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당근 씨앗, 땅속에서 익어버렸다…역대급 폭염에 타는 농심

최충일, 박진호 2024. 8. 1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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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당근 재배했지만 올해처럼 힘든 농사 처음”


13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당근밭에서 부경도씨가 폭염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걱정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국민(초등)학교 6학년부터 당근 농사를 지었고 올핸 1만평쯤 짓고 이신디, 이렇게 농사가 힘든 적은 처음이우다”
13일 오전 10시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당근밭에서 만난 농민 부경도(80)씨는 열기가 뿜어나오는 들판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3만3000㎡(10000평) 규모의 밭에서 당근을 재배하는 부씨는 “지난 6일부터 파종한 당근 싹이 전혀 올라오지 않아 3일 전부터 트럭로 하루 10번 이상 물을 날라 밭에 뿌리고 있다”며 “인간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하고 있지만, 폭염에 가뭄까지 계속되고 있어 올해 농사는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제주에서는 지난 7월15일 이후 29일째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다.

“당근 싹도 안나”“물을 사수하라”


13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의 한 당근밭에 물을 뿌리는 중인 농민. 최충일 기자
계속된 폭염에 농작물에도 비상이 걸렸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밭작물인 당근은 싹이 나지 않고 있고 강원도 고랭지 배추는 따가운 햇볕을 견디지 못하고 누렇게 말라 버리거나 병해충에 시달리고 있다.

제주시 구좌읍 지역은 제주 최대 당근 산지다. 제주지역 당근 생산량의 90%는 이곳에서 생산된다. 생산량은 연간 5만t정도다. 하지만 최근 3주가량 제대로 된 비 소식이 없었고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흙이 바싹 말랐다. 강렬한 햇볕으로 수분 공급이 끊기면 씨앗이 땅속에서 마르거나 익어 버린다고 한다.


농업 관정도 말라…오영훈 지사 “비상근무 지원”


13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에 설치된 물백에서 제주 구좌농협이 지원한 농업용수를 퍼가는 농민. 최충일 기자
제주 농업용 관정에도 물이 부족해지면서 아우성이다. 농업용 1t 트럭에 물통을 실어 나르는 구좌읍 농민 부옥란(77)씨는 “많은 농민이 한꺼번에 관정을 사용하다보니 오후 늦은 시간이 되면 물이 동난다”라고 말했다. 구좌농협 등은 이동식 물탱크를 동원하고 있지만, 공급량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이에 제주도는 구좌읍에 가뭄대책 상황실을 설치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제주도는 지역농협·농어촌공사 등과 협력해 농업용수 공급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지난 12일 구좌읍 당근밭 현장을 찾은 오영훈 제주지사는 “폭염 장기화에 따른 가뭄에 대응하기 위해 농축산 분야 재해대책 상황실을 본격 가동하고 비상근무 체계를 강화할 것”이라며 “현장에 필요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 방안을 신속히 마련해 농가 피해 최소화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고랭지 배추도 무더위와 병해충과 싸움


13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의 한 당근밭의 흙이 바싹 말라있다. 최충일 기자
강원도의 고랭지 배추 등 작물은 무더위에 병해(病害)로 수난을 겪고 있다. 강원도농업기술원에 따르면 강릉·태백·삼척 등 10 시군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들어 지난달 31일 기준 143.9㏊ 규모 밭에서 병해가 발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03.1㏊과 비교해 40㏊ 이상 증가했다. 무름병 피해 면적이 68.2㏊로 가장 넓었다. 이어 바이러스 25.1㏊, 시듦병 17.6㏊, 뿌리폭병 10.3㏊ 순이었다. 작목별로는 배추가 86.3㏊, 무가 49.6㏊, 양배추 8㏊에 달했다. 강원도농업기술원측은 "무름병이나 시듦병은 폭우 이후 폭염 상황에서 확산한다"라며 "장마가 끝난 뒤 폭염이 20여일간 지속하면서 이런 무름병 등으로 인한 피해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8일 강원 강릉시 안반데기에서 배추 생육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농림 장관 직접 찾아 실태파악 나서


2022년 9월 1일 고랭지 배추 수확이 한창인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안반데기에 아침 햇살이 비추고 있다. 김경빈 기자
이에 따라 정부 관계부처 관계자들이 평창과 태백 등 고랭지 현장을 찾는 등 실태파악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27일에는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평창 배추·무·당근 농가를 찾았고 이달 초에는 농림부 관계자가, 지난 6일에는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관계자가 현장을 찾아 작황을 살폈다.

제주=최충일 기자, 태백=박진호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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