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 혜리 “다신 기회 없단 생각으로 달렸죠” [쿠키인터뷰]

김예슬 2024. 8. 1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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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혜리. 써브라임

배우 혜리에겐 고교 시절 추억이 거의 없다. 그룹 걸스데이 멤버로 데뷔하던 당시 그의 나이는 열일곱. 연습생 생활도 거의 거치지 않고 어린 나이에 사회로 진입했다. 그런 혜리에게 영화 ‘빅토리’(감독 박범수)는 새로운 청춘 기록을 남겼다. 응원단으로 뭉친 아홉 여고생의 좌충우돌 이야기에서 혜리는 자신이 미처 겪지 못했던 나날을 추억했다.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는 작품일 거예요. 소중한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거든요.” 지난 7일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난 혜리가 들려준 이야기다.

극 중 혜리는 필선 역을 맡았다. 힙합이 좋은 그는 댄서가 꿈이다. 하지만 거제 바닥에서 춤으로 성공하기란 요원한 일. 상경을 꿈꾸면서도 한편으론 어디서든 춤을 추고 싶다. 목적을 갖고 응원단을 결성하지만 그의 마음은 힙합에만 향해있다. 그저 춤을 사랑할 뿐인 열혈 소녀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간다. 불도저처럼 화끈하면서도 당당한 필선은 어쩐지 혜리와 닮아있다. 그래서인지 제작사와 박범수 감독은 일찍이 “혜리 아니면 안 된다”며 그의 캐스팅을 고집했단다. 당초 거절했던 혜리를 수개월 동안 설득한 끝에 ‘빅토리’ 프로젝트는 마침내 성사됐다.

영화 ‘빅토리’ 스틸컷. (주)마인드마크
‘빅토리’ 스틸컷. (주)마인드마크

혜리가 ‘빅토리’를 거절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다재다능한 춤꾼 필선을 연기하기 위해선 힙합부터 치어리딩, 펌프까지 모두 소화해야 했다. 사투리 구사는 필수였다. 에너지를 뿜어내면서도 여러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는 장벽 또한 있었다. “멋진 필선이를 연기할 만큼 나 역시도 멋진가 싶더라고요. 부담과 걱정이 많을 수밖에요.” 고민하던 그의 마음에 불씨를 지핀 건 감독의 믿음이다. 그렇게 ‘빅토리’에 뛰어든 혜리는 “걸스데이 시절보다 더 고된” 연습을 통해 필선이가 되어갔다. 열등반에서 우등반으로 올라서기까지 3개월. 11곡에 달하는 안무를 연습하며 구슬땀을 흘린 결과는 ‘빅토리’에 고스란히 담겼다. 시사회에서 이를 본 걸스데이 멤버들이 “활동할 때나 이렇게 해보지 그랬냐”고 반응했을 정도다. 이를 이야기하던 혜리는 “몸치 같던 모습을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더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현장에서 혜리는 무서운 언니로 통했다고 한다. 동료 배우인 박세완이 모두를 다정하게 아우를 때 혜리는 엄한 역할을 자처했다. 늘 당돌한 막내가 이번 현장에서만큼은 ‘왕언니’였단다. “현장을 잘 이끌고 싶은 마음”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지만, 그 역시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단다. 촬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배우들은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빅토리’ 속 밀레니엄 걸즈가 그랬듯 배우들도 고락을 함께하며 부쩍 가까워졌다. 촬영을 끝낸 뒤 서로 우정 반지까지 맞췄을 정도다. “어린 시절을 다시 경험한 느낌”이라고 말을 잇던 혜리는 “‘빅토리’는 추억여행 같은 작품”이라며 “어떤 작품보다도 더 애착이 간다”고 돌아봤다.

‘빅토리’는 혜리에게 새로운 도전욕을 불러일으켰다. 시대 배경이 비슷한 만큼, 예고편이 공개되자 그의 대표작인 tvN ‘응답하라 1988’ 속 덕선과 비교가 이어졌다. 덕선은 언제나 그에게 자랑스러운 훈장이자 넘어야 할 벽이다. 혜리는 “덕선이 덕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라면서도 “매번 새로운 캐릭터로 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힘줘 말했다. 욕심을 이루기 위한 그의 무기는 높은 자존감이다. 걸스데이 활동부터 MBC ‘진짜 사나이’, tvN ‘놀라운 토요일’ 등으로 얻은 사랑이 자양분이다. 혜리는 “지금 포기하면 다신 기회가 없다는 생각으로 늘 최선을 다해 달려왔다”면서 “열심히 하면 언젠간 모두가 노력을 알아주리란 확신이 있다”고 했다.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빅토리’ 속 필선과 겹쳐 보였다. 혜리는 “미미하게라도 성장하고, 대단하진 않더라도 도전하기 위해 늘 애쓰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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