수동 상권 등에 밀리고 손님 부족에 시달리면서도 높은 임대료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올 2분기 기준 신촌·이대 권역 집합상가 평균 월 임대료는 3.3㎡당 24만3306원(집합상가 기준)이다. 최근에야 임대가격지수가 조금 꺾였다지만 임대료는 여전히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8년 4분기(24만1653원)와 비슷한 수준이다. 132㎡(옛 40평)짜리 점포를 하나 내려면 970만원 수준 월세를 꼬박꼬박 내야 하는 셈이다. 통상 매출액의 10~15%를 월 임대료로 산정하는 점을 감안하면 한 점포가 월 1억원의 매출을 올려야 장사를 해볼 만하다는 얘기. 손님이 끊겨 매출액이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임대료는 내릴 기미가 안 보이자 상인 이탈은 더욱 가속화됐다.

신촌 상권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임대료가 비싼 메인 거리의 경우에도 (건물주들이) 공실로 방치할지언정 임대료는 내리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그나마 메인 거리를 채워주던 대형 프랜차이즈나 법인도 이제는 임차 문의를 잘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업계에 따르면 연세로 부근은 30평 기준으로 평균 보증금 2억~3억원, 임대료 1000만~2000만원 정도로 형성돼 있다. 현재 메인 거리인 연세로에는 전용 275㎡, 전용 413㎡짜리 대형 점포들이 임차인을 찾고 있다. 이들 매물 호가는 보증금 7억원대, 월 임대료 3000만~3500만원 선에 형성돼 있다.

이대 상권의 경우 상권을 살려볼 요량으로 지자체가 실시한 정책이 상권 쇠락을 더욱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3년 서울시는 이대 앞을 ‘쇼핑·관광 권역’으로 지정하고 의류·잡화, 이·미용 중심 거리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다른 업종을 운영하려면 건물 내 주차장을 필수로 갖춰야 하는 규제도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개성 있는 소규모 커피숍이나 음식점은 이대 상권에 자리 잡지 못하게 됐고 오히려 상권 활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여기에 소비 트렌드가 온라인 위주로 빠르게 변하면서 업종 제한은 오히려 ‘악수’가 됐다.

상인들 요청으로 쇼핑·관광 권역 업종 제한은 10년이 지난 뒤 지난해 3월에서야 해제됐다. 식당, 학원, 병원 등 다양한 가게가 들어올 수 있게 됐지만 아직 이렇다 할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지속된 적자를 견디지 못해 폐업한 옷 가게, 미용실 자리에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코인세탁방 같은 무인 점포가 들어서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업종 제한이 해제된 건 바람직하다면서도 이대 상권이 부활하려면 뷰티·패션 업종을 중심으로 특색을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대 상권은 여전히 20~30대 대학생과 대학원생이 꾸준히 오가는 곳이다. 이런 젊은 소비층이 선호할 만한 뷰티·패션 관련 ‘핫플레이스’ 매장이 생기면 그 옆에 미용실이 생기고, 또 그 옆에 커피숍과 음식점이 생겨야 소비층이 이탈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신촌 역시 당장 높은 임대료를 고수하기보다는 존재감 있는 인기 매장을 유치하는 데 공들여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빌딩·상가 전문가인 임광선 엘앤엘부동산중개 대표는 “개성 있는 매장은 일대 상권에 ‘영양제’ 역할을 한다”며 “소비하며 오래 체류할 만한 곳이 되면 외부에서 유입되는 방문객도 늘어나니 상권은 자연스럽게 살아난다”고 설명했다.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2호 (2024.08.14~2024.08.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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