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3년 기대인플레 11년만 최저…'바이브세션'에 소비 약화 조짐
미국 소비자가 전망하는 3년 후 물가상승률 수준이 11년 만에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가계 소비 여력도 약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9월 금리 인하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했다.
12일(현지시간) 미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은 7월 소비자기대조사(SCE) 결과를 발표했다. 3년 기대인플레이션 중간값은 연율 2.3%로 6월(2.9%) 대비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는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13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1년‧5년 후 물가상승률 전망은 각각 3.0%‧2.8%로 전월과 비슷한 수준을 나타냈다.
기대인플레이션은 향후 물가상승률에 대한 경제주체의 주관적 전망을 나타내는 지표다. 가격설정, 임금협상 등 의사결정에 반영되면서 최종적으로 실제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친다. 국제금융센터는 “이번 지표는 인플레이션이 목표치(2%)를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9월 금리 인하가 가능하다는 의견을 뒷받침한다”고 풀이했다.
최근 가계 소비 여력도 축소되면서 물가상승률 둔화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날 뉴욕 연은 조사에 따르면, 가계의 부채 연체 가능성이 13.3%로 집계돼 2020년 4월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특히 연 소득 5만달러(약 6900만원) 이하 및 고등학교 졸업 이하 학력 소지자의 연체 가능성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실제 올 2분기(4~6월) 신용카드 부채는 1조1400억달러(약 1561조원)로 1년 전보다 5.8% 늘며 사상 최고 기록을 썼다.
그간 Fed는 뜨거운 가계 소비가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해왔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기간 동안 가계가 축적한 초과저축은 탄탄한 소비 여력을 뒷받침했다. 민간 소비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는 만큼, 지난 2분기 미국 경제가 전 분기 대비 연율 2.8%로 ‘깜짝 성장’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고물가‧고금리가 이어지면서 월별 소비 지표는 점차 둔화하는 모양새다. 6월 중 개인소비지출 지표를 보면, 재화 소비는 전월 대비 0.2% 늘어나 5월(0.4%)보다 증가 폭을 축소했다. 샌프란시스코 연은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득 하위 80% 가계의 현금성 자산은 팬데믹이 없었다고 가정한 경우보다 13% 적은 수준이다. 로이터통신은 “중·저소득층 가정의 유동성 자산이 현저히 줄어 경제의 중추인 소비지출에 위험을 초래하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생활비 부담이 커지면서 미 소비자들은 현재 경기 상황을 침체 상태로 인식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른바 ‘바이브세션’이라는 신조어가 주목받는 이유다. ‘vibe(분위기 또는 느낌)’와 ‘recession(경기 침체)’의 합성어로, 실제 경제 상황과는 별개로 경제 주체가 ‘심리적 불경기’를 느끼는 상황을 의미한다. 경제학자들은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보일 때 기술적 침체에 빠졌다고 진단하는 만큼 현재 미국 경제가 침체에 있다고 보기는 이른 상태지만, 대다수 소비자들과의 인식과는 괴리가 있다는 의미다.
미 CNBC 방송은 전자결제업체 어펌의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해, 미국인 5명 중 3명은 ‘경제가 침체 상태에 있다’고 여긴다고 전했다. 해당 조사는 지난 6월 20~24일 미국인 2000명을 상대로 이뤄졌다. 침체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주요인으로는 ‘인플레이션과 생활비 상승(68%)’이 꼽혔다. 조이스 장 JP모건 글로벌 리서치 부문 대표는 “지난 몇 년간 재산 증식이 주택소유자와 소득 상위층에 집중된 반면 인구 중 3분의 1은 이 같은 재산 증식에서 소외됐다”며 “경제와 소비자 인식 사이 단절이 발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분석했다.
기대인플레이션 하락과 소비 여력 축소 등이 ‘9월 인하설’에 힘을 싣는 가운데, 14일 미 노동부는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을 발표한다. 시장에선 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3.0% 상승하며 6월(3.0%)과 비슷한 수준을 나타낼 것으로 보고 있다. 근원 CPI(변동성이 큰 에너지‧식료품 제외)는 전년 대비 3.2% 올라 전월(3.3%)보다 둔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블룸버그통신은 “물가상승률이 예상대로 나온다면 전체적으로 둔화 추세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수치가 소폭 반등하더라도 9월 인하 전망을 철회할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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