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도 안 알렸다...우크라, 러 기습 3일 전 지휘관들에 작전통보
병사들 충성심 믿고 폰 수거 안해
올해 잃은 땅만큼 러시아 영토 점령
우크라이나군이 아무도 예상 못했던 북동쪽 국경을 넘어 러시아의 쿠르스크 주로 진격한 것은 지난 화요일인 8월 6일 오후 1시. 우크라이나 정예부대인 제82 공수여단 병력이 앞장섰다. 지휘관은 “눈을 크게 뜨고, 신속하게 움직이고, 조국만 생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짧은 기도가 따랐고, 이어 “우크라이나에 영광을”이라는 함성과 함께 진격했다.
러시아로선 2차대전 중이었던 1943년 7~8월 나치 독일군과 마지막으로 싸웠던 자국 영토에서 81년 만에 다시 전투를 치르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벌건 대낮이었는데, 러시아군은 전혀 방어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일부는 숲속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가 우크라이나군을 맞았다. 82 공수여단의 미제(美製) 스트라이커 장갑차는 러시아 사병들의 커피 테이블을 그대로 쓸어버렸다.
오전 3시쯤 전차의 진격을 막는 콘크리트 피라미드인 용치(龍齒)가 설치된 지역에 도달했지만, 세 발의 포격으로 한 군데를 신속하게 파괴했다. 이곳으로 스트라이커 장갑차들이 들어갔다. 러시아군은 무장도 하지 않고 있다가 진격 첫날에 가장 많이 희생됐다. 대부분 징집된 앳된 러시아군 사병들은 속속 항복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이후 하루 5~10㎞씩 진격하며 철도와 주요 가스 공급 시설들을 장악했다. ‘얘니크’라는 군 호출명을 쓰는 우크라이나의 한 분대장은 월스트리트저널에 “2년 반 동안, 러시아는 전혀 방어선을 구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12일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은 “1주일 간의 전쟁으로 약 1000㎢의 러시아 영토를 점령했다”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고위 관료들에게 보고했다(참고로 서울 면적은 605.2㎢다).
그는 이날 화상 보고에서 “러시아 영토 1000㎢를 통제하고 있으며, 군은 임무를 완수하고 있다. 거의 모든 전선에서 전투가 전개되지만, 우리가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러시아군이 올들어 우크라이나로부터 추가로 빼앗은 면적과 비슷하다. 미국 워싱턴 DC의 전쟁연구소(ISW) 분석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작년 12월31일까지 우크라이나 영토 10만 8163㎢를 장악하고 있었다. 이후 지난 8월 11일까지 러시아군 점령 지역은 10만9338만㎢로 늘어났다. 전체 영토의 18%를 넘는다. 따라서 러시아군은 올해 들어 1175㎢를 추가로 장악한 것으로 계산된다.
이번 기습작전이 지금까지 승기(勝機)를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비밀 유지’였다. 미국은 물론 나토(NATO) 지원국가들도 사전에 이 계획을 통보 받지 못했다.
13일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현장의 군 지휘관들도 마지막 순간까지 기밀을 유지했다. 진격 3일 전에 한 지휘관(중령)은 참모들에게 도로변 숲속에서 “러시아로 진격한다”는 명령을 전했다. 사병들은 하루 전에 통보 받았다. 그러나 그들의 충성심을 믿었기에, 휴대폰은 수거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주의 치열한 전선에 비해, 기습작전이 전개된 북동부에는 러시아군의 정찰 드론이 드물어 우크라이나군의 사전 이동 상황이 쉽게 노출되지 않았다.
작년 여름 대대적으로 예고했던 총반격이 실패한 이래, 우크라이나 국방부 산하 연구소는 1ㆍ2차 세계대전과 아랍ㆍ이스라엘 전쟁의 성공적인 작전을 검토했다. 그리고 ‘작전 목표가 성취되기까지 지휘부는 침묵을 지켰다’는 공통점을 찾았다.
결국 우크라이나 정부와 군은 러시아 영토로 진격하고 수 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발표를 하지 않았다. 비밀을 지키다 보니, 국경 지대의 우크라이나 주민들은 러시아군의 반격 공습이 시작된 이후에야 대피해야 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와의 국경 10㎞ 내에 거주하는 자국 주민 2만 명을 앞으로 대피시킬 예정이다.
놀란 것은 우크라이나군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군의 끈질긴 저항을 예상했는데,너무 ‘무방비’상태였다. 한 우크라이나군 사병은 파이낸셜 타임스에 “도네츠크 전선에선 적(敵)이 우리의 모든 움직임을 보고 있어서 수비하기가 훨씬 힘들었는데, 여기선 너무 달랐다”며 “러시아군이 우리의 공격에 놀랐다는 것에 우리도 놀랐다”고 말했다.
11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주전파(主戰派)인 린지 그레이엄 미 연방상원의원(공화ㆍ사우스캐롤라이나)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공격에 대해 “탁월하고 대담하다. 계속 진격하라”고 응원했다.
하지만, 관건은 우크라이나군이 이미 빼앗은 러시아 영토를 계속 장악하며 공세를 이어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은 동부 전선에서 러시아군의 강력한 공세를 간신히 막고 있어, 새로운 전선을 열면 가뜩이나 얇은 다른 곳의 방어벽은 더 얇아질 수밖에 없다. 공격의 모멘텀을 이어가려면 우크라이나군을 동부 전선에서 계속 이곳으로 재배치해야 한다. 또 러시아 영토로의 진격 작전이 성공할수록 군수 보급로도 길어진다.
이번 기습작전의 전반적인 목표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전쟁 분석가들은 우크라이나가 동부 전선의 러시아군 압박을 완화하기 위해, 앞으로 있을 수 있는 평화 협상에서 빼앗은 영토를 교환 목적의 협상 칩(chip)으로 사용하기 위해, 또 푸틴에게 불명예를 주고 우크라이나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방비가 허술한 북쪽 국경을 넘는 기습 작전을 선택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아직 러시아군 주력부대가 포진한 동부 전선에서 병력을 빼, 북쪽으로 재배치한다는 조짐은 없다. 전쟁연구소(ISW)는 11일 보고서에서 러시아가 동부 전선에서 주력군을 빼지 않고, 하급 부대들을 쿠르스크 지역으로 배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11일 저녁에도 모두 4차례 동부 도네츠크 주의 주요 도시 4곳을 집중 공격했고 현재도 2곳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진행 중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12일 최고 군지휘부와 가진 영상 회의에서 “서방이 우크라이나의 손을 빌려 우리와 싸운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며 “적은 마땅히 받아야 할 반격을 받을 것이고, 우리 모든 목표는 의심의 여지 없이 완수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과 국민의 사기는 이번 기습 작전 성공으로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기습 작전이 전개된 북동쪽 국경의 우크라이나 주민들은 대피하면서도 뉴욕타임스에 “그들[러시아 국민]도 점령ㆍ침공 당하고, 애들이 대피소에서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노인들이 고통 당하는 것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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