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사 알면 불 안나나"…칼 못 빼는 전기차 배터리, 소비자 몫?
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 이후 ‘전기차 포비아’가 확산하자, 자동차 업계가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하고 전기차 무상 점검을 시작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13일 국토교통부와 자동차 업계는 국내에 출시된 전기차의 안전성을 점검하기로 했다. 이날 국무조정실 주재로 열린 '관계기관 전기차 화재 대책 회의'에선 국내 모든 전기차에 대해 배터리 정보 공개를 권고키로 했다. 이날까지 홈페이지에 자사의 전기차 탑재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한 곳은 현대차(제네시스 포함), 기아, KG모빌리티, BMW, 볼보, 메르세데스-벤츠, 폴스타 등 7개사(총 40종)다.
지난 1일 청라 화재 차량 제조사인 메르세대스-벤츠는 이날 국내에 출시된 전기차 16종에 탑재된 배터리의 제조사 정보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사고 차량인 EQE 350+ 등 총 5종에 중국 파라시스 배터리가 탑재됐다. 중국 CATL 배터리만 쓰는 차량은 EQE300 등 8종이다. EQA 250의 경우 2021~2022년형 모델에는 중국 CATL이, 2023년형 이후 모델엔 SK온 배터리가 탑재됐다. 볼보는 시판 중인 전기차 2종에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가 탑재됐다고 밝혔다.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한 7개사 전기차 40종 가운데 중국산 배터리가 탑재된 차량은 14종(35%)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한국GM·폭스바겐·아우디 등은 “본사와 정보 공개 여부에 대해 상의 중”이라고 밝혔다.
배터리 정보 공개는 시작일뿐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제조사 공개가 당장 소비자 불안을 낮출 수는 있지만, 화재 발생을 줄일 방법은 아니다”라며 “모든 배터리엔 화재 위험성이 없지 않은데 괜히 낙인이 찍힐까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이날 자동차 제조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기차 화재 예방 안에 대해 논의했다. 당초 가속페달 오조작 방지를 위해 ‘페달 블랙박스 장착 시 과징금 경감’ 안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국내 출시된 모든 전기차에 대해 안전 검사를 실시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고 한다. 강제성은 없다. 다만 이날 회의에 참석한 기업의 관계자는 “전기차 안전 검사 결과를 국토부에 보고하라는 의무는 없지만 향후 현황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또다른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사용하면 안 되는 배터리나 소재를 지정해주거나 좀더 구체적인 지침을 정해주면 혼란을 줄일 수 있겠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2025년 2월부터 배터리 정부인증 제도가 시작되지만, 전기차 포비아 장기화에 대비해 정부의 긴급 지침 필요하다고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섣부른 규제가 되려 면책 근거가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선우명호 고려대 자동차융합학과 석좌교수는 “정부가 배터리 사용 지침을 내리는 건 어렵다”며 “배터리 회사마다 기술력이 다른데, 정부가 사용 금지 여부를 판단할 기준도 현재로선 없고 소비자가 판단해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석좌교수도 “배터리 제조사 공개는 소비자의 알 권리 측면에서 의미가 있지만, 배터리 기술력이나 제품의 안전성 등은 개별 소비자가 판단할 일”이라고 말했다. 화재 위험을 낮춘 배터리 및 관련 기술을 개발하기 전까지는 소비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제조사 정보 공개 외에 배터리 안전성에 대한 정보가 더 충분히 제공돼야 한다는 취지다.
특히 정부가 화재 발생 전후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선우명호 교수는 “차량 배터리 온도를 상시 체크하고 특정 온도 이상 상승 시 ‘7~10분 전 화재 우려 알림’을 의무화하거나 금속화재 소화기 차량 배치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기차 차주들이 배터리 정보를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등록하는 건수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단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기준 공단 ‘마이배터리’ 서비스에는 총 446대의 전기차 정보가 등록됐다. 전날보다 101대 늘어난 수치다. 마이배터리는 전기차 소유자가 배터리 정보(식별번호)를 온라인에 등록하도록 하는 제도로, 화재 발생 시 담당기관에 정보가 제공돼 조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운영됐는데, 446대 중 88%가 지난 1일 청라 전기차 화재사고 이후 등록됐다. 제조사별로는 현대차그룹 200대, KG모빌리티 19대, BMW 109대, 테슬라 118대 등이다. 현재 소비자에게 배터리 식별번호를 제공하는 자동차 회사는 이들 4곳뿐인데, 공단은 타사와도 정보 제공 확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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