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가치로 120만 원? 살벌했던 90년대 게임기 값
2020년대 들어 플레이스테이션 5와 같은 게임기 가격도 정가가 68만 8천 원에 달하고, 비디오 게임을 하나 플레이하려면 게임 하나에 10만 원 이상을 투자하는 것이 어느새 기본이 되어가는 모습이다. 출시 전 DLC 콘텐츠나 각종 혜택을 주는 얼티밋 에디션은 12~13만 원을 넘었다. 저렴한 취미로 꼽혀왔던 게임도 이제는 만만치 않은 모습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2020년대 게이머들은 장난으로 느껴질 정도로, 90년대 게이머들은 빡빡한 게임 라이프를 즐겼다는 것이다. 게임기와 게임 소프트웨어의 가격이 정말 살벌했다. 90년대 이후 게임 인구가 늘고 판매량이 많아지면서 게임 가격이 오히려 저렴해질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가치로 환산하고 당시 물가와 국내 경제 상황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90년대가 훨씬 비싸다.
먼저 1990년에는 삼성전자가 세가의 메가드라이브를 슈퍼겜보이(이후 슈퍼 알라딘보이로 이름 변경)라는 이름으로 국내 시장에 선보였다. 가격은 18만 5천 원이었다. 수치에 따른 단순 환산이지만, 소비자물가지수(2020=100)에 의해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56만 원을 훌쩍 넘는 가격이다. 참고로 노동부가 발표한 1989년 근로자 평균 임금은 54만 원이다.
1992년 말에는 현대전자가 우리나라 시장에 16비트 게임기 슈퍼컴보이(슈퍼패미컴)를 정식 발매했다. 당시 슈퍼컴보이의 소비가 가격은 19만 9천 원이었다. 현대전자는 이듬해에 가격을 21만 9천 500원으로 인상하기도 했다. 이는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환산 51만 원을 훌쩍 넘는다.
당시 슈퍼컴보이의 소프트웨어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현대전자가 슈퍼컴보이를 판매하며 공개한 소프트웨어 가격에 따르면 92년 ‘슈퍼 마리오 월드’는 소비자가격이 3만 9천 원이었고, ‘파이널 파이트’가 7만 4천 원 ‘스트리트 파이터2’는 무려 8만 9천 원에 달했다. 당시 ‘스트리트 파이터2’의 가격을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약 23만 원에 달한다. 최신 게임보다도 비싸다.
통계청이 발표한 92년 근로자 평균 임금이 86만 9천 284원, 92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925원으로 8시간 기준 일급이 7천 400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게임과 게임기 가격이 얼마나 비쌌는지 체감할 수 있으리라 본다. 최저임금 근로자의 경우 5~10일은 일해야 게임을 한 개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또 1994년에는 빅코(빅콤)가 오락실의 게임을 가정에서도 즐길 수 있는 네오지오를 출시했다. 빅코는 네오지오를 한국에 출시하면서 29만 4천 원의 이라는 가격을 책정했다. 환산하면 68만 원 정도의 가격이다. 워낙에 몸값이 비쌌던 기기였기 때문에 의외로 합리적인 금액으로 느껴진다. 앞서 일본에서 가정용 버전이 출시될 당시 가격이 5만 8천 엔에 달할 정도로 몸값이 높았던 기기다.
다만 문제는 네오지오에서 구동할 수 있는 롬 카트리지의 가격이 상당했었다. 네오지오로 출시되며 100메가 쇼크를 선사한 대전 격투 게임 ‘용호의권’의 경우 일본 내에서 가격이 2만 엔을 훌쩍 넘었다. 비싼 롬카트리지의 가격은 국내 시장에도 마찬가지였다. 롬 카트리지 하나가 기존 16비트 게임기들보다 3~4배 비싼 30만 원에 달하는 가격으로 책정됐다. 기기 본체 가격과 맞먹었다. 게다가 네오지오의 경우 국내 정발에 앞서서부터 보따리상 등을 통해 본체와 카트리지가 유통됐으며 인기 있는 카트리지는 50만 원을 쉽게 넘었다.
90년대 중반 16비트를 넘어 32비트의 시대 열리면서 등장한 게임기들의 가격은 앞선 게임기들의 가격은 우습게 보일 정도로 더 어마어마했다.
LG전자가 94년 선보인 3DO 얼라이브는 게임은 물론 음악 CD, CD-G, 포토 CD와 비디오 CD까지 지원하는 멀티미디어기기로 포지셔닝 한 기기다. 16비트와는 차원이 다른 32비트 게임기임을 강조하며 등장했고, 배우 이정재를 모델로 내세웠다. 기기는 출시 당시 가격이 39만 9천 원에 달했다. 현재가치로는 93만 원이 넘는 금액이다. 노동부가 밝힌 1994년 우리나라 전직종의 월평균 급여 수준은 82만 7천 6백 원 수준이다. 월급의 반 가까이를 투자해야 만날 수 있었던 게임기다.
삼성전자는 1995년 32비트 게임기 새턴의 북미 버전을 국내 시장에 삼성새턴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였다. 삼성새턴은 1995년 등장 당시 가격이 55만 원으로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약 122만 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가격을 자랑한다. 당시 양판점에서 게임을 하나 같이 구매하면 60만 원을 훌쩍 넘겼다. 당시 가격으로 구매한다고 쳐도 비싸다고 느껴질 정도로 만만치 않았던 기기다.
1997년에는 현대가 닌텐도 64를 현대 컴보이 64라는 이름으로 32만 원 상당에 출시했고 이는 현재가치로 64만 원을 넘는다. 같은 해 카마엔터테인먼트에서는 1994년 등장해 32비트 게임기 승자로 자리매김한 플레이스테이션 1을 25만 원 상당에 선보였다. 이는 현재가치로 50만 원 상당이다. 지금 돌아봐도 95년 삼성전자를 통해 출시된 새턴의 가격이 정말 어마어마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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