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복권 논란’이 드러낸 ‘대통령 사면권’의 문제
사면법 제정 이후 74년 간 거의 그대로
“제도 개선·보완 논의 시급”
김경수 전 경남지사 복권을 둘러싼 논란에는 전직 야당 대표, 현직 여당 대표, 윤석열 대통령까지 복잡하게 얽혀있다. 사면권 행사의 과정과 대상자 선정을 둔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면서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인 사면권 자체의 문제가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면권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은 별다른 견제 장치가 없어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정부는 ‘국민 통합’ 등을 명분으로 특별사면을 단행해왔지만, 그럴 때마다 대상자 선정의 적절성을 놓고 특혜 논란 등이 따라다녔다. 또 재판 결과에 불복하던 유력 인사들이 사면 심사가 임박한 시점에서 돌연 입장을 바꿔 형을 확정 받은 뒤 곧바로 사면 대상에 포함돼 형을 통째로 면제받는 ‘약속 사면’ 논란 역시 되풀이 됐다.
김 전 지사 복권 논란에는 이런 문제들이 동시에 터져나왔다는 특징이 있다. 야권을 고리로는 복권 과정의 ‘불투명성’ 문제가 여실히 드러났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지난 12일 SBS라디오에서 “영수회담을 할 때 (대통령실이) ‘이재명 대표의 경쟁자는 (중용)하지 않겠다’며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이야기를 꺼냈고, 심지어 김 전 지사를 복권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며 “이 대표는 ‘경쟁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며 사실상 제의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에서 사면 권한을 야권과의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활용했다는 취지의 주장인데, 여권은 이를 즉각 부인했다.
김 전 지사 복권 문제는 대통령실과 야당 간 진실 공방으로까지 번졌다. 이재명 전 대표는 김 전 지사의 복권을 여러 차례 대통령실에 요구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민주당으로부터 복권 요청을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실제 영수회담 사전 논의 과정에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 외부에서 확인하긴 어렵지만, 양측의 말이 엇갈리는 상황 자체가 복권 대상 선정의 불투명성을 보여준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여권에선 복권 대상자 선정에 대한 적절성 공방이 벌어졌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김 전 지사가 민주주의 파괴라는 중대 위법행위를 저질렀고 아직 반성이 없다는 점 등을 내세워 복권 반대 입장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통령실은 “사면·복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여야 양쪽에서 사면권 제도의 ‘폐지’까지 열어두고 개선점을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한 이언주 의원은 1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에 사법부에 의해 결론이 내려진 사안을 뒤집을 수 있는 절대권을 부여한 게 특별사면권인데, 시대에 뒤떨어진 전근대적인 내용이라 폐지해야 한다”며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경우에도 윤 대통령이 공정과 상식을 내세워 사법권을 행사하고서 대통령이 된 이후 다시 용서해준다는 것을 국민들이 용인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박용찬 국민의힘 영등포을 당협위원장도 “(특별사면권이) 유력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재벌총수 등 소수의 특권층을 위한 ‘범죄세탁소’로 전락하기도 했으며 권력자의 측근 챙기기와 정치적 흥정의 수단으로 악용돼 온 게 사실”이라며 “명확한 원칙도 기준도 없으며 누가 왜 대상자가 됐는지 알 길이 없는 그야말로 깜깜이 사면복권”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회에 ‘사면복권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특별사면 제도의 완전 폐지까지 열어두고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특별사면 제도를 개선해 대통령 사면권 행사에 한계를 부여하자는 주장은 그동안에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러나 지지층을 규합하고 정치적 위기 돌파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여권의 유인과 스스로가 특사의 수혜자가 되는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야당의 유인이 맞물려 제도 개선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민주화 이후 사면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총 50건 발의됐지만, 이 중 통과된 것은 3건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사면심사위원회를 도입하고(2007년), 사면심사위원회 심사과정과 내용의 공개 시기를 법으로 규정해 투명성을 일부 살리는(2011년) 수준의 내용이고 특별사면권 자체에 본질적인 제한을 가하는 내용은 아니었다. 결국 사면법은 제정 이후 74년 동안 내용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
사면법 개정안은 22대 국회에서도 등장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특별사면 대상자에서 대통령 친족, 대통령이 임명·지명한 정무직 공무원이었던 사람을 제외하고 사면심사위원회 위원 중 일부를 국회에서 추천하는 등 대통령 특별사면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사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사면권 행사에 있어 기준이 불명확하고 당리당략에 따라 사면·복권해주는 경우가 많아 국민적인 눈높이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명분은 국민통합과 화합 차원이라고 하는데 현재 실상은 그와 거리가 멀기 때문에 제도 개선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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